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선글라스, 트렌치코트, 랩, 손목시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얼핏 봐서는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생활용품일 뿐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이들은 모두 전쟁이 낳은 발명품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20세기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악의 조건인 전장에서 쉽게 사용하고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발명품이 탄생했다. 그 가운데는 인스턴트커피도 있다.
커피가 처음 전장에 등장한 것은 거의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서로의 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지키고 탈환하기 위해 무려 200여 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전쟁에 나간 기독교인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십자군이라 불렸다. 결국 13세기 말 이슬람의 승리로 일단락됐지만, 이 무의미한 전쟁으로 무고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실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슬람의 다양한 향신료와 더불어 천문·과학 기술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였다. 그 결과 유럽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면서 왕의 힘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추, 정향, 계피 등과 함께 커피도 유럽에 전해졌다. 처음에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 얻게 된 전리품이었다. 이슬람 군대가 남기고 간 식량은 독을 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모두 불에 태워 버렸다. 커피 원두를 태우면 어떻게 될까? 고소한 향이 바람에 실려 사방팔방으로 퍼질 것이다. 맛을 보지 않아도 이것은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수완이 좋은 장사꾼이라면 커피가 유럽에서 후추 이상의 초대박 상품이 될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후 처음부터 흥행한 것은 아니다. 커피가 향은 훌륭하지만, 맛은 쓰디썼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시는 것을 꺼렸다. 특히 귀부인들에게 그랬다. 극적인 반전은 18~19세기 설탕의 대중화가 가져왔다. 구수하고 그윽한 향에 단맛이 가미되면서 커피는 그야말로 국민 음료가 되었다. 고된 노동이나 독서 중 잠깐 짬을 내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가장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이는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유럽 최초로 커피를 군대 보급품으로 지급한 것은 나폴레옹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보다 커피의 효과를 잘 알았던 그는 군인들의 사기진작뿐만 아니라 전투력 향상을 위해 커피를 활용했다. 술은 일과를 마치고 즐기고 커피는 일과 중에 마신다. 그 반대가 되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다. 술이 성공적인 하루에 대한 보상이라면 커피는 그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복용하는 피로회복제와 같은 것이다. 전투가 끝나면 술과 고기를 먹고 전투 중에는 빵과 커피로 기력을 보충했다. 전쟁 중 두려움을 없애려고 일부러 독주를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는 일시적인 효과일 뿐 전쟁의 승리와는 무관하다. 커피 덕분인지 나폴레옹의 군대는 전투마다 연거푸 승전고를 울리며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유럽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인스턴트커피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결국 20세기에 이르러 일본계 미국인 화학자인 사토리 가토가 안정적인 인스턴트커피의 만드는데 성공했다. 1901년 그는 끓인 커피를 건조해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로 희석해 마시는 솔루블(Soluble) 커피를 발명하고 1903년 특허를 냈다. 그러나 그는 애석하게도 발명품을 상용화하지는 못했다. 바통(Baton)을 이어받은 것은 미국 초대 대통령과 이름이 비슷한 조지 콘스탄트 루이스 워싱턴이었다. 그는 1910년 낮은 온도에서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제조한 인스턴트커피를 발명하고 특허를 낸 후 상용화에 성공해 큰 부를 쌓았다.
사실 그의 성공 배경에는 1914년부터 4년간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압도적인 화력과 다수의 용맹한 군인이다. 그러나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렵게 잡은 초반의 승기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전투에 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보급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보급품 중 식량이 가장 중요한데 그 가운데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인스턴트커피가 나오기 전만 해도 커피를 즐기려면 분쇄한 원두를 끓는 물에 넣어 우려낸 후 거름망으로 걸러내거나 커피 가루가 입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컵과 뜨거운 물만 있으면 10초 만에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군인들은 처절한 전투 후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애인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미국은 무기는 물론이고 식량과 인스턴트커피 또한 유럽에 수출하면서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를 여는데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가정집에서도 편리한 인스턴트커피를 즐기게 되는 등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커피 제조 기술은 더욱 진일보했다. 인스턴트커피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있다. 바로 세계 최대의 다국적 식품회사인 네슬레(Nestle)다. 이 회사의 결정적인 성공 기반은 아이러니하게도 제1, 2차 세계대전이었다. 네슬레는 전쟁터에서 필요한 전투식량을 공급하면서 급성장했다. 1차 세계대전보다 판이 커진 2차 세계대전에는 네스카페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커피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50년 이전만 해도 국내 커피 시장은 원두커피가 대세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는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들은 인스턴트커피를 보급품으로 받았다. 장사치들이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빼돌린 인스턴트커피는 부산의 국제시장과 서울의 남대문시장 등과 같은 암시장(Black Market)에서 암암리에 유통됐다. 전쟁통에 사람들은 인스턴트커피에 맛을 들였고 그 흐름은 자판기 커피와 RTD(Ready To Drink) 커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쟁은 형언할 수 없는 상흔을 남기지만, 때에 따라서는 시대의 변화와 혁신을 동반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은 요원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며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패전국 일본이 그렇게 빨리 회복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커피를 즐길 수 있었을까에 대해 의문이다. 이게 바로 전쟁과 역사의 아이러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스턴트커피 제조 기술은 반도체만큼이나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 개발 및 판매 시작으로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하늘이 말고 신록(新綠)이 무성한 오뉴월, 나들이를 떠난다면 커피믹스 하나를 톡 뜯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겨보자. 이 소소한 행복을 가능케 한 커피 기술자와 이 땅의 독립을 가져오고 평화를 지켜낸 호국영령에게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