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을 해야 합니다.
“아, 저 사람이 다녀간 뒤로 하루동안은 마귀의 공격에서 보호되는 거 같다.”
이 특별한 경우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악에게 공격받는 사실과
다른 사람들도 악에게 공격받는 상황이
너무나 충분히 가능한 “마지막 시대”의 오늘날,
마지막 시대에 맞게, 또는 남을 위해 방언으로 중보 기도 해 주는 것도 선교이자,
지혜에 속하는 발상이 아닐까요.
그런 중보기도의 보호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것이고,
기도해 준 사람이 나인것을 알게 된다면,
기도해 준 사람인 나를 아는 사람들이
비록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뿐이어도,
중보기도의 맛을 본다면,
미리 하느님을 맛보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즉,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중보기도를 하였을 뿐인데,
선교가 저절로 되는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편하게 일을 볼 수 있고,
남도 보호를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제로 행하는 실천의 삶이기도 합니다.
방언의 중보기도조차,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해주고 하며,
낯을 가리어,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고,
그 한사람 때문에, 그곳 사람들을 전부 다 중보기도를 안해준다면,
예수님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행동이 됩니다.
방언으로도 공짜로 하느님을 홍보할 수도 있는
이득을 볼 수도 있는 기회를 그냥 버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종말이, 지금 이 시대 가까이라 하더라도
그 진짜 “종말의 당일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종말의 날, 마지막 날은 정확히 어느 날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다고 하십니다.
주제넘게 저의 의견을 말하자면, 저는 20년전후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 전이 될지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모른다는 말입니다만, 예상이라도 한번은 해 보아야 하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1월달 중반에 성령님께 물어보았을 때
“성직자는 방언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수도자는 안 물어보았지만,
종말이 바로 임할것이라고 생각해서
방언을 안하시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짜 종말은 대충 20년전 후 일수도 있다고
감히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지극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20년 전후가 종말일 경우도 생각하여야 하고,
아니 그 이상이 될 경우도 생각 하여야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하느님께서 승리한 장소이자, 국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하느님께서 구원하실 나라는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수많은 나라등등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조차도 복음화가 잘 안되었는데도
지구의 종말은 당장이라는 둥
종말 타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좁게 우리나라만 보지 않고,
전 세계를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참고 인내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성경에는 쓰여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참고 견디시고 계시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만 생각하여, 우리나라 상황만 생각하여
종말이 몇 년 내로 올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십시오.
세계 수많은 나라는, 사람이 사는 나라가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마치 종말때처럼 치열했던 것뿐이지
다른 나라는 아직 복음선포도 안된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종말이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