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죠.
둘 사이에는 아직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은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소년은 같은 시간에
여우를 찾아왔어요.
그러자 여우는 어느새 소년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죠.
소년이 오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여우의 마음은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어요.
아직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괜히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살피게 되었죠.
그리고 마침내 소년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둘은 천천히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이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어요.
수많은 소년들 중 하나였던 어린 왕자는
이제 여우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 있었고.
수많은 여우들 중 하나였던 여우 역시
어린 왕자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어린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게 돼요.
그 말을 들은 여우는 결국 울고 말았어요.
그러자 어린 왕자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죠.
"네가 울 거라면, 차라리 나를 길들이지 않는 편이 나았던 거 아니야?"
그러자 여우는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대답했어요.
"그래도 괜찮아."
여우는 들판의 밀밭을 바라보았어요.
원래 여우에게 밀밭은 아무 의미도 없는
풍경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어요.
황금빛 밀밭을 볼 때마다,
자신을 찾아오던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카락이 떠오르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여우는 소년에게 아주 중요한
비밀 하나를 알려줘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