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독백-내가 10년전에 이것을 알았더라면

날아가는 ... |2009.02.25 14:54
조회 414 |추천 0

내 인생의 굴곡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많은 구비들을 돌아 오지는 않았겠지..

내 인생에는 재정 계획이란 것이 없었다.

 

인생에서 돈이라는것은 무엇일까?

젊은 나는 돈이라는 것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저급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돈보다 중요한게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가?

일도 열심히 했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지만 그리고 사랑도 치열하게 했지만 돈은 내 삶에서 비중이 낮았다.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하는데도 돈이 들고  교회생활도 돈없이는 안되며 사랑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돈이라는 것이 나의 삶을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자식의 삶또한 어김없이 돈이 있고 없고에 지배되고 말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그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내 재정인생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같다.

나는 24살 가을에  첫직장생활을 시작했다.집을 떠난 타지에서였다.

첫 급여는 65만원이었다.나중에 명절 보너스 5만원이 추가돼서 첫달 수입은 70만원정도였다.

그후 나는 다단계 판매사원에 혹해서 쓸데없는 물건을 장기 할부로 구입하는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거주할 집을 얻기 위해 대출을 냈지만 부모님은 그런 사정에 아랑곳없이 키워준 값을 내놓으라며 끊임없이 나게게서 월급을 빼앗아 갔다.

4년 동안의 직장생활 나에게는 남은게 없었다.

어느날 지인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부모님이 낳아준 친 부모님이 아닌거 아니냐고?

나는 웃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잘해준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설마 그건 아닐 거라고 그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단언컨데 어떤 부모라도 친부모라면 자식에게 낳아준 값을 운운하진 않는다

물론 친부모라도 장성해서 돈을 벌고 있는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도와달라고 할수도 있고 우리가 힘들다 라고 말할수도 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돈을 내놓으라고도  하지만

 

'키워준 값'

이라는 짧지만 쇼킹한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내가 좀더 신중했다면 그 지인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장말로 부모님이 나를 낳아준 친부모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던 4년 직장생활동안  천장에서 쥐가 마구 뛰어 노는  월세방을 전전하며

부모님께 내 월급을 전액 차압당하고 스물 여덟에 결혼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부모님은 나를 거짓말같이 스스르 놓아버렸다.

아마  그것도 친자식이 아니라서 였을 것이다.

신랑은 아주 가난한 총각이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재정계획이 있고 돈이 소중함을 알았다면 일방적으로 그렇게 신랑에게 끌려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신랑을 사랑했다. 신랑도 나를 사랑했다.

당장 살집이 필요했는데 신랑이 자기 명의의 대출로 전세집을 얻어 왔다.

그런가 했다. 어디서 무슨 대출을 어떤 조건으로 받았는지 따져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갚았고 다 갚기도 전에 아이엠엠프가 터져서 신랑이 실직했다.

그후 신랑은 간간히 직장을 잡았다가 놓쳤다가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첫번째 전세기간이 끝났는데 집주인이 자기들도 전세살아 어렵다며 전세금 반환을 거부했다.어음을 끊어줄테니 일단 집부터 비우라는 것이었다.

 한참을 싸우다가 겨우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너무 화가 나서 그만 반환

받은 전세금에 대출을 내서 작은 집을 샀다.

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첫아이가 생겼다 . 3살무렵 아이는 이 아이 하나로 땡해야  겠다는 판단이 섰다. 신랑에게 그만 단산하자고 했다.신랑이 사생결단 반대를 했다.

외동은 절대 안된다는 거였다.

결국 내가 졌다.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둘째가 생겼다. 두아이 양육비가 내 한달 월급에 육박했다.

두아이를 아줌마를 구해서 맡기고 직장에 나갔다. 양육비와 생활비가  빚이 되어 쌓였다.

그즈음 누가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것을 소개해 줘서 은행에 가서 신청했더니 한도를 2000만원까지 설정해 줬다. 2000만원까지 한도 소진하는데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와중에 신랑이 그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임대아파트가 대규모로 들어서는데 5년후에 싼값으로 분양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안되는데 싶으면서 또 이사를 했다

가보니 아파트가 원천적 부실에다 이웃들도 무섭고 어린이 성추행 사건도 일어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그기서 우리 둘째 아이가 아토피라는 그전까지 듣도 보도 병에  걸려서 지금까지 안낫고 고생이다.

결국 임대아파트를 떠나 전셋집을 구해 이사나갔다.

그리고 지금 사는 집을 프리미엄을 좀 주고 분양권 승계해서 이사 들어왔다. 이사 들어올때 또 대출을 냈다. 그걸 갚느라고 고생을 엄청 했다.하나의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집을 계속 옮겨 다니며 새로운 대출을 추가해온 것이다.

무리한 집장만과 우리 형편에는 무리한(?) 자녀 출산과 양육이 우리를 파산의 지경까지 몰고 갔다.

 

그후에 나에게 남은 것은 신랑과 집한채와 두 아이와 빚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투자라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투자라는 것에 많은 돈이 필요한줄 알았다.투자는 돈 많은 사람만 하는것인줄  알았다.

저축을 해서 돈을 모은후에  투자를 하는 것인줄 알았다.

저축과 투자는 순서가 따로 있는줄 알았다.

빚도 다 안갚고 저축을 하는게 아닌줄 알았다.

빚을 남긴체 저축을 하는 사람은 허파에 바람든 사람인줄 알았다.

더구나 빚을 가진체 '투자'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닌줄 알았다.

지금도 빚은 있다. 그러나 저축을 하고 있다.

생활비 지출과

 빚 상환

저축

투자 네개영역의   경제활동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다.

물론

생활비 지출면에서 규모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대출은 장기로 돌려서 매월  꾸준히 갚고 있고

저축자원은 자물쇠를 채워서 다른 용도로의 전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투자는 푼돈벌기에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몰랐던 투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돼서 그 자체가 기쁘다.

그러나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돈을 모아서 대출금을 상환 하고  대출금을 다 갚은후에 다시 돈을 모아서  투자를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신랑은 돈은 안 따라주는데 남들처럼 30평대 내집에 살고 싶어했고 아이도 남들처럼 둘을 갖고 싶어했다.

신랑을 따라 더 넓은 집으로 옮겨다니다가 정말 안되는 형편에 남에게 돈줘서 맡겨가며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우다가 고생은 나만 실컷 한셈이 됐다.그러나 지금 신랑은 다 늙어서(?) 공기업에 취직을 했다. 지금은 연봉 4000만원의 어엿한 공기업 직원이 됐다.인맥이 아니라 기술직 공채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지금 나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하지는 못하겠지만 ..

어떻던 둘의 사이는 지금 좋다. 힘들었지만 자기 하자는 대로 따라준 나를 끝까지 버리지는 (?)않고 나이 들어서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아무리 신랑을 사랑한다 해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 다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자고 하면 나는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다.

 

부모님은 결혼하고 나서는 어떻던 나를 경제적으로 놔줬다.

시부모님은 두분다 80넘어서까지 장수하시고 호상을 맞으셨으니 양가에 들어갈 돈에 대한 부담은  영원히 벗어 버린 셈이다.그것만 해도 어딘가?

 

집마련은 절대 분수대로 한다는 생각

자녀는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부모의 능력대로 낳는다는 생각

지출 대출금 상환 저축 투자는 늘 병행한다는 생각이 있고 그 생각들을 다부지게 실천에 옮길수만 있다면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설령 기천만원의 전세값을 빚을 내서 시작한 분이라도 우리보다 고생을 덜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