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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제 6 장

레모네이드 |2004.03.22 12:09
조회 1,767 |추천 0

 

 

6장

 

 

[현 가진! 당신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원에 왔던 거야?]
태민은 초인종을 생략하고 자신이 가진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 거실의 소파에서 양손 가득히 실을 들고 있는 가진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각자의 사생활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여자가 그 정도의 교양도 없어?]

 

[우리가 언제 정상적인 부부였던 적이 있었나요? 그리고 당신의 그 환상적인 사생활에 대해 나도 이제 관심 없어요.]
성이 잔뜩 나서 거실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태민을 쳐다보기는 커녕 양 손 가득히 들고 있는 실뭉치를 엉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동그란 공처럼 만들던 가진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지만 그녀의 손등에는 푸르스름한 핏줄이 뛰어 나올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궁금해? 그럼 내일 당장에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 한 장 신청해 봐. 아! 그럴 필요도 없겠네.]
아내가 단 한번도 자신을 무시한 적이 없었던 태민은 약이 올라 거실 서랍장을 거칠게 잡아 빼내어 바닥에 엎어 버리고는 비닐커버에 얌전히 싸여있는 의료보험증을 찾아내 아내의 코 앞에 들이밀었다.
[어디 한번 보시지. 당신과 내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법적인 아내라.......]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남편을 바라 본 가진은 희미하지만 비웃는 듯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는 다시 반문했다.
[그런 법적인 아내인 나 말고 다른 여자와 아주 사적인 일을 벌인 경우를 '간통'이라고 하더군요.]
'나쁜 자식, 내가 당신에게 속아 온 5년이 아까워. 네가 하는 행동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내 머리를, 내 가슴을 돌로 내리치고 싶어!'

 

이가 으드득 하며 갈리는 소리기 자신의 귓가에 들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태민은 최대한 자신을 누르고는 앉아있는 가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한 쪽 무릎을 꿇고 상냥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달래려 했다.
[다시는 당신 마음 상하게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하지.]
'빌어먹을 여자같으니, 어디 두고 보자'

 

[아뇨. 이미 늦었어요.]
털실뭉치가 담겨있던 바구니 밑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태민의 눈앞에 내놓으며 가진은 말을 이었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어떤 남편이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아내말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서 당당할 수 있는 지 정말 궁금하네요.]
유정과의 무혈전쟁 뒤에 돌아 온 우편함에서 발견한  사진과 한장의 작은 메모지를 의문이 가득한 눈의 남편에게 내밀며 가진은 뒤틀리는 입술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자식'

 

[두 분을 가장 아름다운 부부로 선발하게 되어 정말 영광으로 생각하며 매년 두 분의 겨혼 기념일인 10월 6일에 저희 호텔의 스위트 룸을 이용하실 경우....... ]
'우라질....... 이게 어떻게'
태민은 작은 소리로 메모를 읽으며 얼굴에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지난가을 가진에게는 제주도에서 세미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정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들의 결혼기념이라고 하면서 룸서비스를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호텔 측에서 제공한 기념사진도!
'아씨, 이걸로 꼬투리 잡으려고 하는 군.  이 여자가 남들이 하는 짓은 다 하려고 하는 구만. 지랄하고 있네'
[그래서? 뭐!!!]
자신의 치부가 모두 드러나 버린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요히 앉아서 여전히 털실만 만지작거리는 가진에게 신경질이 나 그녀의 털실 바구니를 발로 차 거실 구석에 가서 처박히도록 만들고는 비열하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가진을 소파에서 일으켜 세웠다.
[남편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싸가지 없이 딴짓거리 하면서 사람 무시하는 게 원래 네 모습 아냐? 나야말로 속은 거 아니냐구? 그렇지?]

[

그러게 완전 범죄를 하시지 그랬어요? 왜 그러죠? '들키지 않으면 간통도 없다' 라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무서운 기세로 기를 누르려 해도 가진은 오히려 점점 침착해 지는 자신이 정말 대견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미친 것처럼 웃을 수도 없었다. 왜냐면 그랬다가는 이 남자가 눈이 뒤집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무슨 짓거리 하냐고 물었죠?]
눈짓으로 바닥에 딩구는 털실뭉치도 옷조각을 가리키며 가진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태민의 가슴을 힘껏 밀쳐버렸다.
[당신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지만 단 한번도 고맙다는 말도 없었고 입어 준 적도 없었던 내 직접 뜬 스웨터들을 다 풀고 있었어요.]

 

가진에게 밀려 뒤로 주춤하고 밀려났던 태민은 바닥에 딩구는 잡동사니들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래?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

 

[알면서 묻지 말아요.]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으시다?]
'모든 것이 그렇게 쉽게 해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너는 역시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계집이야.'
[내가 이 이상 너에게 빌거라고 생각하지마. 오냐오냐했더니 어디서 기어오르는 거야? 남자가 한 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지금까지 살을 맞대고 살아왔으면서 그 정도도 이해 못해?]
태민은 냉랭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가진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며 털실뭉치가 뒹굴고 있는 거실구석으로 재빠르게 걸어가 그것들을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잘 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아직 실이 덜 풀려 있는 천조각에 불을 붙인 태민은 이를 악물며 가진을 향해 말을 했다.
[당신은 처음부터 엉킨 삶을 풀고 싶다고? 그렇다면 나는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깨끗하게 불살라 주지.]

 

메케한 연기를 뿜으며 타 들어가는 털실을 지켜만 보던 가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태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혼해요.]

 

[이혼? 누구 마음대로? 어디 한번 이혼신청이라도 해 봐. 당신하고 나하고 시궁창에서 한번 뒹굴러 보자구. 그리고 당신 부모님, 당신이 재력있는 정형외과의사와 결혼한다고 좋아하던 그분들도 어디 같이 피 터지게 싸워 보자구.]

 

[나만 가지고 하면 그만이지 왜 내 부모님까지 들먹거리는 거려요?]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거실을 채워 지독한 냄새를 피우자 태민은 거실 창을 활짝 열어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는 즐거운 목소리로 가진이 듣고 싶어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나만 죽을 수 없잖아? 당신 아버지도 그렇고 그런 남자거든. 아~ 어떻게 아냐고?]
창가에서 몸을 돌려 다시 가진에게 다가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얼굴을 숙여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뜸을 들이던 태민은 아주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결혼 전에......어느 추운 겨울밤,  당신 아버지 현박사님이 운영하는 산부인과에서 아무런 진료기록도 없는 젊은 여자의 불법낙태 시술하도록 나를 종용한 사람이 당신 아버지거든. 내가 정형외과 전공인데도 말이지...그런데 당신도 궁금할 거야, 그 여자가 누구인지.]

 

순간 얼어붙은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가진은 차가운 비웃음으로 넘실거리는 남편이라는 남자의 눈동자만 말없이 쳐다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거짓말........]

 

[거짓말?  내가 왜?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이야기를 지어 내겠어? 아직도 당신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뒷돈을 대시는 걸? 그것도 당신어머님이 아시는 것이 두려워 내 구좌를 애용하시는 걸.]
호흡하는 것조차 두려운지 가는 숨을 쉬는 가진을 즐겁게 지켜보다 이번엔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 근처에 닿을 듯이 접근해 말을 했다.
[사정이 이런데 당신이 나랑 이혼하겠다고 나서면 내가 구경만 하겠어? 난 그렇게 성인군자가 아니거든. 당신도 알잖아?]
할 말을 끝낸 태민은 가진에게서 뒤로 물러나 침실로 여유 있게 걸어 들어갔다.
'네가 친정에 대고 나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하니 어머니도 같이 이혼하자고 할 수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고 만다.'

 

육체에서 정신이 분리되어 허공을 맴도는 이상한 기분에 시달리던 가진에게 남편이라는 남자의 차가운 말이 날아들어 왔다.

[너는 처음부터 내 편리에 의해 결혼한 거야. 당신은 '병풍'이야.
죽은 영혼의 모습을 가려주는 병풍, 보기에 좋으라고 펼쳐놓은 병풍,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병풍, 평상시에는 필요 없는 병풍이라고.]
 
[당신은 악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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