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이 등불을 수백개씩 밝혀 대낮처럼 환할뿐만 아니라 그 화려함도 장관이었다.
불빛은 연못위에 띄워둔 등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높은 사람들이 모인자리인지, 노비들은 종종걸음질로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 뭐하는게야?”
“아, 예- 예- 술단지를 나르고 있습니다요.”
“빨리빨리 움직여!”
“예-”
술단지에 몸을 숨기고 들어왔던 여자는 이번에는 단지를 머리에 이고 안채로 향하고 있었다.
“하하하...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것도 오랜만입니다.”
“저도 그동안 모시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무연왕자께서 이리 몸소 행차하셨으니, 이보다 더 경사스러울 수 없을 것입니다.”
“날 이리 반겨주시니 고맙소들.”
“제가 정성껏 준비한 술과 음식이오니 부디 초라하더라도 너무 꾸짖지 말아 주시옵소서~”
“하하하... 이건 궁에서도 못보던 진미들인데 초라하다니요...”
“그리 칭찬해 주시니 황공할 뿐이옵니다. 또 제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어서들 들라!”
정자에 마련해 놓은 술좌석에서 가벼운 입담들이 오가고 난 후, 옷을 차려입은 무희들이 올랐다.
무희들이 꽤나 절색인 듯 모인 대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연회를 주관한 대감이 무연왕자에게 살짝 귓말을 했다.
“모두 내노라 하는 절색들입니다. 오늘 시중들 애를 하나 명하십시오.”
“흐음...”
상석에 거만한 자세와 표정으로 앉아있는 자가 바로 부여의 왕자 부여연이다.
무연왕자라는 칭호로 불리우는 그는 여자처럼 곱고 뚜렷한 선을 가진 아름다운 외모였으나,
그 뒤에 차갑고도 치밀한 성격을 숨기고 있었다.
그가 첫째왕자를 밀어내고 왕 자리에 앉으리라는건 알만한 권력가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무연은 십이세가 되면서부터 병학을 익히며 병권을 손에 쥐기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십오세때 이미 병력을 쥘만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연은 야심을 숨기고 갑자기 궁을 떠나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사출도(*四出道:부여의 영토를 방위별로 네곳으로 나눈것)를 다스리는 사가(마가,우가,저가,구가)중에서도 가장 큰 대가(*大加:部族張)의 집을 찾은 것이다.
무연의 눈은 얼핏보면 만족스럽게 무희들을 보고 있는 듯 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곳을 향하고 있었다.
‘남농의 옷을 걸친 계집이라... 흥미롭군.’
그의 시선이 닿은곳은 정자 아래로 술단지를 나르고 있는 몰래 숨어들어왔던 그 여자였다.
무연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무렇지 않게 단지를 내려놓는 듯 보였으나, 분명 계집은 정자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계집은 곧 시선을 내리깔고 종종 걸음으로 정자를 떠났다.
“자, 어떠십니까? 고르셨습니까?”
“아아... 모두가 너무 미인이라 나는 어찌할 줄 모르겠소. 대감이 알아서 하시지요.”
“하하하! 무연왕자가 여색에 약하다는걸 내 오늘 처음 알았소! 기념으로 가장 아끼는 계집을 드리지요.”
“난 오랫동안 외지를 돌아다녀 그런지 편한자리에 있으니 취기가 빨리 오르는군요. 먼저 쉬겠습니다.”
“허허... 벌써 일어나시다니...”
“나같은 방랑객은 남는게 시간인데 무얼 걱정하시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으니 너무 아쉬워들 마시오.”
무연은 사가들의 예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무연이 자리를 뜨자 사가들은 급히 자리에 앉아 긴장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무연왕자가 여기까지 왠일로 행차한거랍니까?”
“혹시, 우리 계획을 눈치챈 것 아닙니까?”
“아무리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절대로 안심할 자가 아닙니다.”
“다들 좀 진정하시오! 나도 아직 아는바가 없으니 정황을 좀 지켜봐야겠소.”
“관노부에 보낸 밀사는 지금쯤 잘 도착했겠지요?”
“늦어도 다음달 안에는 답을 가지고 돌아올겁니다.”
“어허... 일이 성사되기전에 무연왕자가 알면 큰일이오.”
“그러니 모두들 입단속 단단히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