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없다.
요즘 2030세대는 다른 세대와는
달리 동정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만큼 다른 기성세대와는 달리
믿음직한 남성들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남자도 동정이 많고, 정의 소모는
곧, 힘의 원천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새로이 생겼다면
2030세대는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
홀로 외롭게 독거노인으로 사는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기 때문이지 않을까.
크나큰 문제다.
천주교의 “고해성사” 또한
새로 떠오르는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죄를 용서하는 데에는
“고해성사 뿐”이라고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천주교에서는 유일하게
악신을 대적할 수 있었다.
개신교에서도 “대죄”는 봉사와 기부를 없어지는 지는 불확실한 것이
사실이며 안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죄가 그대로 있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기에
너무나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지옥이라는 영원한 고통을 생각할 때 이는 지나쳐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대죄가 없어지는지 안 없어지는 지는
지옥이라는 영원한 장소가 달려있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고해성사”라는 성사가 없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대죄가 없어지는지는 알수가 없으며,
이럴때에는 천주교로 종교를 확 바꾸어
고해성사를 보는 등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는 것이 좋다.
그만큼 지옥은 너무나 무섭다.
천주교의 “고해성사”를 보는 것만으로 다 해결이 되는데,
굳이 고집을 부려 개신교에서 끝까지 남아.
“지옥을 갈 수도 있다”는 길을 택할 것인가.
그만큼 어리석은가.
개신교를 끝까지 고집해서 고해성사를 안봄으로
대죄가 사해지지 않아서 말이다.
만약 개신교에서는
대죄를 용서 받을 성사가 없다는게 확실하다고 하면,
어떻게 할것인지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물론 기부로는 소죄는 없앨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만큼 소죄는 간단히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죄”라면
기부와 봉사만으로는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천주교에서 그렇게 누누이 강조하는데,
개신교에서는 그 주장을 막을 힘이 없다.
그이유로는
악신을 못 막았다는게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 지옥에 갈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로보면,
영원한 고통인 지옥에 갈 확률을
아예 하나도 없게 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천주교로 개종해서 천주교의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지난날에 간음한 죄가 있다면
무조건 천주교신자가 되는 수 밖에 없다.
불확실한 것 보다는 말이다.
천주교가 악신을 저지해서, 대세가 된 지금,
아무것도 못 막았던 개신교에서는
천주교 교리를 전혀 무시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부와 봉사만으로 “대죄”가 사해지는지는
나는 다만 신자일 뿐이라 알수가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개신교에서 대죄를 없애지 못했다면,
지옥에 가는 것은 대죄라서
아무리 많은 기부와 선행으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의 은총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대죄는 “고해성사 외”에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천주교 교리이다.
천주교 교리는 이제 무시할 만큼,
나약한 종교가 아닌게 확실하게 된 지금,
개신교에서 악신을 막지 못했다면,
천주교교리는 전혀 무시해서는 안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대죄를 용서받지 못한 과거의 “성관계의 전력“이 얼룩져 있는
개신교인들은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지옥에 있을지가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