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만 되면 우리집 개가 거실 벽을 가만히 봄
올해 열세살이야
사람으로 치면 할머니지
새끼때 데려와서 같이 늙었어
예전엔 산책 가자 소리만 하면 현관에서 방방 뛰었거든
발톱 소리가 다다닥 났어
근데 작년쯤부터 좀 달라졌어
요즘 들어 이상한게 하나 생겨서 물어보려고
저녁 먹고 설거지 끝낼때쯤이야
거실 한쪽 벽을 가만히 보고 앉아있어
아무것도 없는 그냥 흰 벽이야
달력도 안 걸려있고 콘센트 하나 없어
한참을 그러고 있어
내가 이름을 불러도 잘 안 돌아봄
처음엔 그냥 졸린가보다 했어
근데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보고 있더라
그게 며칠 쌓이니까 좀 무섭드라
남편한테 말했더니
개들 늙으면 다 그런다고 별일 아니라는 식이야
근데 옆동 아주머니는 눈이 침침해져서 그렇다 하고
인터넷 찾아보니까 어디 아픈 신호일수도 있다는 글도 있어
말이 다 달라서 더 헷갈림
밥은 잘 먹어
산책도 짧게는 나가
근데 예전처럼 뛰지는 않아
천천히 걷다가 또 길에서 한곳을 멍하니 봐
안고 들어오는 날이 점점 많아짐
안으면 몸이 예전보다 가벼워진것도 느껴지고
병원 데려가봐야 하나 싶다가도
괜히 차 태우고 가서 스트레스만 주는거 아닌가 싶어
늙은 개한테 병원 가는 길 자체가 고생이잖아
아침에 일어나면 그 자리에 멀쩡히 와서 자고 있어
그거 보면 또 안심이 돼
근데 저녁때 똑같이 벽 보고 앉아있으면
마음이 다시 쑥 가라앉음
노견 키워본 분들
이 정도면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거 맞을까
아니면 한번은 데리고 나가봐야 할까
오래 같이 산 식구라 작은 행동 하나에도 자꾸 마음이 쓰여서 적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