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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대함

phantom |2026.01.07 06:00
조회 34 |추천 0

 

진정한 위대함

“이집트 왕이 산파들에게 말하니, 그 중 하나는 시프라(Shifrah)라 하고 다른 하나는 푸아(Puah)라 하더라.” (출에굽기 1:15)

파라오가 갓 태어난 유대인 남자아이들을 모두 물에 빠뜨려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을 때, 두 명의 용감한 산파가 세상을 구했습니다. 한 명은 시프라(Shifrah)였고 다른 한 명은 푸아(Puah)였습니다. 라시(Rashi)는 이 두 여인이 다름 아닌 모쉐의 어머니 요게벳(Yocheved)과 그의 누이 미리암(Miriam)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시프라와 푸아라고 불렸을까요? 요게벳은 아기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팔다리를 매만졌기(מְשַׁפֶּרֶת אֶת הַוְולַד, 메쉐페레트 에트 하발라드) 때문에 시프라라고 불렸습니다. 미리암은 푸아라 불렸으니, 이는 그녀가 포아 우메다베레트 라블라드(פּוֹעָה וּמְדַבֶּרֶת לַוָּלָד), 즉 갓난아이들에게 달래며 속삭였기 때문이었다.

토라에서 요게벳과 미리암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 것이 그들이 갓난아기들을 돌본 공로를 기리는 것이라는 점은 다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이 여인들은 아기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기들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 아이들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을 기리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구원을 뜻하는 하짤라(הצלה)와 테슈아(תְּשׁוּעָה)라고 이름 짓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야코브 이츠하크 루더만(Yaakov Yitzchak Ruderman) 랍비는 진정한 위대함은 사소한 일, 눈에 띄지 않는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말합니니다. 그런 행동들이야말로 인격의 깊이와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순간적인 영웅심을 발휘하여 위대한 행동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위대함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고 나면 다시 평범함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칭찬하며 "좋아, 내 할 일을 다 했어. 목숨을 걸고 세상을 구했으니 이제 집에 가서 내 삶을 살아야지."라고 말합니다. 마치 혜성처럼 솟아올랐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위대함은 작지만 비범한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이 두 용감한 여성, 시프라와 푸아는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는 순간에 유대인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면서도, 아이들의 작은 몸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옹알이와 속삭임으로 마음을 달래줄 만큼 섬세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대함이었습니다.

탈무드(아보다 자라 18a)에 따르면, 랍비 요시 벤 키스마(Yosi ben Kisma)는 로마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토라를 가르쳤는데, 이 칙령을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랍비 하니나 벤 테라디온(Chanina ben Teradion)이 그를 방문했습니다.

"하늘이 로마인들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라고 하니나 벤 테라디온 랍비가 물었습니다다. "어떻게 감히 그들의 법령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저는 하늘의 자비에 의지합니다." 랍비 요시 벤 키스마가 대답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내세에서 몫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혹시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적이 있습니까?" 하니나 벤 테라디온 랍비가 물었다.

"네, 그런 적이 있습니다." 랍비 요시 벤 키스마가 대답했다. "한번은 제 돈과 기부금을 같은 주머니에 넣어둔 적이 있는데, 섞여서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부 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랍비 하니나 벤 테라디온이 말했다. "저의 몫도 당신의 몫만큼 크고, 제 운명도 당신의 운명만큼 위대하기를 바랍니다."

이 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랍비 요시 벤 키스마는 공개적으로 토라를 가르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만약 체포된다면 로마인들의 손에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영웅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세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랍비 하니나 벤 테라디온은 랍비 요시 벤 키스마가 내세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고 확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가 자신의 돈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놀랍습니다!

이 게마라(Gemara)를 통해 진정한 위대함이 어떻게 측정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영웅적인 행위가 진정한 위대함의 절대적인 증거는 아닙니다. 반면에 자선 기금에 섞인 자신의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결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 사람의 진정한 인품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행위야말로 진정한 위대함의 확실한 징표입니다.

친절과 진실

그녀가 [상자]를 열고 그 아이를 보니, 보라, 그가 울고 있었더라. 그녀가 그를 불쌍히 여겨 말하되, "이 아이는 히브리 아이다." (출애굽기 2:6)

파라오의 딸 바트야가 목욕하러 강가에 내려갔다가 갈대밭 사이에 상자 하나가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시종들을 보내 상자를 가져오게 하여 열어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습니다. 바트야는 "이 아이는 히브리 아이로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이것을 알았을까요? 무엇 때문에 아기 모쉐가 히브리인 아이라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외모 때문도 아니었고, 울음소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기가 발견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왜 아이가 상자 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을까요? 분명 부모는 파라오가 모든 유대인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고 내린 사형 선고로부터 아이를 구하려 했던 것일 것입니다.

바트야의 논리는 훌륭했고, 그녀의 추측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습니다. 토라에 따르면, 그녀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리고 나서 "이 아이는 히브리 소년이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랍비 니산 알퍼트(Nissan Alpert)는 그의 스승인 랍비 모쉐 파인스타인(Moshe Feinstein)의 추도사에서 이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랍비 모쉐는 당대 최고의 토라 학자로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지식은 방대했고, 통찰력은 예리했으며, 겸손함과 섬세함, 친절함은 전설적이었습니다. 젊은 학자가 그처럼 뛰어난 현자에게서 새 책에 대한 하스카마(הסכמה, 승인서)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랍비 모쉐는 하스카마를 요청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꺼이, 그리고 쉽게 써주었습니다. 또한 많은 프로젝트에 대한 추천서와 지지서를 같은 방식으로 써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랍비 모쉐의 추천서에 더 이상 감명을 받지 않을 정도로 추천서를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는 그랬을까요? 왜 추천서를 써줄 때 좀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요?

알퍼트(Alpert) 랍비는 헤세드(חֶסֶד, 자비)와 에메트(אֱמֶת, 진리)는 사실상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인 감정적 반응입니다. 반면 진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도출되는 것으로, 면밀한 검토와 조사, 논리의 산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친절의 적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한다면, 아마 대부분을 거절할 것입니다.

실제로 토라에서 헤세드(חֶסֶד, chessed)와 에메트(אֱמֶת, emes)가 함께 언급될 때(창세기 24:49 ; 출애굽기 34:6; 여호수아 2:14), 첫 번째 선택은 자비(헤세드)여야 합니다. 그 후에야 진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구걸하는 자가 있을 때, 그의 신분을 확인하려 기다리지 마십시오. 즉시 무언가를 주십시오. 기관이 재정 지원이 필요할 때,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해 감사를 요청하지 마십시오. 젊은 작가가 승인을 요청하면, 승인해 주십시오! 이것이 라브 모쉐의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바트야가 상자를 열고 그 소년을 보았을 때, 알퍼트 랍비가 결론지은 바에 따르면, 그녀의 첫 반응은 상황을 판단하거나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왜 강에 떠내려왔는지, 그를 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첫 반응은 자비였습니다. "그는 울고 있었고, 그녀는 그를 불쌍히 여겼다." 상황을 생각하기 전에, 그녀의 친절한 마음이 울고 있는 아이에게로 향했습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상황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이 아이는 히브리 소년이다"라는 올바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By Rabbi Yissocher F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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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ewishlearning/22386597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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