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는 성경에서도 쓰여진 것입니다. ㅣ
까니
|2025.11.02 07:46
조회 48 |추천 0
23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ㅡ 마태오 23장 23절
마태오 23장 23절
전 문장을 보시겠습니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ㅡ 마태오 23장 23절
보시다시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십일조를 무시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십일조를 내야한다"는 바로 지금의 성경구절은
어떻게 받아들이시겠냐는 말입니다.
이해를 못하시겠습니까.
지혜로 보십시요.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ㅡ 지혜서 7장 28절
이해가 가십니까.
아직도 주관적으로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성경까지 보여주시는 천주교 봉헌금의 액수에 해당하는 십일조를
바치게 하시겠습니까.
보십시요.
십일조와 관련된 성경구절을 다시 보십시요.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혹시 뒤에 써 있는 성경구절인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에 초점을 두십니까?
악에게 눈이 가려
본질을 잘못 짚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지요?
저는 오히려 앞에 쓰여진 문장인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에
초점을 맞춰서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르다면,
깊이 생각해 보십시요.
십일조가 불평등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평등하게 책정된 금액으로 느낄까요?
돈을 못버는 사람들에게도 십일조를 책정하는 것이
불평등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만큼 훨씬 적은 액수를 내게 될것이며,
그 돈들은 다시 가난한 자들에게 되돌아가게 되니,
어째서 이게 불공평한 금액이 되는지를
저는 반문하면,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심지어, 이는 개신교는 이미 실행하고 있는
성공이 바로 눈앞에 보장된 이미 성공한 액수란 말입니다.
“개신교는 십일조 내기를 아까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성경구절의 본질이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으로
저는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ㅡ 마태오 23장 23절
다시 보시니,
십일조가 불공평한 금액은 아니었으며,
깊이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정해지지 않아서 불편을 겪는것보다 훨씬 안정된
“성경에서도, 정해진 액수의 금액”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의견이 다르니,
서로 중요한 요소를 보는 관점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십일조가 성경에서도 제시하시는 봉헌금의 액수”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십일조가 왜 타당하지 않는지
오히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각자의 수입의 1/10이 타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사람마다 일정한 액수인 1000원보다는
훨씬 타당성이 높은 액수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성령회관에서 말기 암의 완전한 치유와
마귀들린 자들이 마귀가 떠나가서 악에게서 벗어난다는 사실과
하느님께 보호를 받는게 천사들로인해
진짜 실제 보호받게 되는 실제사실에 해당하며,
이것은,
성령을 힘입어 보아야만 알게 되는
사실인 것입니다.
천사들에게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실제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안 믿겠습니까?
또 실제로 현실에서도 성령회관에서는
그 기적들이 나타난다고 소문이 퍼진다면,
십일조는 무리한 요구가 아닌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이미 그 성공사례로써,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천주교는 성령을 기피하였기에
“십일조를 터무니없이 큰 금액으로 보는편이었었다”는 의견이
더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을 힘입게 한다면,
절대 십일조가 불공평한 금액은 아닙니다.
개신교는, 오히려 아직도 성령을 모르는 그들이
가엽다고 여길 것입니다.
또, 보아야 할 사실은,
천주교는 성령을 기피하였기에
성령에 힘입은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방언도 못하게 하였다고
신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니면, 옛 성직자들 역시 생각하기를 천주교는
"전세계의 여러 종교중에서 하나의 종교일 뿐이다"라고
지금도 여기고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옛부터 가톨릭에서는
“오직 미사”만 중요하다고 하였기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러면, "마지막 시대"인만큼 저는 오히려 개신교보다
성령을 아는자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올바르지 않고 또 맞는 상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마지막 시대를 지나도 천주교는
성령을 모르는 자들이 과반수를 훨씬 넘었다?
이게 비참한 사실이 진짜가 될 뻔 하였습니다.
만약, 고위성직자께서 혹은 교황님께서
종말 때까지 이 상태 그대로 천주교를 끌고 가신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시려고 하십니까.
잠시 성경에서도 말씀하신,
이렇게 교회를 이끄는 큰 책임과 그에 대한 요구가
과연 누구한테 있는지를 살펴보시겠습니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ㅡ루카 12장 48절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ㅡ 48절
많이 주신 사람은, 객관적으로만 본다면 이렇습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권한을 가지고있는 5달란트가
많이 주신 사람이다."
5달란트가 많이 주신게 아니라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최종 승인과 이끌어 갈수 있도록 맡기신 자가
5달란트가 되는 동시에,
가장 많이 맡기신 사람은
"교황님"이 아니겠습니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성경에서도 가리키는 성직자는,
많이 주신 사람도 5달란트요,
많이 맡기신 사람도 5달란트가 됩니다.
1달란트나 2달란트 무리가
가톨릭을 이끌어가는 권한도 없고
많이 주신 금액은
절대적으로 아니었습니다.
2달란트 신부님이 재정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신부님도 파견된 사람으로,.
단지 주교님 명령에 따르는,
복종해야하는 파견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 맡기시고,
결정의 큰 권한은 5달란트가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의 바람은,
성령회관에 힘써달라는 동시에,
성령회관에서의 기적들은, 소문이 되어 널리 퍼질 것이며,
그렇게된 후에는 십일조로 봉헌금을 정한다해도
반발하는 자는 극히 적을 것이며,
혹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령회관의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갈 정도로,
성령으로 인한 기적, 치유, 구마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후에
십일조로 변경하는게 어떨까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신교처럼 하자는 말씀입니다.
이미, 성공사례로 개신교는 반발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반발하기는 커녕,
성령으로 인한 개신교의 믿음은 너무나 큰 성채나 절벽과 같이
넘볼수 없을정도로
굳건히기까지 합니다.
보십시요.
성령의 주된 임무 중에 하나만 기억하십시요.
네, 그것은 믿음을 준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요.
성경구절도 "성령이 믿음이다"라고 써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개신교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하고 자랑스럽게 대놓고 떠들어 다니지 않습니까.
천주교는 “예수님이 주님이실까?”
하고 믿음에 있어서는
개신교보다는 많이 위축된 모습에,
성령을 사용한 적이 없는 천주교이기에,
그런 것임이 밝혀지게 되었고,
오히려 믿음에 있어서는 개신교보다
심하게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체성혈만
진짜 예수님의 몸과 피이면 뭐합니까?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천주교는 성령을 진심으로,
천주교의 미사처럼 대한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성령의 활동인 방언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서는 금지하라는 명령을 하는 등
이러한 성령을 적대하는 행위가
한국에서는 심심치않게 벌어지고 있으며,
성령을 적대시함으로써 얻는 것은 없었으며,
성경까지 지키지 않고, 성령을 무시하는게
오히려 신자수를 늘지 않게 해주는 요소는 아니었습니까.
성령은 믿음을 준다는데,
심지어 성경과는 반대로 나아가는 행위인
성령을 쓰지않는 천주교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천주교 사람들을 제대로 본적이 없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성령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신유물인 방언조차
사람들 눈에 띈다고 하지말라고 권고하는 지경이니,
성경구절까지 무시하고서는 거기에 오히려
현실에서는 사람의 생각만을 첨가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성경을 반대하고 신의 말씀인 성경보다
오로지 사람의 생각으로만 해결하려고 한 결과,
성경과는 오히려 정반대로만 행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의 천주교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천주교는 신자수를 늘리기위한 오로지
사람의 생각들을 모아두고 사람의 생각을 실천하는 등
성경보다 사람의 힘을 앞세운 천주교의 일부분인 모습이
여태까지 지속되었으니 말입니다.
반면, 개신교는 어떻습니까.
성경대로 행하였더니,
금새 성령으로인한 개신교 개개인들에게 믿음을 주었고,
그 결과 1000만 개신교를 찍어내는 기염을 토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개신교는 피도 없었고, 물도 없었으며,
오직 아브라함의 복으로 인한
성령만을 가지게 되었을 뿐인데도,
그 성령의 힘이 토종종교인 천주교를 따돌리고
오히려 천주교보다 먼저 개신교는1000만을 찍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래도 성경구절대로 행하기는 커녕,
또 사람의 생각을 첨가하는 반복하는 실수를 계속 범함으로써,
“개신교는 악신에게 졌다”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도,
개신교는 금세 다시 일어나는 힘을
성령으로인해 줄수도 있습니다.
천주교는 사람의 생각을 우선시하니까요.
개신교의 성령은, 악신에게 졌음에도
성경에서도 성령은 믿음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보십시요.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성령회관에 한분이라도 더 모셔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