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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 날은 엄마의 장례식이었고,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배신한 날이기도 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엄마가 홀로 집에 계실 때
아버지는 늘 해왔듯이
사업을 핑계로 늦은 밤에도 귀가 하지 않은 채였지만
실은,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만나 자기만의 쾌락을 만끽하는 중이었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외쳐보지 못한 채
차가운 거실 바닥에서 쓰러진 채 받지 않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단다.
그 역겨운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귀가해서 겨우내 발견을 하였고,
뒤늦게 독립한 자식인 나와 여동생은 달려나가
장례식부터 준비를 해야만 했다.

살아 생전 나 결혼하는거 보고싶다고
지금 만나는 친구, 참 이뻐보인다고 그렇게 말했던 엄마라서
한번 얼굴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가셨다.
그렇게.

공교롭게도
그 전날의 우리는 싸운 상태였다.
싸웠다기보다는 기분 좋게 여행을 다녀오고 마무리에서
내가 기분을 상하게 해서 화가 난 상태였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집 앞에 찾아가 사과를 해도 좋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미안하다며
다시는 우리 자기, 이럴 일 없게 만든다고 말하면 되었다.
맞다. 정말 쉬운 문제였고 정답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장례식장에 있었고, 너는 연락이 없었고,
우리 장례식장은 바람 펴서 엄마를 죽게 만들었다는
무겁고 찢어지는 분위기가 감내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전할 수도, 사과도 할 수 없었다.

저녁에 너에게서
하나하나 자기가 화났던 일을 조목조목 
말하는 톡이 왔다.

뭐랄까, 그때에 난 조금 지쳤던 것 같다.
답장을 아주 늦게 했다. 그리고 내용도 엇나갔다.
미안하다고 하면 됐을 걸, 그렇게 엇나가버렸다.

늦은 답장과 말도 안되는 나의 대답에
너는 헤어짐을 말했다.
기회는 한번 더 있었음에도 나는 알겠다고 해버렸다.
내 감정이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너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울면서 했던 게 얼마 전인데
이런 집안에 널 끌어들이는게 싫었다. 죄스러웠다. 아니, 쪽팔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없었다 ..

그렇게 우리는 어이없게, 헤어졌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엄마를 보내고 아버지와는 절연하기로 맘 먹고
이런저런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내 자신이 뭔가 무너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인 줄 알았는데, 너 없이 그냥 버티고 있었던거다.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생일이 다가왔고
참지 못하고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미친 것 같았다.
다행히도 넌 전화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무척 길게 통화했지만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친구와 계속 만난다면
못난 나를 투영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전하고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 뒤 연락 없이 쭉 시간을 보내다가
참지 못한 감정에 너에게 또 연락을 시도한 내게 정이 털린 너는
날 차단하고 우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너는 여전히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모를테고
나는 이렇게 글이나 쓰고 자빠졌지만
결국 모든 게 나의 핑계고
나의 자존심이었고
널 품을 자신이 없는 나란 남자의 못남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도 안다. 내가 정말 못났다는 걸.

그 후 시간이 지나 너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긴 걸 알았고
그 날의 나는 정말 펑펑 울었고
속으로 삼키고 지금껏 살아내고 있다.

이제 널 잡을 수도 없고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 갖지 못한 계절들만큼
우리 라는 단어는 어색함과 낯선 기억으로만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감정은 무척이나 오래 걸려서
쉬이 쉽지가 않다.
마지막에 전달된 편지에 그래도 하트라도 남겨주어서
너의 배려에 무척 고맙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끊어내야만 함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겁쟁이일 뿐이고
언젠가는 두번째 이별을 준비해야함을 안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났고
앞으로 더한 시간이 지나가겠지만
넌 행복하길 꼭 빈다.
진정한 내 첫사랑.

추천수3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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