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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니 첫 짝사랑 얘기나.. 여>>여 니까

라이레 |2024.05.18 15:55
조회 94 |추천 0
거부감 있으시면 가만히 뒤로 나가십시다.


0. 
나는 조금 특수한? 지역에서 초중고를 나왔음.특정 직업군의 주거지가 한데 잔뜩 모인 동네였어서,이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같은 초중고를 다녔음.
이렇게 좁고 폐쇄적인 동네에서, 나는 중학생 때 전교적 아웃팅을 당했다.범인은 당시 제일 친하다고.... 그랬다고 생각했던 학우였음...게다가 그냥 소문이 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여자애의 이름까지. 나는 그다지 말수도 없고 조용하고 눈에 잘 안 띄는 애였어서,아니, 꼭 그래서는 아니었어도.. 무서웠음.어떻게는 나를 구경하려고 웅성거리는 다른 학우들의 시선들이.소문낸 애한테는 언젠가 사과를 받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청소년기 시작인 이때쯤 기묘한.. 아주 수많은 것들이 섞여버린 감정 중 제일 큰 건 '두려움' 이었던 거 같음.


1. 편의상 첫사랑을 "해"라고 부르겠음.해는 고 1때 우리 반에 전학을 왔음.정확한 월이나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하얀색 반팔 면 블라우스에 진남색의 후레아 스커트... 가 가물가물 기억나는 걸 보니 여름이었나보다.
그날부터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었다.일종의 예감 같은 거였다.  흔히 말하는 여신도 아니고 특별하게 뛰어난 것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하얀 피부에, 컬러 렌즈를 낀 듯한 갈색 눈. 밝은 머리색.언젠가, 예전 학교에서 갈색 머리카락 때문에 자주 잡혔다는 얘기를 했었다. 


2. 
어쩌다보니 해는 내가 속한 그룹에 들어왔다.그룹에서 제일 드센 애에게 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예전부터 은따 찌질이... 여서 자나깨나 동네북 포지션이었던 나는 그래도 좋았다.같이 다니는 무리라는 핑계로 국어 학원? 도 같이 다녔으니까.같은 반이니까 안 보는 척 딴 데 보는 척 할 수도 있었고. 아침 일찍 등교해서 해의 책상 서랍에 작은 과자 같은 걸 넣어두기도 했다.근데 진짜 웃긴 게.. 나는 나름 몰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다 티가 났을 거 아니야. 지금 생각하니까 진짜 웃긴다. ㅋ.ㅋ...

3. 
10월 말은 내 생일이었다.  물론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왁자지껄 생일 파티 같은 건 기대도 안 했다.집에서 미역국... 대충 먹고 등교했는데,같은 그룹(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여튼) 애들이 뭔가 큰 거를 주는 거였다.보니까 당시 유행하던 아로마 테라피 유칼립투스 오일이랑,이름을 잘 모르겠는데 아로마 오일을 퍼트리는 분수 닮은 기계? 였다.이게 뭐야 하고 받긴 했는데, 아주 아주 나중에 다른 학우를 통해 알았다.열 일곱 번째 생일날 받은 그것들, 모두 해가 혼자 준비한 거라고. 



4. 
고2가 되고 해는 이과, 나는 문과로 갈라졌다.
나야 뭐 언제나 친구가 없었으니까,그 날도 모든 우리 반 학우들이 나를 제외하고 죄다 야자를 짼 건 이상하지 않다.
맨 앞 자리인 내 자리에서 음악 들으면서 국어 문제집을 보고 있는데 앞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야자감독이겠지... 싶어서 쳐다봤는데, 해였다.무슨 문제집을 여럿 안은 채 내 옆으로 앉더라.
너 왜 혼자서 뭐해?
물어오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해?
별 말 안 하니까 옆자리에 앉아 내 이어폰 한 짝을 쑥 빼갔다.
너는 뭐 이런 우울한 노래를 들어.
그러길래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나오던 노래는 엠씨더맥스의 사랑의 시 였다.한 곡 재생이었는데... 노래를 바꿔버리면 마음이 당장 들킬 거 같아서 남은 야자 내내 엎드려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내 옆을 지키다가 교실로 돌아간 해는 아마도 야쟈감독에게 디질게 혼났을 것이다. 


5. 

고3이 되었다.해와는 제법 멀어지게 되었다.당시 난 어떠한 압박감이 있었다."남자를 사귀어야 한다" 는.그래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같은 반의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중고등시절 합쳐서 제일 즐거운 1년이었다......만여전히.. 해는. 그 무렵 해와 나는 이상한? 요상한? 기이한? 신호 같은 게 생겼다.오다가다 중간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소리를 내러 인사를 하는 대신 서로의 신체 어딘가를.. 예를 들면 팔꿈치라던가 어깨 같은? 곳을 아주 살짝, 터치하곤 지나가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니까 진짜 웃긴다. 걔도 나도.


6. 
시간이 흐르고 대학교 2학년 때 쯤, 어느 날 해가 유독 너무 너무 보고 싶었던 날이었다.술도 한 잔 했겠다, 싸이 쪽지에 내 연락처를 남겨서 보냈다.그리고 답장이 왔다!주말에 신천역(지금은 잠실새내)에서 만나기로 하였다.그 날 진짜 엄청 신경 써서 나갔는데. ㅋㅋ거의 2~3년? 만에 만나는 해는 여전히 예뻤다. 좋았고. 호프집에 가서 소주랑 맥주, 모듬 소시지를 시켰다.짠 하고 한 잔 마시는데, 해가 소시지를 석석 썰더니 포크로 한 조각을 찍더라.얼굴 앞으로 푹 찍은 소세지 조각을 내밀면서 
아~ 해
하는데, 거기다 대고 나는
아니! 괜찮아! 내가 먹을게!!!
하면서 냠냠쩝쩝.... 
너는 여전하구나 
하는 혼잣말 같은 건 못 들은 척했다.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못 했고,신천역에서 잠실역까지 나란히 나란히 아무 말 없이 걸었다.이 이야기 들으면 다들 바보라구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라 그냥 웃고 만다.


7그 날 이후 해랑 가끔 문자를 했는데.. 사실 답장이 잘 안 와서 되게 서운했더랬다.그래서 약속을 한 번 더 잡아보려고 문자를 했는데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다음주에 보면 안되겠냐.. 하길래혼자 썽이 나서 혼자 연락 끊어버렸음. 그렇다, 나는 바보가 맞다.

8. 그리고 몇 년 후, 해에게서 뜬금 문자가 왔다. 내 네이트온이 해킹된 거 같다는 거였다.그래서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고,답장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 번호를 지워버렸다. 바보 맞지.

9.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다운 거라는데,미련으로 이루어진 얼룩짐 또한 낭만의 범주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내가 더 용기있게 표현했다면?혹여나 내가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면?많은 것들이.. 혹은 작은 것들이라도 달라지긴 했을까.
어쨌거나.... 날이 너무 좋아서 조금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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