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를 알게되었는데
괜찮은 사람 같더라고.
아는 것도 많고. 지식이 많다고 해야되나.
외적으로도 키크고 자기관리를 잘 하셔서 그런지 멋지게 느껴졌어.
그리고 훅 마음이 갔던게 내면이 단단하면서도 여유롭기도 한데 그 빈틈사이로 슬픔이 있어보였어.
성숙한 사람은 그만큼 아픔을 겪었다는 말이 딱 생각나더라구.
그러다보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어디있는지 미어캣마냥 막 찾게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말하고 있을때 온 신경이 그쪽으로 몰려있게 되고
그 사람이 말하다가 나랑 눈 마주치면 내가 얼른 피하게되고
어쩔땐 안 피하고 계속 봐. 계속 피하면 티 날까봐(?) 얼굴에 힘주게 된달까.
그러다가 한번 눈 마주치고 3초동안 서로 가만히 있었는데 그냥 그 순간 난 설레었는데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무튼 밤에도 잘 준비하면서 그 사람 생각나고
생각하다보면 막 심장이 아려와. 그냥 숨이 턱턱 막혀.
이런 감정이 드는게 좋아해서 드는 감정일까?
본지 5일밖에 안됐는데 가능한 일이야?
이게 맞나 싶으면서 혼란스러움.
아 그리고 tmi이긴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 대해 1도 감정 없어보였음.
눈빛에서 알수있잖아. 이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 눈빛이 내 관점에선 너무 무미건조했었어ㅎㅎ
근데 또 그에 대해 슬프진 않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거같아.
아 이 감정을 얼른 정리하고 싶은데 미치겠다.
+)아무도 안들어오는것 같으니 일기장으로 써야겠다.
그 사람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내면의 잘 빚어진 단단함으로부터 풍기는 분위기와 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그 사람을 통해 처음 경험했다.
내 나이 또래가 그런 내면의 아름다움을 펼쳤다 한들 나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봤을것같다. 나와 나이차이가 컸기에 처음엔 어른으로, 동경의 대상으로 봤지만 점점 내 심장은 단순히 어른이 아니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 신호에 내 뇌는 분주해졌다. 에이 설마. 하지만 부정할수록 심장은 눈을 포함해 내 핏줄과 신경에 자신의 확신을 퍼트렸다. 그리고 눈이 확증이 되어주었다. 어딜가나 그 사람이 어디있는지 궁금해하며 그가 없으면 고개를 쏙 빼면서까지 찾게 되었다. 또한 심장은 눈으로는 부족했는지 귀까지 끌여들여 그가 말하는 모든것에 신경을 쏟게 하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냥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글로만 봤던 호감의 무의식적 반응들을 내 눈코입이 그냥 저절로 하고 있었다. 이런 반응들을 되새기며 뇌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뇌가 받아들이니 기분좋은 심장은 열심히 뛰었다.
첫 짝사랑의 아픔을 알고있는 뇌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20대 초반, 똑같이 나이차이 많이 나는 사람을 좋아하며 했던 걱정들은 곧 30을 앞둔 20대 후반이 하고 있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시간이 아까운 걱정들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제껏 느꼈던 그 어떤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었다. 뇌가 하는 현실적인 걱정들을 감히 모두 극복해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당장 만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건강도 안 좋고, 직장 등 그 사람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만한 것들이 전무하기에 이것들은 갖추고 만나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신으로 인해 변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으로 인해 한 사람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또한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이러한 감정과 이 감정을 통해 엄청난 깨달음을 준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몽상가인 내가 드라마틱한 걸 좋아해서 그런지 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드라마틱하게 알려주고 싶다. 나의 몽상의 기록인 소설의 끝에 그가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 사람을 만나 마지막으로 본 여행이 끝난날 8월 22일으로부터 100일 후인 11월 29일,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내 100일의 여정을 시간날때마다 적으러 오겠다. 이 글을 쓴 오늘은 8월 29일, 만 28세가 되기 하루 전인 만 27세의 내가 남기는 첫 기록이다.
첫 기록을 마치기 전에 내가 다짐한 것들을 나열해보려 한다.
1) 건강한 사람이 되자.
2) 여유로운 사람이 되자.
3)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자.
즉, 괜찮은 사람이 되자. 나의 하찮음을 옳은 노력으로 승화시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