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먹구름을 넘어 정상을 보다(간증 수필) #활공교회
https://youtu.be/Yjm_at-N2p0?si=fO0BzaZIGZCX5pxE
오늘 새벽에 본 거대한 먹구름입니다. 저 검은 동쪽을 향해 우리 버스는 가고 있었습니다. 저 검은 거대한 구름을 향해 가는 우리 버스는 무순 안 좋은 일이 혹시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밀려 왔지만 갑자기 시와 그림의 이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너 제발 용기를 내’ 시와 그림의 정상을 넘어라는 찬양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먹구름을 지나기 전의 상태가 항상 우리의 인생의 모습인 것을 알았습니다. 시련을 넘고 넘어 끝이 없지만 정상의 때는 언젠간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오늘 아침 우리 부모님 고향이 전남 담양인데 같은 고향 분이 출마하셔 당선 사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찍었기에 기뻤고 우리 아벗님의 시련을 넘은 일을 간증하려 했지만 눈물이 나려했고 그 창동역 어수선한 곳에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려거든 꼭 들어 주셨으면 하고 모든 분들도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정치적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우리 아벗님은 유튜브 셔츠에도 떠돌고 있지만 가장 한국 역사에서 힘든 시기인 1928년 생으로 일제 침략기와 6.25를 겪은 세대이십니다. 일제의 수탈을 겪으셨고 형제들이 배고파 말라 가던 시절 일제는 1940년대 가장 악랄하던 때 아벗님을 강제 징용하려 일본 순사를 보내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머님(저에겐 친 할머님)이 다락에 숨기셔서 사셨고 두 번째는 순사가 올 때는 담양 산(마을을 덮는 꿩의 모양이라 함)에 숨으셔 살으셨고 세 번째는 더 이상 강제징용을 피할 수 없을거 같아 만주로 이미 이민 가신 친척집을 찾아가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남 담양에서 만주까지 일제 침략기 시절 일본 순사들을 피해 한번도 가본적 없는 북한을 지나 만주까지 홀로 단신으로 친척집을 찾아 간다는 일이 얼마나 당시 무서운 순간일까요 지금도 가슴이 매어집니다.
오늘 아침에 본 우리가 본 저 거대한 먹구름을 보며 두려움으로 멈칫하는 순간이셨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벗님이 저에게 가고 오는 일을 말씀해 주셨는데 가는 일을 안해 주신거 같아 기억이 나질 않고 2년간 만주 곡창 지대에서 일제의 압박을 피해 잘 지내셨을 듯 합니다. 대신 만주 벌판은 매우 추워 발가락이 동상이 걸릴 지경이셨다고 합니다. 이제 1945년 해방이 되어 아벗님은 다시 고향 전남 담양을 향해 내려 오셔야 했습니다. 물론 귀향하는 길이 기쁘기는 했지만 사악한 북한이 고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으니 얼마나 또 거대한 먹구름을 뚫고 남하해야 할까요 당시 도적이 있을까봐 아벗님은 2년의 삯으로 말꼬리(말총 갓에 쓰임)를 요구 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당시에는 비싸나 도적들은 그 용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벗님은 배를 타고 넘어 올때는 매우 심한 배멀미와 폭풍을 이겨야 하신걸로 기억을 하고 한탄강을 넘을 때 북한군에게 걸려 총살을 당할 뻔 하였는데 겨우 살아 나셔 넘으셨다고 합니다. 넘은 뒤에는 미군들이 있었는데 온몸에 ddt 살충제를 뿌리는 이가 엄청 나오셨습니다. 이후 기차를 타고 이번에는 편하게 내려오셨는데 고향 담양 집 근처에 우물이 있어 완전 거지같은 몰골이셨기에 몸을 씻고 집을 가는데 작은 삼촌(동산리 작은 아버지)이 제일 먼저 맞아 주셨다고 합니다. 다음 아벗님이 거대한 먹구름을 지나는 시기에 80세 쯤에 있으셨습니다. 저는 꾸준히 복음을 증거 하였으나 아벗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심근경색이 중하였던 차에 중환자실에 2달간 계시며 모든 고향 분들이 모셔 임종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끝난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지옥의 임종을 보고 싶지 않아 고대안암 화장실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밖에 사람들이 너무 울어 헛기침을 하며 말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벗님은 모든 피를 새 피로 갈아 다시 사셨으며 모두가 기적이라 하였습니다. 3년간 침상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기독 방송 틀어 드리고 주무시기 전 매일 말씀 읽어 드리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주무실 때도 말씀을 작게 틀어 드리고 전도사 요양보호사를 통해 제가 직장에 있는 동안에도 아벗님의 믿음을 위해 부탁을 드리었습니다. 임종 몇 주전 세례도 받으시고 결국 어머님은 아벗님 임종 전날 밤 무지개 빛의 무언가가 아벗님에게서 왔다 가시고 저에게는 말씀을 통해 아벗님 구원의 확신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먹구름의 인생의 어둠 속에 우리는 두려워 멈추지 마시고 정상을 넘어 활공하여 우리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영광의 날을 모두가 소망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정상을 넘어(시와 그림)
많이 힘든 것 알아 얼마나 참기 힘들어
언제쯤 웃었는지 기억은 있니
많이 지친 것 알아 더 이상 걷기 힘드니
길이 없다고 해도 너 포기 하지마
지금은 너의 미래가 끝이 없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이 힘든 것 알아 얼마나 참기 힘들어
언제쯤 웃었는지 기억은 있니
많이 지친 것 알아 더 이상 걷기 힘드니
길이 없다고 해도 너 포기 하지마
지금은 너의 미래가 끝이 없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빛이 저 넘어에 있단 걸
너 포기하지 말고 너의 남은 산을 올라가
이곳은 정상이 아냐 너도 알잖아
너의 정상은 더 위인걸
너 제발 용기를 내 너의 날개
여기서 꺾지 마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견딜 수 있다면 넌 정상에서 웃을 수 있어
많이 지친 것 알아 더 이상 걷기 힘드니
길이 없다고 해도 너 포기하지마
지금은 너의 미래가 끝이 없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빛이 저 넘어에 있단 걸
너 포기하지 말고 너의 남은 산을 올라가
이곳은 정상이 아냐 너도 알잖아
너의 정상은 더 위인걸 너 제발 용기를 내"
너의 날개 여기서 꺾지 마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견딜 수 있다면
넌 정상에서 웃을 수 있어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견딜 수 있다면
넌 정상에서 웃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