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약 위반 명백"…멤버들, 연속 패소 끝에 소속사 복귀 선언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었던 1년…여론전의 한계 드러나
뉴진스 멤버들이 소속사 복귀를 선언하면서 소속사인 어도어·하이브의 분쟁이 일단락됐다. 마침내 뉴진스 측이 패배를 인정한 모양새다. 그동안 뉴진스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이며 싸움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더 이상의 분쟁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2024년 4월 민희진 전 대표와 하이브 간 분쟁에서 비롯됐다. 이후 뉴진스 멤버들이 11월 민 전 대표의 복귀를 주장하며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 어도어는 12월 멤버들의 독자 활동을 막아 달라는 가처분 신청과 함께 전속계약 유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년여 동안의 다툼 끝에 올해 10월30일 본안 소송 1심 판결이 선고됐다.
걸그룹 뉴진스(NJZ)가 3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의 심문기일을 마친 뒤 법원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 이례적 제재…"멤버당 10억원 배상"
가처분 심판은 통상 아티스트에게 유리하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아티스트에게 온정적이고 대형 기획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아티스트의 활동 공백으로 인한 손해를 고려해 활동금지 가처분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가처분은 글자 그대로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임시 처분이기 때문에, 시비는 본안 소송에서 다투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곤 한다. 활동 시기가 중요한 아이돌에게 활동 중단은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따라서 어느 정도 다툼의 여지만 있었어도 법원은 가처분 심판에서 뉴진스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애초부터 달랐던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뉴진스의 활동을 엄격히 제한했다. 법원 결정을 어기면 멤버별로 1회당 10억원, 총 50억원을 배상하도록 한 조치는 이례적으로 강한 수준이다. 이는 법원이 본안 소송의 판단을 떠나 뉴진스의 잘못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뉴진스가 활동하면 하이브·어도어가 피해를 보고 활동을 못 하면 뉴진스가 치명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는데, 법원은 하이브·어도어 측의 계약상 권리가 우선 보호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티스트에게 유리한 가처분에서 이 정도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본안 소송도 뉴진스가 불리해 보였다.
이번 판결 전까지 뉴진스는 총 4건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지난 3월 활동금지 가처분 결정, 이의신청 기각, 항고 기각, 어도어의 뉴진스 활동금지 간접강제 수용 등이다. 재판부는 항고를 기각하며 "전속계약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판시했다. 계약 위반의 책임이 뉴진스 측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뉴진스 측이 새로운 논점이나 증거를 제시했다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뉴진스 측은 지속적으로 "추가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본안 심리 과정에서 새로운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애초에 소송 절차나 위약금 문제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선언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행보였다. 그렇게까지 무리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사유와 근거를 제시해야 했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동안 제기된 주장들은 진실성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법원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민희진은 국민을 속인 것인가
그 결과 1년여간 활동 공백은 길어졌고, 팀의 이미지만 나빠졌다. 최소한 가처분 판정 이후에라도 복귀해야 했다. 그때 법원의 입장이 모두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때 복귀했으면 최종 판결에서 패소한 뒤에야 입장을 바꾸는 것보다 상황을 덜 악화시켰을 것이다.
연예계에선 여론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리한 논점이나 유효한 증거가 있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뉴진스 측은 별다른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채 '앞으로 제출하겠다'는 말만 하며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에도 일부 언론, 전문가, 팬덤 등은 뉴진스 측 주장을 지지하면서 뉴진스를 오도했다. 뉴진스는 주장을 제기하고 하이브는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여론은 하이브를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뉴진스·민희진 측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합리성과 윤리적 판단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아예 없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정당한 절차 없이 뉴진스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선언했을 때 그것을 '절묘한 묘수'라면서 옹호하기도 했다. 하이브와 소속 아티스트들은 집단 공격이 이어져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일부 누리꾼은 하이브를 근거 없이 '사이버 종교 집단'으로 몰아가는 루머까지 퍼뜨렸다.
계약 당사자의 일방적 선언으로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면, K팝 산업의 기본 질서는 유지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업계 전반의 관계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불러왔다. 과거에는 주로 기획사의 문제점이 쟁점이 되었지만, 스타 권력이 커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결합해 소속사의 경영권이나 계약 질서를 뒤흔들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된다. 이번 사건은 이런 변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경종을 울렸다.
재판 과정에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도 핵심 인물로 언급됐다. 가처분 항고심 당시 재판부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자신이 어도어를 독립 지배할 방법을 모색했다"며 "어도어와 멤버 통합 구조의 기초를 파괴하는 입장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어도어와 뉴진스의 통합을 파괴한 것은 어도어가 아닌 민희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원은 민 전 대표가 신청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심판 당시에도 "민희진이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듦으로써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희진이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했었다.
이번 뉴진스 본안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 의하면 민 전 대표는 뉴진스가 포함된 어도어를 하이브로부터 독립하려는 의도로 사전에 여론전, 소송 등을 준비했다"며 "그 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피고들 부모를 내세워 하이브가 부당하게 했다는 여론을 만들고, 인수할 투자자들을 만났다"고 판시했다.
이는 민 전 대표와 뉴진스 측이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는 반대로, 재판부가 민 전 대표의 주도적 개입을 인정한 판결로 해석된다. 그동안 뉴진스 측의 배후에 민 전 대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의혹으로만 제기됐었는데, 이번 재판에서 일부 확인된 셈이다.
민 전 대표는 그동안 "하이브가 카톡 메시지 증거를 조작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조작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신뢰성을 의심받아 왔다. 결국 뉴진스 본안 소송 판결문에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 의하면'이라고 적시됐다. 법원은 메시지를 정당한 증거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민 전 대표가 조작이라며 국민을 속인 것인가, 아니면 재판부가 조작된 메시지에 놀아난 것인가? 어느 쪽이라도 심각한 문제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주장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