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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가족

큰가방 |2004.04.10 18:57
조회 233 |추천 0

4월의 중순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움츠렸던 날씨가 화창한 봄 날씨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도
로 옆 아래쪽에 줄지어 푸른색 꽃대를 내놓고 서있던 노란 유채 꽃이 활짝 피었는가 싶더니
멀리 보이는 산중턱에는 빨간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올라 봄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
다. 시골마을 어귀에 서있는 커다란 벚나무에는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더니 오늘은
하얀 꽃잎이 하나씩 둘씩 마치 눈이 내리듯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그리고 어디
선가 날아온 하얀 나비 한 마리가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벚꽃사이로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새 저만치 멀리 날아갑니다.

 

봄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신비로움과 설렘을 선물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기대감
을 안고서 오늘도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오토바이를 타고서 달려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삼산마을입니다. 삼산마을의 맨 위쪽에 살고 계시는 할머
니 댁의 마당으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서는 “할머니!” 하고 힘차게 불렀더니 할머니
께서는 현관 문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반쯤 열고 저를 보시더니 “응! 으째 그래~에?” 하시
며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혹시 김영복 씨라고 아시겠어요?” 하는 저의 물음에 “으~응 뭐시라고?” 하며 다시
물으십니다. “할머니 김영복 씨를 아시겠냐고요~오!” 하고 다시 한번 큰소리로 묻자 할머니
께서는 “내 나이가 90이 다 되야간께 귀가 꽉 먹어 갖고 뭔 말인지 잘 안 들려! 그랑께  큰
소리로 말해봐!” 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김영복 씨를 아시겠어요~오!” 하고 크게 고
함을 질렀더니 할머니께서는 오른손으로 할머니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시며 “으응 김영복
이! 내가 김영복인디 으째 그래 영복이 앞으로 뭐시 왔어~어?” 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예! 할머니! 할머니 국회의원 투표하시라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부재자 투표용지를 등기로
보내왔네요!” 하였더니 “그라문 뭣 주라고~오?” 하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도장 한번 찍어
주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거시기 늙은이가 도장을 으따가 둿
는지 알아야제 잉! 도장을 못 찾것는디 으짜까?” 하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그러시면 그냥
손도장 찍으세요!” 하였더니 “뭣이라고~오?” 하시며 다시 물으십니다. 그래서 저의 엄지손
가락을 내보이며 “할머니 그냥 이것 찍으시라고요~오!” 하였더니

 

“오~오! 지장 찍으라고?” 하시더니 또 잠시 머뭇거리십니다. 그러더니 “거시기 늙은이가 인
주밥을 으따가 둿는지를 알아야! 찾제 금메~에! 으째사 쓰까!” 하십니다. 그래서 저가 항시
휴대하고 다니는 인주를 보여드리며 “할머니 인주는 저에게 있어요~오!” 하고 다시 한번 고
함을 지르자 “오~오! 인주밥이 거그있다고!” 하시며 할머니의 엄지손가락을 내미십니다. 그
래서 할머니의 손도장을 우편물 수령증에 날인을 하고 “할머니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서 막 돌아서려는 순간 할머니께서 갑자기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시며 저의 옷소매를 붙
드십니다.

 

그리고는 “아저씨 이리 방으로 들어와 봐! 잉!” 하십니다. 그래서 “아니 할머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고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께서는 “거시기 아저씨
안직 점심 밥 안자셨제? 그랑께 얼렁 신 벗고 방으로 들우와 내가 얼렁 밥 채래주께!” 하십
니다. “할머니 저 점심 먹고 왔는데요! 그러니까요! 밥은 나중에 제가 점심을 안 먹었을 때
주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참말로 점심밥을 자셨어? 잉!” 하고 다시 물으십니다. 그
래서 저의 배에 힘을 불끈 주면서 “할머니 저의 배 좀 보세요! 배가 빵빵하지요? 저 정말로
점심 먹었어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저의 배를 보시더니 “잉! 참말로 점심밥을 자셨는 갑구만!” 하시더니 “옛날에
우리 영감도 편지 배달부를 했어! 그란디 그때는 배달부들이 전부 걸어서 편지배달을 했는
갑데! 그란디 우리 영감이 쩌그 곰재로 편지배달을 나가문 곰재 양반들이 인심이 좋아갔고
서로 밥 묵고 가라고 사방데서 붙잡었다고 그라데 그래서 우리 영감은 한번도 굶고는 편지
배달을 안 해봤다고 늘 나한테 그래쌓드만 그래서 그랑가 으찬가는 몰라도 우체부 양반들이
우리집 앞에를 지나가문 남들 같이 생각이 안 들고 꼭 우리 식구 같은 맘이 들데 그래서 아
저씨 한테 밥 좀 자시고 가란 것이여! 잉! 알았제?” 하십니다.

 

“예! 알았어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저는 할머니의 댁을 나와서 다음 마을로 향합니
다. 그리고 생각을 해봅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곰재라는 곳은 지금의 전남 보성군 웅치
면(熊峙面)의 옛 지명인데 아마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에 웅치면의 우편물 배달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웅치면의 우편물 배달을 하시면서 웅치면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을 잊지 못하시고 자주 할머니께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서 돌아 가신지 벌써 십 몇 년이 지났지만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기억
하시고 아직도 집배원들이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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