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처음 만난건 2003년 여름.
한국은 아직 겨울이었지만 거긴 분명 여름이었어.
우리의 첫 만남의 촌스러운 빨간색 반팔 카라티와 남색 반바지 교복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니까.
눈이부신 은빛 잔디밭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장난치며 뛰어놀던 너를 봤을 때,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너만 내 눈에 들어왔던건 너가 나와 같은 한국사람처럼 보여서였겠지?
영어로 내 소개조차 하기 버거웠던 그때.
나는 왠지 언어의 벽이 나의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 벽 때문에 모두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어.
어느덧 쌀쌀한 바람이 불어 겉옷 하나쯤 입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그 무렵에 백인아이들의 한국아이들 뒷담화가 내 귀에 들려 기분이 나쁘기 시작했고, ‘아 내가 이 언어를 알아듣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
그때부터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점점 얇아지고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한두명의 아이들과 점점 친해져갈 때 즈음에 나는
너와도, 당연히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생각해보니 너와는 언어의 벽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왜냐면 너는 한국사람이었으니까.
너와 나를 막고 있었던 벽은 우리 둘만 느낄 수 있는 서로를 흔들림 없이 쳐다보지 못하게 했던, 두터운 흐르는 물과 같은 벽이었던 것 같아.
우리반 아이들과 대부분 친해지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게 당연하던 그때, 너와 나는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지나갔었다.
락커 앞에서 만나면 서로 자신의 물건만 들고는 그냥 그렇게 가버리곤 했어.
어느 날 아침 내 락커 문이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버려 내가 얄미운 문을 원망하고 있을 때, 네 락커에서 물건을 꺼내러 왔던 너가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 영어로 ‘Wait’ 한 마디하고는 종이를 끼워서 문을 열어주곤 피식 웃었을 때, 나는 많은 말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겨우 ‘Thanks’ 라고 한마디 했어.
그 후에 너와 나는 가끔 한두마디씩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룹으로 하는 공부에서 마주앉게 되면 너는 테이블 밑으로 내 발을 밟곤 했어. 내가 밉게 쳐다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선생님을 보곤 했지. 나 모르게 내 물건을 숨겨다가 내가 한참을 찾고 있으면 네 가방에서 스윽 꺼내곤 했어. 넌 알고 있었을까? 일부러 내가 그룹스터디 땐 네 앞에 앉고, 내 물건을 너가 가져간 것을 눈치채고도 계속 찾았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