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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와 모욕 속에서 끝까지 버텼던 제 군생활 이야기입니다”

후니짱 |2025.04.13 17:29
조회 51 |추천 1

제목: 해병대 상근예비역, 그 끝없는 고난의 시간

2011년 3월, 나는 해병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현역과 함께 훈련을 받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 후에는 출퇴근을 하며 군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훈련병 시절, 나는 여러 번 실수를 했고, 동기들에게 욕을 먹기 일쑤였다.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는 내가 그들에게는 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닥친 진짜 시련은 이병이 되고 나서 시작되었다. 나는 시설 관리라는 보직으로 배정되었고, 그곳에서 나의 군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훈련병 시절에는 내가 실수할 때마다 동기들이 나를 비난했지만, 이제는 선임들이 나를 향해 냉혹하게 다가왔다. 나는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어딘가 모자란 듯한 내 모습에 선임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나를 무시하는 선임들의 태도, 심지어는 욕설과 폭력까지 이어졌다. 기억이 나는 것은, 내가 실수할 때마다 선임들이 나를 불러내어 훈련을 시키거나, 때로는 무자비하게 체벌을 가하던 일들이었다. 나 때문에 3번이나 집합해 기합을 받은 날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중, 나에게 작은 위로의 손길이 닿았다. 병영상담카페에서 나는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적어 보냈다. 처음에는 하소연을 하는 마음으로, 그저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이 예상보다 큰 반응을 일으켰고, 결국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고, 두 명의 선임이 영창에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시설 관리에서 충무식당으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이로써 내 군 생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충무식당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상근예비역 1개월 선임과 현역 6명과 함께 일을 했고,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도전은 또 다른 시련이 되었다. "일을 너무 못 한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계속해서 비난을 받았고, 현역 분대장 선임 앞에서 30분 간 경차렷 자세로 정신 교육을 받은 날도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거슬리지 않으면 넘어가겠다"는 경고만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주어진 일과를 완수하려 애썼다.

내가 생각한 대로 군 생활은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규정에 따라 '예'라고 대답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잠시 망각하고 선임에게 '예'라고 대답했다. 그 한 마디에 선임은 나를 '개XX야'라고 비하하며, 나의 감정은 폭발했다. 결국 싸움으로 번졌고, 그 일은 부대 내에 소문이 퍼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또 다시 하극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후임들까지 나를 만만하게 보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들이 쌓여가면서 나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 품위를 지키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후임들이 나를 놀리거나 화를 내면, 나는 억지로 참고 넘기려 했지만, 때로는 참지 못하고 욕설로 맞받아치기도 했다. 그런 대화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후임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후임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서 그의 치아를 다치게 했고, 이 사건은 중대장에게 보고되었다. 그때, 나는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임이 나를 괴롭혔던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비난을 받았다.

그 사건 이후, 나는 2박 3일 동안 휴가가 제한되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노동을 해야 했다. 내 군 생활의 끝은 그렇게 억울함과 분노 속에서 흘러갔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을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한달 맞선에게 군화를 빌려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군화를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도움으로 군화를 돌려받았고, 선임은 후임들에게 내가 경례를 하지 않도록 명령을 내렸다.

전역을 마친 후, 나는 선임들에게 욕설 문자도 보내고, 그들의 만행을 되돌려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억울함과 상처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한계를 넘은 순간이라 생각한다.

해병대 상근예비역으로서, 나는 인간승리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 이 모든 경험이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시절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결국엔 극복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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