안그래도 직장이나 학교 다니기를
가득이나 싫어하는 사람들 천지이다.
그런데 성당이란 곳을,
형식적으로 사무적으로만 다니기만 한다면,
내 생각에는 그것은 종교활동이 아닌
학교나 직장의 연장선일 뿐일 것이다.
더군다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를 않아서,
그리고 방언이라는 신비한 언어의 존재도 시용법도 알려주지 않았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가득해서,
자신감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기도를 매우 엉성하게 해도,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정해진 형식에 맞게 해야만 들어주시며,
또 수동적이시라는 사실을 모른채 말이다.
하느님께서 수동적이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신이 아닌 잡신이나, 종노예에 불과할 것이다.
차원이 높으시니까 수동적이시란 말이다.
진심으로 신앙을 찾는이도 적은데다가,
일의 연장선이라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성당에 사람들이 발길을 끊거나, 등지고 되돌아가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얼마전에 원로사제 신부님의 말씀이
내 귀에 꽃혔는데, 유익한 말씀이었고,
머리에 남을만큼 내 생각과 일치했다.
성당만 다녔지, 사람들이 “성령체험”을 안해봤기 때문이라는,
진중한 말씀말이셨다.
그렇다. 사람들이 천주교라는 종교를
일의 연장선이나, 또는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형식적이었고 사무적이었으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성령체험도 모든 신자들 중에서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무엇보다도 진짜로 일의 연장선이라고 느낄만큼,
기도를 해도 들어지시지 않는다는 것에서 출발한 의심점은,
자꾸 자꾸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를 해 본 결과는,
신이 없다 일 뿐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성령체험”이 없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성령체험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형식적이고 일의 연장선인 성당에서 탈피를 해야 하는데,
무슨 해결책이 없을까.
해결책은 있다. 성당을 떠나,
서울에는 삼성산이나, 지방에는 외곽에는 성령회관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회관에서 여태껏 느껴볼 수 없었던
"진짜 성령체험"을 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성령체험만으로도 1000만이나 되는 이유가 되겠다.
성령회관에서는 마음껏 찬양할 수 있으며,
큰 소리로 하느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
성당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으면, 쫒겨난다.
그러나 여기는 성당이 아니다. 게다가 외곽이다.
“성령체험이 없어서 성당을 기피한다.”
원로사제님의 일리있는 말씀이셨다.
개신교는 1000만에 가까울만큼 흥한데 반에,
천주교는 아직도 5ㅡ600만인 이유는,
“모든 신자들의 성령체험이 거의 없음”과
“형식적인 일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성령체험을 해봤더라면, 성당을 일의 연장선으로 다니다가,
발길을 완전히 끊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들은 신앙도 사무적으로만 대해왔고,
또 활동이 개신교처럼은 활발하지 않아서,
가톨릭특유의 사무적으로만의 만남에 지쳐,
하느님을 찾고 또 찾다가, 기도해도 안들어주시고,
결국은 신은 없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발길을 끊었다.
아니면, 다른곳에서의 성령체험을 통해
개신교로 옮겼다 라는게
사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