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2023)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모티브가 된 인물은 그 당시 육군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신군부 세력에 의해 강졔 예편된 이후에도 12. 12 사태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하짐나 1988년 19월 16일 밤에 행방불명이 되고 난 뒤, 실종 139일 만에 인근 야산에 목 매달아 죽은 채 발견되었다. 당국은 자살로 결정지었지만 장태완 전수도경비사령관은 정병주 소장이 절대로 ㅈr살할 인물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민주화 이후에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재조사를 하였지만 증거물이 없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고인의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
모티브가 된 김진기 준장
진압에 실패하고 난 뒤,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1980년 예비역 준장으로 사실상 강제 예편 당한다. 예편된 뒤 수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광어 양식도 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93년 전두환을 내란죄로 고발하기도 했으며 2006년 지병으로 사망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모티브가 된 인물은 장태완 소장
군사반란 이후 45일간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에도 6개월간 집에서 갇혀 지내야했다. 장태완 소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듣고 한탄을 하며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면서 울분을 표출하셨고 결국 1980년 과음으로 별세.
소장의 아들은 서울대에 입학했고 자연대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머리가 똑똑한 수재였지만 1982년 평소처럼 대문을 나선지 한달만에 칠곡군 왜관읍 근처 산기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 코스콤의 전신인 한국증권전산의 사장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1996년 12.12사태와 5.17 내란의 책임으로 전두환과 노태우가 잡히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법정에 섰다.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로 나서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0년 숙환으로 사망.
정상호 계엄사령관
모티브가 된 정승화 대장
모진 고문을 당했고 강제예편당해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당하고 1980년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상당한 치욕을 당했다.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왔다. 이후 1987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영입되었다.
민주화 이후 예비역 육군 대장의 자격을 다시 되찾고 급여와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받았다. 5공 청문회 때 증인으로 출석하여 당시의 전말을 증언하였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었고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을 하였지만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면을 받자 엄청나게 울분을 표출하였다. 쿠데타 피해자 출신 예비역들의 권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2002년 사망.
오진호 육군특수전사령관비서실장
모티브가 된 김오랑 소령
그의 죽음으로 양친께서는 홧병으로 사망하셨다. 그의 분인인 백영옥 씨도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그 뒤 실명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도 묘사가 됐지만 체포를 담당했던 박종규 중령이 실제로 김오랑 소령과 친한 선후배 사이에다 부부끼리도 식사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군사반란 이후 백영옥 씨는 90년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를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지만 91년 본인이 운영하는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유족들은 이 죽음에 의문을 표했다.)
+)
박종규 중령은 백영옥 씨와의 통화도중 자신은 명령대로 한 것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군인이 반란 일으키라는 걸 명령대로 하나보죠?"라는 백영옥의 일갈에 반론을 못하고 끊었다고 한다.
민성배 육군참모차장
모티브가 된 윤성민 중장
군사반란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전두환 정권 때 국방부장관까지 역임하며 잘 먹고 잘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