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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체 때문에...

은영 |2004.03.22 16:20
조회 721 |추천 0

남의 나라 말을 배우기가 만만하다고는 생각 안했다.

다만 내 나이에서 최선을 다 하고 싶었을 뿐...

언어학원을 4개월 정도 다닌 실력치고는 내가 봐도 학원비는 뽑은 것 같다.

문법은 무조건 외워댔고,

요즘은 아이들의 언어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아동용 언어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고,

생활독일어를 아주 조금씩 사용하게 되는 수준임을 미리 밝힌다.

 

학교를 옮겨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학교를 옮기면 김나지움으로 가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 일 뿐,

아이의 진학은 전적으로 담임선생님에 의해서 결정 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과 편지로 상담을 하기로 했다.

 

이러이러 한 우리 아들을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로 마무리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루가 지나서 답장이 왔다.

대문자도  소문자도 아닌 필기체로 ...

난 필기체 공포가 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쥐나는 듯 하지만, 이 편지는 차근차근 뜯어보면 될 것 같은 필체였다. 

 

내가 본 첫 문장은

Heejun gibt nicht sehr viel Muebe (희준은 매우 많이 노력을 안한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긴장을 하니 그 다음 문장은 몇몇의 단어를 제외한 것이 한눈에 들어 왔다.

집에서와 학교생활이 이렇데 다르단 말인가?

 

다시 선생님에게 편지를 쓸까?

얘가 외국인이니까 본인도 모르게 차별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난 학부모회의 때 우리아들 잘 한다고 왜 그렇게 칭찬을 많이 한 것이지?

 

아니다.

선생님 보다도 아이에게 처한 문제를 먼저 파악을 하자 싶은 마음에

나보다 훨씬 큰 놈을 무릎을 꿇어 앉히고, 정신적인 주리를 틀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가

-엄마 그 선생님 편지 제가 한번 보면 안될까요?    라고 물어본다.

-그래, 봐.  네가 학교생활이 어떤지 스스로 보는 것도 너를 위해서 좋을 거야.

 

필기체로 쓰여져 있는 편지를 한눈에 보더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 편지에는 제가 노력을 아주 많이 한다고 씌여 있는데요-

-어머, 너 이제 글도 못 읽니?  여기 봐, 여기 부정사가 있잖아.

-엄마, 이건 부정사가 아니라 sich(스스로 무엇을 할 때 쓰이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스스로 노력을 매우 많이 한다는 뜻이예요.

-어디?

 

다시 한번 보았더니, 아들의 말이 맞았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s를 n처럼  쓴 것이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아들은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날 다독인다.

저도 그런 적 있었다면서...

 

독일식 필기체와 영어식 필기체는 약간, 아주 조금 다르다.

독어와 영어의 필기체가 같다고 한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글씨가

편할리가 있겠느냐만 서도...

 

아이들이 독일학교를 다닌지 3개월 째 될 무렵,

큰 아이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였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갑자기 아이가 말이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난 사춘기가 시작이 된 것 같고, 문화가 다른 곳에서 생활하니까 심적인 부담이 된 듯 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생각도 나와 비슷했다.

일단 성격좋기로 소문난 큰 아이를 믿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서 아이의 학교생활은 점점 나아졌다.

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몇달 전에 왜 갑자기 학교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랬어?"

"한국이나 과외선생님에게는 소문자로 단어들을  배웠는데, 여기 선생님들이 필기체로 글씨 쓰는데,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공부와 관련해서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래야 과외선생님과 상의를 하지"

"그래도 제 스스로 넘겼잖아요"

그러면서 커다란 몸으로 어리광을 부리는데,

왜 이렇게 징그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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