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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본질

phantom |2026.03.11 05:16
조회 12 |추천 0

 

우주의 본질

우리는 왜 성막의 세부적인 부분에 그토록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파라샤 바야켈은 성막의 건축과 비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듣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세합니다. 왜 이런 세부 사항을 포함했을까요? 왜 중요한가요?

고대 세계에서 성전은 우주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미르체아 엘리아데, 『영원한 귀환의 신화(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 1954). 성전의 설계와 가구 배치, 물건들의 위치는 건축자들이 우주의 본질에 대해 믿는 바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바야켈은 이러한 상징들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지만, 그 의미의 전부를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상징과 은유는 바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더욱이 상징과 의식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획득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성막의 상징적 물건인 메노라(등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메노라의 기능은 빛을 비추는 것이며, 빛은 우리 자신의 의식 행위에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안식일, 하브달라, 명절(Yom toov), 기일(yahrzeit)을 위해 불을 밝glqsl다.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는 많은 창조 신화의 시작을 이루는 빛의 창조가 의식의 창조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언어와 신화』, 1946).

아마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불을 밝힐 때, 우리는 신을 알고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의식의 여명을 재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메노라는 우주의 빛을 주는 측면을 나타내는 등불인가, 아니면 지식을 주는 측면을 나타내는 등불인가요?

단순한 등불이 아닙니다

그러나 메노라는 평범한 등불이 아닙니다. 특이한 디자인의 거대한 등불로, 너무 높아서 제사장이 경사로를 올라가야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5:31-40과 출애굽기 37:17-24에서 메노라는 정교하게 묘사됩니다:

금으로 된 받침대, 높은 기둥, 양쪽에서 뻗어 나온 여섯 개의 금 가지, 각 가지에는 꽃받침과 꽃잎이 세밀하게 표현된 아몬드 꽃 모양의 꽃받침이 달려 있으며, 기둥 자체에도 더 많은 꽃받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지들 위에는 일곱 개의 금 등잔이 있습니다.

분명히 메노라는 어떤 은유를 구현합니다. 그러나 은유에는 테니스(tennis)나 스크래블(Scrabble)처럼 규칙이 있습니다. 한 가지 규칙은 주제(논의 대상)와 매개체(비교 대상이 되는 구체적 대상)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키가 크고, 카네(קנה, 줄기)를 가지며, 카님(קָנִים, 가지)이 뻗어 있고, 프라힘(פְּרָחִים, 꽃)과 꽃봉오리 같은 부푼 부분(כַּפְתּוֹרִים, 카프토림)이 섞여 있을까요? 메노라는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몬드 나무는 꽃이 일찍 피는 것뿐만 아니라, 꽃받침이 떨어지기 전에 빠르게 잎을 내고 새 가지를 뻗으며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이름 '샤케드(שָׁקֵד, shaked)'는 '일찍 깨우는 자'를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의 경계심이나 신속한 응답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예레미야 1:2 참조).

또한 아하론의 제사장 직분을 정당화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17장에 기록된 고라(Korah)의 반역이 끝날 무렵, 모쉐는 모든 이스라엘 지파 장로들의 지팡이를 회막에 두었는데, "거기서 아하론의 지팡이가...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아몬드 열매를 맺었습니다"(17:23).

나무와 유대인

나무는 빛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에게 의식과 연관됩니다. 우리의 도덕적 의식은 나무 열매를 먹은 데서 비롯됩니다(창세기 3장). 토라는 "그것을 붙잡는 모든 이에게 생명나무"입니다(잠언 3:18).

나무는 살아 있는 대지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의 뿌리내림, 인내, 그리고 재생 능력은 의인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하리라"(시편 92:13).

의인 또한 생명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메노라는 또 다른 종류의 나무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지들은 기름으로 가득 찬 그릇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사장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불이 켜지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불타는 나무를 누가 들어본 적이 있겠습니까?

“그가 바라보니 떨기나무가 불타고 있었으나 불에 타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속에서 그를 부르시되 모쉐야 모쉐야 하시니 그가 이르되 여기 있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가까이 오지 말라 네 신을 네 발에서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3:2-5).

존 레벤슨(Jon Levenson)은 저서 『시나이 산과 시온 산(Sinai and Zion)』(1985)에서 시나이 산의 종교가 어떻게 시온 산의 종교로 변모했는지 설명합니다. 타나크에서 이스라엘 땅 정착을 기록할 때, 이스라엘의 계시와 언약의 장소인 시나이 산(가시덤불의 광야 산)은 예루샬라임 성전의 거룩한 산 시온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불타는 가시나무 자체는 제사장들이 불을 밝히는 황금 나무로 재현되었습니다. 레벤슨은 시나이 신성의 상징이 어떤 종류의 나무였을지를 추측합니다. 그는 신명기 33장 16절의 축복에서 하나님을 '가시나무 속의 임재(שֹׁכְנִי סְנֶה, shochni s’neh)'로 규정한다고 말합니다.

페미니스트 신학자 넬 모튼(Nelle Morton)은 은유를 유성처럼 궤적을 그리는 폭발적 과정이라 묘사합니다(『여정은 집으로』, 1985). 타오르지만 소멸하지 않는 나무—이것은 거대한 여정을 떠난 이미지입니다. 은유는 시나이에서 시온으로, 유배를 거쳐 그 너머까지 여행해왔으며, 우리는 그 울림을 다 헤아려보지도 못했습니다.

불타는 나무는 우리가 대립으로 오인하는 것들—땅과 하늘, 물질과 에너지—을 포용합니다. 우리가 극단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던 것들이 불타는 결합 속에서 드러납니다. 타오르면서도 타지 않는 나무는 물질적이고 일시적이며 썩어 없어질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말하는 "경외스럽고 매혹적인 신비", 즉 하나님의 현존을 지탱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신성한 것의 개념』, 1923). 우리가 단지 볼 수만 있다면, 온 땅이 마치 타오르는 나무처럼 우리에게 보일 것이며, 우리는 모든 인간의 모습 속에서 타오르는 나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놀란 목동이 두려우면서도,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을 우리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불타고 있으면서도 타지 않는 나무. 우리는 그 순간을 상기시키기 위해 기억의 나무를 만들 뿐입니다. 노래와 의식 속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불을 지피는 인공물입니다. 기억의 나무는 오직 경이의 나무일 뿐, 공포의 나무가 아닙니다. 고집스럽게도 우리의 기억의 나무에 불을 붙입니다—진짜 불을, 깨달음과 위험의 모든 가능성을 품은 불을.

우리가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그 불타는 존재, 신비의 계시자이자 떨기나무에 거하시는 분과의 만남을 재현하기 위해: .

By Rachel Adler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The Torah: A Women’s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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