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있는 유대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에게 가장 먼저 주신 것은 땅도, 율법도,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달력이었습니다. 이것이 왜 모든 것을 바꾸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출애굽이 일어나기도 전, 바다가 갈라지기도 전, 토라가 주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에게 가장 첫 번째 민족적 계명을 내리십니다. 바로 ‘시간을 주인의식으로 다스리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 민족에게 민족으로서 주어진 첫 번째 계명입니다. 출애굽 전, 바다가 갈라지기 전, 토라가 주어지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달력을 제정하고 새 달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이번 안식일에 파라샤 하코데쉬(פרשת החודש, 한달의 분량)'를 읽으며 이 계명을 기념합니다. 이 파라샤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 달은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 될 것이며, 너희에게 일 년의 첫 달이 될 것이다." (출애굽기 12:2)
왜 첫 번째 민족적 계명이 시간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 답은 자유의 본질에 대해 심오한 진리를 드러냅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살았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시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의 하루하루는 주인이 정합니다. 시간은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가 시작되는 것은 사람이 시간의 주권을 되찾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키두시 하코데쉬(קידוש החודש, 새 달을 거룩하게 하는 의식)를 명하심으로써 유대 민족에게 혁명적인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거룩한 시간 그 자체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달력은 더 이상 왕이나 제국에 의해 강요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대 법정이 새 달이 시작되는 시기를 결정하고, 따라서 명절이 언제 열리는지도 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에게 유대력(유대인의 시간 체계)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유대 민족의 선포에 달려 있습니다. 탈무드가 가르치듯, 랍비 법정이 그 달을 거룩하게 선포하면 하늘도 그에 따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단순히 육체적인 탈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단순히 억압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사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달의 분깃”은 구원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시간 그 자체가 거룩해질 수 있음을 사람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통해 다가올 유월절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 구절의 표현에도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이 달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너희를 위한”이라는 부분에 대한 강조는 의도적인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시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경험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거룩함은 하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 안에서 행하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정치적 구조, 동맹, 그리고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건들이 단순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며, 우리는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승객에 불과하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파라샤 하코데쉬는 이러한 관점에 반박합니다. 유대 민족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시간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습니다. 이집트에서의 구원을 향한 첫걸음이 시간을 되찾는 것이었듯이, 모든 세대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되찾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달력을 정의하는 달의 재생에는 아름다운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달은 사라지고 어두워졌다가, 점차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을 밝히게 됩니다. 유대인의 역사도 비슷한 패턴을 따라왔습니다. 어두운 시기가 찾아오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갱신이 뒤따릅니다.
달이 매달 다시 태어나듯이, 유대 민족은 갱신과 회복탄력성에 대한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진정한 자유란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평범한 날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꿀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By Rabbi David Berl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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