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치는 곳에 길이 있다.*
개울가 흐르는 물은 돌과 부딪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쾌활발 하게 내려가고
산허리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은 산정에 부디치며 운무를 일으켜 풍광을 연출하고
겨울날 흩날리는 눈은 바람에 실려 나무가지에 부디치며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부디치는 것으로 부터 세계가 열리니 작위없이 부디치는 것이야 말로
진리의 길이며 환희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모든 대상을 눈으로 보고 부디치고 귀로 듣고 부디치고 코로 냄새맞고 부디치며 몸으로 또한 부딪치고
생각으로 부딪쳐서 길을 열어갑니다.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부디치냐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대상을 시비의 마음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닌
긍정적 사고로 부디칠때
마음의 문은 열리는 것입니다.
일찌기 석가세존은 납월 팔일 새벽 동천의 금성을 보고 견명성도 하셨고
원효대사는 새벽에 밤에 마신 해골물을 보고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대상과 부디쳐서 찰나에 생각 이전에 몰록 깨닫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마음의 그릇을 항상 비워놔야 합니다.
평상시에 만가지 대상에 베플고 감사하며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수행을 해야합니다.
자신에게 하는 진정한 보시와 봉사는 자신의 호흡을 아주 세밀하게 해주며
마음을 고르게 순화시키서
호흡과 몸과 마음이 심일경성 되게 관해서 일치되게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자신을 위해 행하는 봉사입니다.
만가지 경계에 처해서 마음과 호흡이 서로 배반하면 절대 안락의 세계에 못갑니다.
좌선해서 일념을 관할시에 몸과 호흡과 마음이 결국 고요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일념을 빨리 성취 할려고 하지도 말며 게으르지도 말며 생각만큼 안된다고
조급증도 내지 말며 자신에게 스스로 화를 내서도 안됩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모두 스스로 에게 장애를 가져옵니다.
좌선의 득력은 아무 재미도 없고 유유하게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과 싸우지 않을때 비로서
오묘합의 길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10년~30년 이라도 매일 그렇게 밥먹듯이 시시때때 정진해야 합니다.
뭘 바라고 아집과 고집으로 수행한다고 하면 아직 좌선에 입문하지 못한것입니다.
성실한 새색시 처럼 일관되게 행하면 머지않아 좋아질 것입니다.
사문 종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