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중 여고 나오고 대학도 여초과라서 학창시절 동안 주변에 남자가 거의 없었어요. 좀 과장하면 남자랑 제대로 말해본 경험이 거의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연애라는 걸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거의 머릿속으로만 상상해본게 다였어요.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여자가 좋은 여자인지 같은 걸요.
여기서 가정환경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아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편인데 돈을 끝장나게 잘 벌고 가족을 정말 많이 아끼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치 성향과는 별개로 주변인들을 성별로 차별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여자인 제 진로와 장래희망도 아낌없이 투자하며 응원해 주셨고 오죽하면 남동생보다 저를 더 예뻐하셨어요.
엄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에요. 집안일도 잘하고 직장 일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굉장히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엄마처럼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랐어요.
또 아빠 영향인지 저는 요즘 말하는 페미니즘이나 데이트 문화 같은 것에도 거부감이 있었어요.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데이트할 때는 더치페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자한테 얻어먹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고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아서 연애를 시작하면 항상 돈도 반반 내고 선물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서 했어요.
저는 그게 공정하고 좋은 연애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연애를 해보니까 생각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남자들이 요즘 이런 여자 없다, 되게 괜찮다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더치페이도 잘 받아주고 성격도 관용적인 편이라 좋다고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분위기가 바뀌어요.
기념일을 점점 대충 챙긴다거나 연락이 점점 성의 없어지거나 데이트도 점점 루즈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더치페이는 너무 자연스러운 게 되고요.
물론 더치페이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에요. 또 저는 명품이나 고가의 선물 같은 건 원래 관심도 없고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돈이 아니라 태도 같아요.
남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편해지는 걸 넘어서 약간 헤이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설렘 같은 것도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고요.
가끔은 얘는 어차피 뭐 안 따지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아요.
그래서 요즘 여자가 너무 허용적이면 손해인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저는 여전히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서 엄마처럼 사는 게 꿈이에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어요. 엄마가 첫 연애에서 아빠를 만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까지 상대를 좋아하고 배려해서 합리적인 여자로 연애하려고 했는데 혹시 그게 연애에서는 오히려 손해인 걸까요?
남자들이 싫어한다고 말하는 까탈스럽고 요구 많은 여자처럼 행동해야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가요?
저는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또 제가 학창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은 제 성향을 고마워 하고 저를 굉장히 잘 대해 줬어서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워요. 저는 상대에서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상대는 오히려 제게 이성적인 호감을 잃는 것 같아요.
연애에서는 여자가 어느 정도는 까다롭고 요구도 하고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게 더 좋은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연애를 너무 계산적으로만 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