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의 산증인이자 '개그계의 대부'로 불린 전유성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25일 오후 9시 5분경 전북대학교병원에서 전유성이 별세했다. 그는 딸 제비 씨가 곁을 지키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 관계자는 "이미 마음의 준비는 있었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고 전했다.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앞서 더팩트는 전유성이 딸에게 유언을 남길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한 바 있다. 코로나19 후유증이 장기간 이어지며 건강이 크게 악화됐고, 올해 들어 수차례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이번 주가 고비"라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3일에는 폐 기흉 문제로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전해졌지만, 당시 전유성 측은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호흡하고 있지만 위독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1949년생인 전유성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를 졸업하고 1968년 TBC 특채 코미디 작가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프로그램을 통해 1970~1980년대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다. 무딘 듯 핵심을 찌르는 언변과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 무대 매너로 ‘국민 개그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희극인이 ‘코미디언’으로 불리던 시대에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1호 개그맨', '개그맨의 조상'으로 불리며 개그를 공연 장르로 확립하고 대중문화 속 위상을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후반에도 전유성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신개념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KBS2 '개그콘서트'의 원안을 제시해 대학로 소극장 개그를 방송으로 옮겨왔다. 무대 세트와 시청자 참여 구조, 후배 개그맨들의 실험 무대를 도입한 이 프로그램은 공개 코미디 붐을 이끌며 20년 넘게 장수했다.
김진수 기자 / 사진= '꼰대희'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