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만난 사람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살았다.
그 사람은 내게 추억이었고,
그리움이었고,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준 기억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정말 반가웠다.
그런데 나는 그를 다시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늘 나를 어린 시절의 나로 보았다.
나는 수십 년을 살아왔고,
많은 일들을 겪었고,
아픔도 견뎠고,
내 나름의 삶을 살아왔는데,
그는 끝까지 나를 가르치려 했다.
성숙하라.
당당하라.
생각해 보라.
나는 충고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한 번쯤은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길 바랐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상처를 이해하려 하고,
내 삶도 존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아픈 이야기를 하면 자기연민이 되었고,
그리움을 말하면 신파가 되었고,
서운함을 말하면 유치함이 되었다.
그의 슬픔은 존중받아야 했지만,
내 슬픔은 평가받았다.
그의 상처는 진심이었지만,
내 상처는 부족함이 되었다.
그래서 아팠다.
사랑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해서 아팠다.
나는 그를 위해주었다.
그가 힘들어할 때 걱정했고,
건강을 빌었고,
외롭지 않기를 바랐고,
그의 아픔까지 존중하려 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이해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장 아픈 것은 이별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사람이,
정작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아픈 것은,
나는 한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왔는데,
그 사람은 끝내 나를 기억 속의 어린아이로만 대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했던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라는 걸.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소중히 기억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