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4시간 반 거리에 혼자 사세요. 70대 중반이세요.
아들이 귀해도 너무 귀한 집 장손인 아버지와
8남매 막내딸이었던 어머니가 만나
20대초 어린 나이에 삼남매를 낳았어요.
교회를 다니며 도시에서 자란 어머니와
시골 종가집은 상극 같았고
특히 고부간의 갈등이 정말 심했어요.
엄마가 가출을 하고 시내에 집을 얻고 저희가 나오면서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하셨는데 결국 별거, 이혼하셨어요.
아빠의 불만은 시골에서 살며 할머니를 모시지 않는 거였고요.
이혼 후 아빠는 할머니와 살았고
저희 3남매도 강제로 중학교 때부터 시골 살이를 했어요.
엄마는 타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며 대학까지 자식 셋 등록금이며 용돈을 다 대주셨어요. 저도 장학금 받고 쉬지 않고 알바를 했지만 삼남매가 4년제 졸업하는 데 엄마의 희생이 가장 컸죠.
아빠는 귀남이로 자라고 사업을 해도 다 망하고 술도 중독 수준이고..성실함, 책임감, 타인 존중 이런 게 없었어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난 사람..ㅠ
아버지께 받은 건 대학 갈 때 10만원이 전부였어요.
할머닌 이산가족인데 혼자 남한 내려오셔서
참 희생적으로 사셨어요.
좋은 시어머닌 아녔어도 손주들 사랑으로 키워주셨어요.
할머니 아프실 때 오빠들과 저 번갈아 병원에서 자고
당연히 그렇게 했었어요.
저는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들이 초등학생입니다.
엄마는 제가 큰 애 낳을 때 즈음 재혼해서 잘 살고 계세요.
아빠는 음주운전으로 2번 수감 생활을 했고
2번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변호사비부터 크고 작은 음주운전 벌금은 우리의 몫이었어요.
음주운전 벌금이 천만원이나 되는 줄 몰랐네요.
다행이라면 사고는 안났고요.
혼자 된 아버지를 두고 친인척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며느리에게
잘 챙기라고 해서 새언니가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딸인 내가 더 챙겨야지 하고 아빠를 돌봐드리려 했지만
받은 게 없어서, 눈물로 얼룩진 유년 시절과 나의 우울함 때문에
식사 챙겨드리는 거(한달에 한번 김치나 비비고 즉석국 보내드리는 정도), 명절이나 내려갈 때 대청소 정도 하고 있어요.
글로는 다 못쓰지만 쌓인 게 많아요.
제 결혼식 청첩장을 친척들에게 안보내셨어요.
전화비가 밀려 수신 정지라..제가 50만원 내서 수신 풀었고요.
운동하다 다쳐서 병원인데 퇴원 못한다 해서 병원비 보내라하고. 20년 넘게 전화만 오면 심장이 떨려요. 술취해서 막말하고 기억을 못하거나 아님 돈 달라는 전화..
한번은 봄에 인부들을 써서 모내기 했는데 200이 없다고 돈을 못주고 있다 해서.. 보냈는데 고맙다며 저와 그런 통화한 걸 기억도 못해서 황당했던 적도 있어요.
호구 같은 딸..본인이 가해자면서 약한 척 하는 아버지.
감옥에 있을 땐 제가 마음이 무너져서 심리 치료도 받았어요.
중학교 땐 약을 먹고 자살 시도도 했었고요.
오늘도 갑자기 전화가 와서 파크골프를 아냐며..
골프채랑 옷 같은 거 인터넷으로 알아보라 하시네요.
알아보니 50만원도 넘어요.
쿠팡 가격 비교하며 몇 백원을 아끼고 있는 내가 한심할 지경이에요.
한편으론 애들 학원비만 몇 백인데..그깟 50 없어도 죽는 거 아닌데 마음이 너무 싫어요. 아빠 전화만 오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아이들에게도 짜증을 내고요.
저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사짜 직업도 아니고 돈도 넉넉치 않아요. 남편도 평범한 직장인이고요.
착하기만 한 남편은 아빠와 안부 통화를 하면 꼭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셔라 해요.. 그 말을 들으면 제 속이 속이 아니예요. 시부모님은 그리 말해도 말 안하실 분들이니 그러는 거겠죠. 돈 달라는 부모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못들은 척 할거야..이렇게 다짐하다가도 얼마나 사실까 싶기도 하고 ㅠㅠ 도대체 이 번뇌는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요. ㅠ둘째 오빠는 아버지라면 치를 떨지만 저랑 비슷한 상황이에요. 오히려 가까이 사니 음주운전 걸렸을 때도 새벽에 전화받고 뛰어나가고..ㅠ
누군가는 돌봐야할 존재니까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거겠지..하는데 오빠와 나의 선하고자 하는 본성이 이용당하는 기분 마저 듭니다. 40년이 넘게 괴롭습니다.
정신차리게 한마디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