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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란과 유월절의 자유

phantom |2026.03.25 03:25
조회 17 |추천 0

 

이란과 유월절의 자유

이란은 단순한 군사적 위협이 아닙니다. 이곳은 9천만 명의 국민을 억압하는 체제로, 유월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년 워싱턴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념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게 1944년 6월 6일은 독일에게 “기분 좋은 날이 아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메르츠는 간단히 이렇게 답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나치 독재로부터 우리 나라가 해방된 날이기도 합니다.” 이는 매우 인상적인 순간입니다. 독일 지도자가 자국을 황폐화시킨 전쟁에 대해 감사를 표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전쟁이 독일의 미래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독일을 집어삼킨 정권으로부터 독일 자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여겨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억압의 체제를 해체하고, 공격을 받은 이들과 그 체제 속에 갇혀 있던 이들 모두를 위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듯이, 그 목표는 다름 아닌 “자유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란의 자유

오늘날 이란 전쟁을 둘러싼 논의의 상당 부분은 협소하고 전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위협이 무력화될 것인가? 목표가 달성될 것인가? 결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 질문들은 중요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현실의 전모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이란은 이스라엘, 미국 및 기타 여러 국가에 대한 심각한 군사적 위협일 뿐만 아니라,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 아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란 한 나라만 해도 9천만 명의 국민이 반대를 처벌하고 사상을 통제하며 국경을 훨씬 넘어 불안정을 조장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체제는 레바논, 예멘, 이라크 등으로까지 확장되어, 사회 전체를 폭력과 실패의 악순환에 가두고 있습니다.

사실상 2023년 10월 7일, 이란의 자금 지원과 훈련, 지원을 수년간 받아온 이란의 대리 세력이 잔혹한 학살을 자행하면서 시작된 이번 전쟁은 단순히 위협에 맞서는 대립이 아닙니다. 이는 구원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억압의 구조에 맞서는 대립입니다. 이러한 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약화될 때,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자유를 위한 조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 속 억압에 맞선 인류의 희망이 담긴 본보기인 유월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노예로 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바로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 영가(spiritual)를 통해 자신들의 투쟁을 노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쉐여, 이집트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파라오에게 전하시오: 내 백성을 보내주시오.”

출애굽의 언어는 곧 자유 그 자체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노래가 되기 전에는, 그것은 대립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해체

모쉐는 파라오 앞에 서서 당대 가장 강력한 정권이자 역사상 가장 절대적인 억압 체제 중 하나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 정권은 수 세대에 걸쳐 유대 민족을 노예로 삼았으며, 미드라쉬가 가르치듯 그 어떤 노예도 탈출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통제를 행사했습니다.

모쉐가 싸움에 뛰어들었을 때, 상황은 처음에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고통은 커졌고 압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한 민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전체 체제가 해체되고 그 정당성이 부정되어야만 했습니다.

유월절은 해방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자들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바늘구멍만큼의 틈만 열어주면, 내가 너를 위해 큰 홀의 문처럼 활짝 열어주리라.” 구원은 위에서 내려올지 모르나, 그것은 인간의 주도권에서 시작된다. 결과가 분명해지기 전에 누군가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안보를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우리 시야 너머 수백만 명의 삶을 좌우하는 세력들과의 대결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불확실하고 대가는 실재하지만, 그 파장은 당장의 전장을 훨씬 넘어섭니다.

하가다(Haggadah)는 우리에게 “모든 세대에 걸쳐 그들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일어나 우리를 대적한다”고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억압과 자유, 빛과 어둠 사이의 투쟁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싸움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입니다.

억압적인 체제가 약화되는 것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미래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확실한 보장 없이 감행되는 용기 있는 행동은, 나중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방식으로 현실을 재편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모쉐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그 과정에 좌절이 따를 것이며,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먼저 더 악화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첫걸음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이 전하는 영원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억압적인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는 악을 명명할 수 있는 분별력에서 시작되며, 악에 맞설 용기를 요구하고, 결과가 확실해지기 훨씬 전에 취하는 행동을 통해 펼쳐집니다.

그렇게 될 때, 역사는 한 민족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리고 억압의 세력에 맞선 미국과 이스라엘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한 용기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재편하고 파괴적인 정권을 약화시키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후손들을 위한 더 큰 자유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By Rabbi Raphael 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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