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진짜 심플했어요. 서로 3년 만나면서 돈 얘기, 가치관 얘기 다 했고, “우리 결혼은 현실적으로 가자” 합의했거든요. 예식장 비용은 반반, 집은 전세로 들어가되 보증금은 남자친구가 대출+셋돈 일부, 대신 혼수는 제가 맞추자. 예단은 서로 부모님이 원치 않으니 생략, 예복은 각자. 이 정도면 깔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D-60이 되자 모든 게 뒤집혔습니다. 아니, 뒤집혔다기보다… 갑자기 “원래 그렇게 하는 것”들이 하나둘 소환되더라고요.
시작은 예단이었어요. 안 한다고 합의했고 부모님끼리 인사 자리에서도 “요즘 세상에 예단은 오히려 부담”이라 서로 웃으면서 넘어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점잖게 카톡을 보내셨어요. “우리 집안은 예단을 아예 안 하진 않았단다. 현금이 부담이면 예단이불만이라도.” 저는 솔직히 현금이든 이불이든 ‘형식’ 자체가 부담이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자영업 문 닫고 겨우 정리하신 뒤라 여윳돈이 없고, 저는 모아둔 돈으로 혼수·이사·신혼 생활비까지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요. 그래서 정중하게 “처음 합의대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며칠 뒤 남자친구가 퇴근길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요. “엄마가 서운하대. 현금 말고도, 뭐… 반지라도.”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우리가 합의한 건 뭐였을까요.
그 다음은 하객이었습니다. 남친 쪽은 지방 대가족+회사 동료까지 해서 200명 예상, 제 쪽은 90명 남짓이에요. 예식장 계약할 때는 식대 1인당 가격만 보고 반반으로 했고, 축의금은 각자 방명록 나눠서 정산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시댁에서 “하객 많이 오는 쪽이 부조 정산도 더 복잡하다, 그쪽 탁자 서빙 인력도 추가해야 한다, 웨딩홀 서비스 이용도 더 많다”라며 “식대 균등분담이 맞나?”라고 슬쩍 물으시더라고요. 그럼 처음 계약 때 얘기하지 왜 이제 와서… 싶었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제 하객 90명에게 부끄럽지 않게 대접하고 싶어요. 근데 하객 수가 갑자기 협상 카드가 되는 순간, 그 자리가 축복이 아니라 계산서처럼 보였습니다.
세번째는 집 문제였어요. 전세 보증금은 남자친구가 대출을 주로 끌고 오고, 저는 혼수로 버팀목이 되자고 합의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견적을 내보니 냉장고·세탁기·TV·에어컨·가전 패키지에 기본 가구까지 맞추면 금액이 확 커져요. 저는 “필수만 먼저 사고, 살면서 채우자”고 제안했어요. 남친은 “이사 한 번에 다 끝내야지. 내가 대출로 집을 준비했으니 너는 집 안을 완성해 달라”라고 했고요. 여기서 또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출은 당신 이름으로 남고, 혼수는 제 통장에서 바로 빠져나가요. 둘 다 부담인 건 맞는데, 성격이 달라요. 한쪽은 장기 채무, 한쪽은 즉시 지출. 숫자로 같다고 같은 무게가 아니더라고요.
네번째는 디테일입니다. 폐백, 주례비, 혼주 헤어·메이크업, 스냅 촬영 원본 비용, 사회자 사례, 작은 답례품, 청첩장 추가 인쇄, 심지어 식전영상 배경음악 저작권료까지. “조금씩 내자”가 쌓이면 결국 누군가는 많이 냈는데도 “조금”이라 불리고, 누군가는 적게 냈는데도 “크게 냈다”로 기억되는 이상한 장부가 생겨요. 저는 숫자를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확한 걸 좋아해서 항목별로 분담표를 만들었고, 상대가 편하도록 요약까지 해서 보여줬어요. 그런데 돌아온 말은 “너무 계산적이다”였어요. 분명 처음엔 현실적으로 하자고 했는데요.
마지막으로 제일 아픈 장면. 엄마가 제 손을 잡고 말했어요. “너 행복하려고 결혼하는 거지? 우리 집 형편 못나서 너한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저는 괜찮다고, 엄마 탓 아니라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쪽이 쿡쿡 아팠어요. 내가 원하는 결혼은 서로의 형편을 인정하고 ‘우리의 기준’을 세우는 건데, 자꾸만 ‘원래’와 ‘체면’이 그 기준을 흔듭니다. 그 ‘원래’가 누구에게는 그저 습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빚이 되고 상처가 되거든요.
그래서 요즘 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사랑과 현실의 중간 지점은 어디인가, 양보와 포기의 경계는 무엇인가, 서로의 부담을 진짜로 공평하게 나누고 있는가. 솔직히, 합의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문서로 남겨야 하더라고요. 차갑게 들리더라도, 결혼은 공동 프로젝트니까요. 저는 이렇게 해보려 합니다. 오늘 밤, 둘이 앉아 항목별 분담표를 다시 펼칩니다. 예단은 처음 합의대로 생략, 대체 제안 없이 종료. 식대는 계약대로 반반, 다만 추가 인력이나 옵션 발생 시 어느 쪽 요청인지 표기해서 그쪽이 부담. 혼수는 필수 리스트를 1순위, 나머지는 입주 후 3개월 내 분납처럼 단계화. 그리고 부모님 관련 비용은 각자 부모님 몫은 각자 부담. 마지막으로, 바뀌는 게 생기면 바뀐 사람이 “왜, 얼마, 언제”를 먼저 제시하고 상대 동의를 얻는다는 최소 규칙.
제가 너무 딱딱한가요? 저는 오히려 이게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고 싶어요. 사람의 기억은 감정에 휘둘리지만, 종이에 적힌 약속은 감정이 흔들려도 기준이 되니까요. 지금 저는 “원래”보다 “우리”가 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 기대도 존중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결혼식은 하루지만, 가계부는 매일 열어야 하잖아요.
동거·결혼 준비 선배님들, 여러분은 어디서 선을 그으셨나요. 예단·혼수·식대·하객 문제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신 분들, 기준을 어떻게 세우셨나요. 반대로 “그때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더 크게 돌아왔다”는 경험도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이 마지막으로 정교하게 설계할 기회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계산적”이라 할지 몰라도, 저는 그 계산을 사랑의 언어로 바꾸고 싶습니다. 서로를 덜 다치게, 더 오래 가게 하는 언어로요.
혹시 제 마음이 너무 무겁게 들렸다면, 오늘의 요약은 이거예요. 합의는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전통은 선택지가 아니라 옵션으로, 비용은 균등이 아니라 공정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원래”가 아니라 “우리”로. 저는 그 “우리”를 지키고 싶어요. 여러분의 기준을 나눠 주세요. 지금, 이 시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