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성된다
로마10,17 입니다
로마 10,9에 나오는 믿음의 정의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하는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건너 뛰어서 엮은 교리여서
2차 저작물들이죠
예수님의 말씀은
실천과 믿음을 구분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고해성사가 없어야 하는 이유가
루터가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매일 4시간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지옥가게 된다는 걱정
불안 우울
그래서 요한 20,21-23을 어거지로 고해성사가 아니라고 부정하려니 로마10,9만 보고 야고2,26-27 은 없애라 그래서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뺀다
그러려면 실천 없는 믿음으로 구원된다고 해야
실천 없는 믿음은 고해성사 거리가 안된다
그러고 보니 율법이냐 믿음이냐
믿음으로 구원된다고 하니
그것 봐라
실천은 율법이니 빼야지 된다
거기에다가 구원은
9원 내고 받나
거저 얻는다고 나온다
그러면 루터가 맞지 않느냐
실천이 포함되면 안되지 않느냐
그런데
용어의 정의를 자기가 정하는 전두환식 옛날 교육을 받으면 사람들이 바보된다며
우민 정책으로 용어 개념 정의를 대강해
원의 정의가 뭐야
그런게 어딨어
그런게 그 시절이고
뭐좀 생각해서 공부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질문하면
그런 것은 대학생이 되어야 이해를 해
수렴하는 극한값
극한
이런 건 너희가 이해 못해
지금도 그걸 왜 이해를 못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우수한 학생들을 그냥 괴롭힌거지
ㅋㅋㅋㅋㅋ
그게
ㅋㅋㅋㅋ
그래 가지고 폼 잡는 애들이 있어요
니가 이걸 이해하냐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용어 개념 정의를 엉터리로 하고 정석을 외우면
거의 만점에 가는거지 서울대학교
그런게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보는거죠
우리는
ㅋㅋㅋㅋㅋ
그래서 믿음의 정의를 루터처럼 자기가 정하면서
공부를 그렇게 하는게 아니래
우리보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정의는 로마 10,17인데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서 생기는 믿음이어야 믿음인데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대
그러면서 너만 옳으냐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그 분들이 다 공부를 엉망으로 하시고
명문대 진학을 하시는
우리 같으면 성격 자체가 그런 것을 허용을 하지 않는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서
그런 걸 뭐하러 해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다른 나라 학위도 필요없다
그러면 관두는 수도 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서
어떻게?
들어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성된다
들음에서 오죠?
그런데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 신학들이 왜 망하냐
그 용어 개념 정의를 엉터리로 해서
다 망했다
듣는 거지
읽어서 생기는 믿음이 아니죠
그러면 이제 성경에서는
읽도록 적힌 것 말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입으로 전해진다
그것이 성전인데
Holy tradition
거기에 대해 좀 뒤에서 다루고
예수님의 구원신학은 무엇인가
그래서 마태7,21-23에 대해
장경동 목사님 설교는 틀리셨다
그 앞부분을 밑줄 쫙
예수님께서는 그 구절에서
그게 이니고
뒷부분에 밑줄 쫙
장경동 목사님과 예수님의 말씀은 정 반대이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고 아예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게 제 말이 아니고 거기에 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나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순서를 거꾸로 쓴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그래서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들 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 말씀을 들어서 생기는 믿음이어야 믿음인데 로마10,17
그걸 빼먹고 구원 신학을 만드니까
마태7,21-23 에서 실천하는 믿음으로 구원된다고 야고2,26-27에도 써 있어서 믿음은 실천과 구분되지않는데 그런 전체적인 이해를 시도를 아예 안한다. 그래도 불안하거나 뭔가 긴장이 없고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놓고 다 갈아 엎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정신질환의 결과에서 마르틴 루터의 심리적 고통을 읽고 있다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들은 알지만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 좀 정성껏 하니
고해시간 보다는 더 걸린다
그런데 4시간 고해성사를 봐?
준비 시간은 ?
8시간 중노동이죠
상설 고해소도 2시간 정도 한 신부님 하시고
교대하시는데 4시간 고해성사를 보셔야 하면
신자들이 들락날락 하시는 것이
아니고 신부님이 바뀌셔야 하는데
보속 주시고 훈계. 여러 말씀을 사죄경
이러려면 한 신부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보통 어디 가서 잘못을 사과하는데
말로 그래 그래주면 거저 용서해 주었다고
생각하지 누가 봐도
그게 거저가 아닌데
루터처럼 그렇게 생각이 될까요
매일 8시간 고해성사만 생각하고 산다
그것도 이번에 잘 못했는데 밤새 저 세상 갔다
그러면 지옥이니 벌벌 떨면서
그게 8시간 막노동보다 힘들지
그렇겠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어디 거저 주어지는거냐
그러니 그런데
로마10,9만 보고 얼마나 기뻤겠느냐가 이해가 되는
그래서 너무 기쁘고
봐라
로마 가톨릭도 아니고
그 사악한
막 그러는 그게 라틴어 미사 성경에
우리는 모르면 피해의식이 나오고
이제 이런것을 알고 나면
더 과장된 로마 캐돌릭도 아닌
로마 캐도릭이야 캐도릭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래서
로마 캐도릭이 사악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 말이 늘 공통적으로 개신교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507년 전 루터의 정신질환의 결과에서 오는 그 고통을 측정하고 보면 그 루터가 한 그 말 그대로 일 것이다
그 어디 책에 써 있는 말인가봐요
루터의 저서에 있다
한 권도 안 읽어 봤지만
그래서 제2경전도 실천하는 주제가 많으니까 그냥 빼고 요한 묵시록의 축약본 요한 계시록이고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그 마지막 3구절 그것을 가지고 성전을 거부하는데 로마10,17 은 듣는 것은모두 다 포함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성되는 것에서 듣는 것이라고 나오니 듣는 것은 다 성전을 포함하게 되고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성전을 근거로 그 구절을 정말 확인하니 로마10,17에서
들음은
읽음이 아닌 들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
가톨릭은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문제 삼는 이유가
성경을 대충 읽어서
유의해서 읽지 않아서
공부를 해도 설렁설렁 그래서 안 그래도 고해성사를 빼려니 어거지 부리면서 왜곡하는데
어설프게 가면서
들음이지 읽음이 아닌 것을
유의하지 않아
실제로도 전해오는 성전을 부정하고
틀린 주장을 하고
가톨릭 교회가 잘못이라며
얼렁뚱땅한 결론을 내리는 그런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