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까니
|2025.07.20 07:28
조회 54 |추천 0
마태오 23장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오직 성경"에 의해서, 또 개신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개신교의 "오직믿음"은
성경구절을 "있는 그대로 믿기 때문"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ㅡ 갈라티아서 2장 16절
이처럼 개신교는 성경구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판단을 서슴없이 할 가능성을
더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ㅡ 갈라티아서 2장 16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으로 개신교는 의롭게 되었고,
또 선택받은 자로써,
개신교는 무조건 나는 예수님을 믿었으니,
"구원을 나는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습니다.
성령이 증거가 된다는 논리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내가 반론을 만들겠다.
보아라. 이 한마디로 개신교는 끝났다.
"개신교는 졌다"
성령이 분명히 있는 개신교는 졌으니,
성령이 증거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또 다른 증거를 찾아야지요.
증거 위에 또다른 고차원의 증거인 성경은
지금의 개신교를 비추는 성경구절들이
수없이 방대하게 많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서도
분량을 꽤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가져다주는 믿음?
성경에서도 성령과 믿음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보십시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1-3절
성령과 믿음은
이래도 부인하시겠습니까.
또 믿음이 이번에도 쓰여있어서,
또 개신교는 이상하게 주관적으로 해석할 것이
안보아도 분명합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개신교 교리가
이상한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개신교는 불행히도 졌습니다.
다음의 논란이 될만한 예시의 성경구절을
마태오 23장 9,10절을 예를들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아니다"로도
해석하는게 가능한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는 이처럼 복합적인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개신교는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 믿는게 더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가지만 묻습니다.
개신교는 왜 이기지도 못했으면서
이 엉터리 말을 주장할 위치에나 서 있습니까.
개신교가 이겼습니까.
개신교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면
이겨놓고서 이야기 해야 하겠습니다.
개신교는 이겼습니까.
천주교처럼, 여러가지 상황과 전승을 보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고, 성경구절을 판단을 하는게 아니라,
개신교는 오직 성경구절 하나만 보고서는,
위의 성경구절에서처럼 "있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곤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하나만 보고서도 그 사람에 대해 개신교는 말하기를,
"그 사람은 믿었으니 무조건 구원이다"라고
말하듯이 말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령", "오직 성경"으로 라는
개신교의 기본 교리들은,
개신교 자체의 교리에서도 "오직 성경"에 대한 교리는
틀렸음이 이미 저로인해 파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개신교의 실제상황을 성경구절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은 이미 성경은 개신교자체를
적나라하게 실제 사진기처럼
개신교를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믿음? 네. 개신교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 아니다. 성경은 불태운 적이 있을만큼,
사람의 손을 댄 흔적들이 넘쳐납니다.
다시 사람이 펴낸 제2의 성경을 보십시요.
마카베오의 연옥구절은 통째로도 삭제한 개신교입니다.
성령? 네. 개신교는 성령을 쓸수있는 "성령세례"라는
성령을 마음대로 쓸수 있게 하는 믿음만이 있었고,
천주교의 "물과 피"처럼 정식이 아니지만,
"믿음의 아브라함의 복"에 의해 성령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을 이 한가지 이유로
개신교는 성령을 마음대로 쓸수 있습니다.
믿음? 성령?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성경을 제외하고 하느님을 논하는 것은,
증거의 중요한 정도가
"성경이 교과서에 해당하며, 교과서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다"를 깨뜨리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논쟁과 설전에 병적으로 능하기만 하면,
"악신에게 졌다는 심각한 오류"가 자동적으로
아물게 되는 것입니까.
믿음에대한 한 구절만 보는것이
얼마나 세상에서 위험한 일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의 말씀이니까 있는 그대로 믿는다?
다음 성경구절을 보고도
"있는 그대로" 행할수 있는지 봅시다.
또는 개신교처럼, 성경구절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것이
항상 맞는지도 함께 봅시다.
마태오 23장 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이를 있는 그대로"
개신교는 실행할수 있겠습니까.
개신교는 불행히도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다. 필요하면, 엄마를 부른뒤에 생각하겠다. 아버지란 단어는 성경을 본 오늘 이후로는 세상에는 없는 단어다. 난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다."
이렇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또 한명이 더 늘었습니다.
개신교처럼, 성경 한구절만 보는것이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그런 성경 한구절만 보는 개신교는,
천주교 입장에서는 한심합니다.
똑같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성경구절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ㅡ 로마서 10장9절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ㅡ 마태오 23장 9절
로마서의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와
마태오의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똑같습니다. 같은 성경구절들이란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협소하게 문자 그대로 성경구절 한 문장을
개신교처럼 보아야 하는게 맞습니까?
천주교에서는 "믿는다"는 "곧 구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또 하나의 필연적인 증거로,
개신교는 불행히도 졌습니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ㅡ 마태오 23장 9절
이거 하나만 가지고, 개신교의 교리를 따지며,
물고늘어져도 개신교는 곧 끝장이 나게 됩니다.
"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구절을 그대로 했을 뿐인데
내 삶은 더욱더 불행해졌을까."라고
하느님께 개신교는
따지기 시작할 것 입니다.
"나는 성경말씀대로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더 불행한가. 하느님은 나에게 왜 이러신다는 말인가."
개신교는 결국,
배운대로는 이를 설명해 내지를 못하고 맙니다.
똑같이 성경구절대로 했을 뿐인데?
"오직 믿으면 구원"이라는 성경구절과
있는대로 똑같이 이번에는 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라는
성경구절대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그런데, 왜 나는 괴롭고 또 한없이 불행해 지는가."
성경구절을 단 하나만 개신교처럼 보니까,
시야가 어떠신가요?
개신교의 시야가 맞습니까.
악신을 이긴 천주교의 시야가 맞습니까.
협소하게 보고 믿는것이 맞습니까.
개신교가 맞습니까?
"기독교 중엔 개신교만 악신에게 졌다"는 기가막히는 사실.
맞습니까?
개신교와 똑같이 성경구절을 하나만 보았습니다.
또 개신교는 교파도 하나가 되기는커녕 여러 갈래들로 갈라져서 하나의 뜻이 되지를 않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한입 가지고 두말 하신다는 소리를
개신교는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바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여러갈래로 갈라지고 여러뜻이 다 있다며,
개신교는 희대의 망언을 결국 하고 말았습니다.
개신교인들은 또 그대로 믿습니다.
내가 지어냈지만,
개신교는 이런소리를 안할것 같습니까.
그런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는 개신교는 악신에게 졌다. 그들은 신심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다"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5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ㅡ 디모테오 1서 6장 5절
개신교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보았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