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
작년 가을 ‘Perfect Night’ 활동으로 미국에 다녀왔어요.
허윤진: 미국을 마지막으로 떠난 이후 처음 가는 거라, 다른 사람으로 부활해서 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연습생이 되기 전 뉴욕 시티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오디션은 도심에서 하니까 항상 호텔에 묵었거든요. 같은 번화가 호텔에 가족들과 있으니 옛날 생각도 났어요. “너 오디션 끝나고 32번가에서 삼겹살 먹고 그랬는데, 데뷔하고 타임스퀘어에 광고도 있네~” 하면서 가족들이 신기해하고요.
윤진 씨가 멤버들과 뉴욕을 돌아다니는 ‘JEN TOUR’를 찍기도 했는데, “근데 너 뉴욕에 안 살았지 금지”라는 선서가 재밌었어요.(웃음)
허윤진: 사실 미국은 진짜 넓어서 어디 산다고 말해도 그게 30분 거리인지, 2시간 거리인지 상상이 잘 안 가거든요. 뉴욕주도 엄청 넓은데 보통 ‘뉴욕 시티’라 생각하니까요. 사실 뉴욕 시티의 맛집을 잘 아는 건 아니라 “나도 물어봐야 하는데.” 하면, “너 미국 사람 아니지.” 그랬던 경험이 많았어요.(웃음)
뉴욕 시티와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았다고 했는데, 뉴욕 시티는 어떤 이미지예요?
허윤진: 뉴욕 시티가 ‘꿈의 도시’라고 자주 불리고, 어렸을 때도 그런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어요. 학교에서 수련회나 문화 체험을 하러 가면 뉴욕 시티에서 뮤지컬을 보거나, 워크숍을 하고 그랬어요. 오디션도 항상 뉴욕 시티에서 봤고요. 그곳에서 나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시작했는데, 멤버들과 다 같이 가니까 그것만으로 뜻깊었어요.
윤진 씨가 때로 전시회도 즐기는 듯했는데, 그런 학생 시절의 경험과도 관련이 있나요?
허윤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그런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감사하게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자주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도 관심사가 다양해 친구들과 미술관에 가고 그랬고요. 원래도 그런 호기심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저희는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는 일상이라, 시야를 넓히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좋아요. 힐링되고.(웃음)
특히 인상주의 작품을 좋아하는 듯했어요.
허윤진: 저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전까지의 그림은 사진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거였다면, 인상주의는 그런 제약을 넘으려고 하고, 찰나의 순간이나 감정도 표현해내려는 게 제 삶의 가치관이나 철학이랑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시각적으로 그냥 와닿는 게 많아요. 검은색과 회색이 잘 안 쓰이고, 빛을 중요시하는데 그게 크게 와닿았어요.
평소 작품을 감상할 때 그 관점에 대해서도 살피는 편이에요?
허윤진: 처음 볼 때는 시공간을 초월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느낌을 많이 추구해요.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설명을 듣기도 하고, 항상 그럴 수는 없으니 찾아보려고도 하고요. 작품의 서사를 알면 더 와닿기도 해요. 고흐가 요양병원에서 그린 마지막 그림들을 봤을 때, 그 사실을 알기 전과 후에 보이는 게 다르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멕시코 시인 세자르 크루즈(César Cruz)의 말로 뱅크시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글귀).”라는 말이 있는데, 때로 난해한 작품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워요. 과거와 미래 생각도 많이 나고, 그걸 토대로 현재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허윤진: 저희는 보이는 것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 느낄 수도 있을 텐데,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도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요. 내가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범위를 넓히거나,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둘 수도 있고요. 사람마다 다른 배경과 경험이 있는데, 그것대로 아름답고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윤진 씨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어요.
허윤진: 제 성격상 뭘 읽어도 “이건 아니야.” 이런 건 아니어서.(웃음) 줏대는 있지만 동시에 귀는 얇은 편이라(웃음) 뭘 읽어도 “그럴 수 있는 건가?” 해요. 저는 어쨌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책을 읽는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아티스트가 되는 것도 좋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아요.
타이틀 곡 ‘EASY’ 역시 또 다른 느낌의 르세라핌의 모습을 보여주고요.
허윤진: 이런 음악을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녹음할 때 “입김 나올 정도로, 밖이 추운 것처럼 불러주세요.” 같은 처음 들어보는 디렉팅도 들어봤어요.(웃음) 퍼포먼스도 저희가 지금까지는 누가 봐도 ‘잘 맞췄다. 열심히 한다.’를 보여드렸다면, ‘되게 쉬워 보이는데 잘한다.’는 목표로 연습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진짜 어렵고 힘든데(웃음) 아무렇지 않게 여유 있게 흘러가듯이 해야 돼요.
쉬워 보이게 하는 배경에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노력들이 있는 거네요.
허윤진: 준비 기간은 저희에게도 힘든데, 피어나분들 입장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서로 떨어져서 볼 수 없는 시간이잖아요. 생각해보면 1년에 춤추고, 노래하는 걸 직접 보는 기회가 생각보다 없더라고요. 그 순간을 위해 각자의 삶을 살다가 그 자리에서 만나는 건데, 그때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치열하고 힘들게 몇 달 준비를 할수록, 그 몇 분에 엄청난 의미를 가져다주는 느낌이에요. ‘We got so much’에 “당연하지 않아”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의미를 가져다줘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에요. 투어를 하면서 진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누군가 함성을 내주고 몇 시간 동안 노래를 함께 불러주는 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잖아요. 너무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라는 게 감동이고 힘이 돼요.
활동하다 보면 마주할 수 있는 어려움의 순간, 르세라핌이라는 팀은 어떤 안식처가 되어줘요?
허윤진: 저는 진짜 복받은 사람인 것 같은데, 저희는 다 다른 배경을 지녔고 할 수 있는 언어도 다양해서 어딜 가도 든든하더라고요. 멤버마다 살아온 길이 다 다르다 보니 각자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넌지시 던지는 말이나 의견에서 그리고 특히나 꾸라 언니에게 더 그런 느낌을 받아요. 확실히 언니가 있어서 이 팀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정 안에서의 사랑을 느끼는 멤버들이 있다는 건 윤진 씨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허윤진: 다정함을 배우게 해주는 것 같아요. 아무리 정신없고, 힘들고, 냉소하게 되고, 혼자이고 싶을 때도, 멤버들을 보면 다정해지고 힘들어도 웃을 수 있고요. 때로 너무 큰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한테 너무 큰 것 같아요. 내가 남에 대해 모르는 빈 칸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는 게 결국 다정함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게 곧 사랑이지 않나 싶고. 그 책의 내용처럼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다정함을 배우고 연습하고 보여주고 나눔으로써, 그게 사랑이 되지 않나. 결국 멤버들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콘서트에서의 ‘도도독’ 모멘트로 많은 화제를 모았어요.
김채원: 처음 “너 내 동료가 돼라” 파트를 맡게 됐을 때는 많이 부끄러웠는데,(웃음) 이 파트를 통해 ‘Fire in the belly’도, 르세라핌도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지난 1월 ‘골든디스크어워즈’ 무대에서는 YB의 윤도현 씨와 함께 “너 내 동료가 돼라”를 외치기도 했고요.
김채원: 혹시 오글거릴까 봐 걱정했는데, 윤도현 선배님께서 웃으면서 즐겁게 해주셔서 그 장면이 너무 잘 나온 것 같아요. 여러모로 “너 내 동료가 돼라” 파트가 저한테 중요한 순간이 됐어요.
무엇이든 가볍고 재밌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ENA ‘혜미리예채파’의 이태경 PD님이 채원 씨에게 남긴 코멘트가 생각났어요. “모든 게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라 “본인의 느낌대로 하는데 그게 다 자기 매력”이 된다고요.
김채원: 예능에서는 어차피 제가 막 그렇게 큰 웃음을 주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애초에 개그는 포기했으니까 그냥 즐기면서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저는 편하게 했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너무 좋았어요.
무대 위에서도 항상 자연스러워 보여요. 리듬에 맞춰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화제가 된 ‘ANTIFRAGILE’ 입덕 직캠처럼요.
김채원: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디테일까지 맞춰져 있게끔 최대한 준비해둬요. 대신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다른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해요. 생각이 많아지면 즐기지 못하겠더라고요. 말씀하신 ‘입덕 직캠’처럼 무대에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르게 할 때도 있어요. 신나서 ‘오늘은 좀 더 해볼까?’, ‘약간 다르게 해볼까?’ 이렇게요.
내키는 대로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LE SSERAFIM (르세라핌) EASY TRAILER ‘Good Bones’’에서 덩크슛을 하는 채원 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김채원: 트레일러에서 저희가 계속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되게 쉽게 하잖아요. 살면서 덩크슛을 해본 적도 없는데,(웃음) 그런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모습에서 이번 앨범의 애티튜드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나, 열심히 하고 있어. 열정 이만큼! 어때, 잘하지?” 이런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그런데 타이틀 곡 제목은 ‘EASY’지만 퍼포먼스도, 노래도 전혀 쉽지 않았거든요. 열심히 하는 티를 내도 되면 차라리 괜찮은데 여유로운 척을 하는 게 어려웠어요. ‘EASY’하지 않아요! 진짜 절대.(웃음)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나의 발걸음은 매 순간 history, 이건 my way” 파트에서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동선을 맞추면서도 능숙하게 완급 조절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김채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잘 살리고 싶은 파트였기 때문에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힙합 동작에 익숙하지도 않고, 이동하면서 해야 하는 스텝이라 멤버들이랑 계속 맞추면서 연구도 많이 했고요. 어디서 힘을 풀고, 어디서 힘을 줘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려다 보니 그냥 다 엄청 힘을 주게 되더라고요. 처음으로 퍼포먼스 디렉터님께 “좀 풀어도 된다. 너무 세게,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디렉션을 받아봐서 놀랐어요.(웃음) 그 파트가 아주 킬링 파트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모로 느낌을 어떻게 낼지 고민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R&B 스타일을 많이 듣기도 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이번 타이틀 곡을 준비하는 게 되게 재밌었고 저랑 잘 맞았거든요. 앞으로 무대를 많이 하다 보면 각자의 느낌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EASY’에서 이면의 불안과 고민에 대해 토로하는데, 날것의 감정을 꺼내와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없었나요?
김채원: 음, 부담이나 걱정은 별로 없었어요. 맞는 말이니까요. 처음 들었을 때 진짜 딱 저희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동안 “부럽다.”, “쉽게 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속에서 저는 진짜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게 온 게 아니다. 보여지는 모습은 너무 화려하지만, 저희에게도 비하인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이 곡에 담긴 메시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리 좋아 보여도 모두가 각자의 힘듦과 고민이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생각들을 노래와 퍼포먼스, 앨범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고 감사해요. 그 덕분에 솔직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 8월 서울 콘서트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김채원: 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제 모습, 꾸며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감정의 혼란이라든지, 살면서 느끼는 점들이라든지, 사실은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고, 거기에 더해서 제가 열심히 하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용기와 위로도 함께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여요. 지난 1월 1일 위버스에 남긴 글에도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나아가셨을까요?”라고 썼어요.
김채원: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결과가 안 좋다고 해도 멈춰 있는 게 아니고 그걸 통해서 저 스스로는 배우고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계속해서 매번 증명해야 하잖아요. 그게 힘들긴 하지만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계속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그만큼 뭔가를 해냈을 때 행복도 크고요.
역시, 찰나의 행복이 다 이긴다는 거네요.
김채원: 네, 그런 것 같아요. 이 일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잖아요. 스스로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를 정말 좋아하고, 일이 되었음에도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될 만큼, 그 정도로 많이 좋아하는구나 체감해요. 그러니까, 저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