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에 결혼하고 남편은 딱 6개월만에 중소업체 해외공장으로 2년 파견 나갔습니다 그사이에 전 딸 낳아서 백일 돌 혼자 치뤘습니다 애낳고 조리원 못가고 그냥 집에서 미역국 끓여먹고 모유수유 하면서 키웠어요 그렇게 외동딸 세살 되던해 귀국했는데 몬가 싸했어요 본공장으로 복귀도 미루고 아기도 낯설어서 급성트라우마가 오고 ㅠ 마치 엄마를 뺏길수 있다는 불안감+분리불안이 가중되어 퇴행이 시작되어서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설상가상 한국에 적응이 안된다며 또다시 해외공장 이주를 신청했고 (이때 분명히 가족사택으로 갈수있음에도) 굳이 혼자 가겠다고 하더라구요 환율이 950원 할 때 이야기입니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이미 남편은 해외공장에 여자가 있었고 불법도박 파칭코에 손을대어서 생활비가 입금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3년 되고 4년이 됐어요
딸이 92년생이니 그때는 정부지원이 1도 없던 때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아이는 미술학원과 태권도반에 맡겼습니다
쌀과 부식은 친정쪽에서 도와줬어요 (남편쪽에선 이걸 의심해 남매간 간통으로 말하기도 쓰레기같은 혐의를 씌움)
아이가 11살일때 이혼을 하고 대학까지 혼자 키웠습니다
그사이 한번씩 전남편이 전화를 해와서 딸이 만나기는 한 것 같은데 내게는 단 한번도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사달이 난 것은 아이가 중2때 갑자기 아빠집에 가서 살겠다는 청천벽력 같은말을 하는 것 입니다 (그때의 충격은 잊을수가 없음) 멍하고 있는데 가방을 싸서 나가는데 왠일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근데 하루지나니 울면서 다시 오더라구요 엄마 생각이 나서 못있겠다며.. (난 이미 충격으로 멘붕중인데)그렇게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생활비며 양육비 한 푼 안 준 아빠에게 간다는 것도 희한하고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혈육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넘어갔습니다 중3~ 고3 반장을 쭉했고 대학도 한부모 학력 장학금으로 4년제 잘 졸업했어요
문제는 대학 시작하자마자 딸애가 알바를 하였는데 상상초월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외박하고 전화를 꺼놓고.. 외박하고 하늘이 무너졌어요. 게다가 피임도 안돼서 중절수술한 채로 들어와 누워있는데 정말 하늘이 노랬어요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까지 몰상식한가 싶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말문이 막혀서 실어증이 올 정도여서 그저 우는 것 밖에 없었어요 (이부분은 딸애가 아직도 엄마는 모른다고 믿고 있음) 애지중지 키웠는데 뭔가 배신감에 온몸에서 기운이 쑥 빠지더니 일어설수가 없고 숨이 안쉬어졌어요 그렇게 공황장애와 중증도 우울증 판단을 받고 집에 돌아오자 딸이 보였어요
순식간에 돌변한 나는 식칼을 들고 너도 나랑 함께 죽자 했더니 그대로 아빠집으로 가버렸어요 그게 완전 끝이었습니다
저는 동생네 부부한테 이틀만에 발견되어 병원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후로 친정어버지는 충격에 돌아가셨고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 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1년만에 제 친구로 부터 제딸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것도 재혼한 전남편의 여자한테 엄마 소릴 자연스럽게 한다는 별첨까지 붙여서 ㅠ
쓰다보니 참 기구한 여인의 한, 같기도 한데 요즘 '판' 에글을 올리면 댓글위로가 힘이되기도 조언이 되기도 한다해서 제60년 삶을 담아봤습니다. 딸아, 이젠 애기도 낳았겠지.. 부모맘이 어떤건지 알게 되는 날이 올거다 너의 돌사진과 배넷저고리 앨범들 잘있으니 기회가 되면 가져가거라. 그 전에 나를 다시 못 본다 하여도 슬퍼하지는 마라. 너는 너의 인생을 잘 살 길 바란다. 내생에 내딸로 잠시 와줘서 고마웠다.. 이쁜 기억만 간직하마
부디 건강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