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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여러분 도와주세요(저희형님을 살려주세요)

동생의 간구 |2004.04.14 11:49
조회 83 |추천 0

 

부하에게 구타당한 중사박병운입니다.

먼저,저의 진술을 기독교인의 신앙심에 따라서 거짓없이 사실을

기록한 것임을 밝혀 진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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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1968년10월05일 여산 하사관 훈련소 6개월 과정을

끝내고 7일휴가 후 사단에전입을 했습니다.(10월05일사단장에게

신고하고,03일 후 자대 배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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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연대2대대 막사에서 자대배치3일 후 하사인 저에게

일등병1명과 상병2명이내무반에서 신고식을 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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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 구타와 욕설의 전주였습니다.

저의소개는 내무반 입소 때 간단히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경례를 하고 고참병들(이등병을 제외하고,일등병 이상)에게

깎듯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젖는 배운것이 있었고,하사관의 명예 문제도 잇어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자, 윽박질렀습니다.

안하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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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후 저녁에 당시 0 0 0 일등병 외6명이 내무반에 있는

저를 막사뒤로 끌고 갔습니다.

막사뒤에서 저를 무릎 꿇리고 꿇어앉은 저를 군화발로 명치를

세번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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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은 것을 다토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날 저는 할 수 없이내무반에서 내무반장 입회하에 사병들에게

사병들에게 저는 경례를하고, 신고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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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 단체로 (약 30명정도) 저녁식사 후 내무반을 수리중이어서

임시로쳐 놓은 천막 내무반 입구 10m 지점에서 저를 갑자기

내무반으로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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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놀라서 안 들어가려고 하니까 사병들이 욕설을 해 데면서

군화발로 무릎, 정강이, 얼굴, 배, 등 을 차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끌려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서 끌려가는 도중에

플라타나스 나무를 끌어안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5분정도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그 때는 0 0 0 병장이 주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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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사관의 멋과 명예와 군인의 본분과 중간 간부로서 받은 교육을

상실하고 참담함과 두려움이 저를 비참하게 했습니다. 인격도 상실된 저는

혼돈된 상태에서 그나마 남자의 근성이 저를 버티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의 얼굴이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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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에 지원한 하사관, 정부의 돈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입소해서

시작된 군 생활, 가난도 해서 하고 국가에 봉사도 하고, 개인의 명예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생활이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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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대회 때 사단에 함께 배치를 받아 헤어졌던 동기들을 만났는데

신고 식 때 저처럼 구타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동기는 얼굴에

야전삽에 찍힌 상처가 있었습니다. 동기들도 저와 형편이 비슷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의 쪽이 구타를 많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관례라는 말을 듣고 부대 내에서도 모른 척 넘어간다고

하면서 조금 지내면 괜찮아 지겠지 하는 하소연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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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11월 어느 날, 내무반에서 병들이 심한 욕과 함께 철모를 던지고

야전삽을 던졌습니다. 저는 피하면서 하지 말라고 말만 했습니다.

그 누구도 말려주는 이도 없었고, 참으로 외롭고, 서럽고, 날마다

계속되는 사병들의 단체 공격이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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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제 되지 않는 이름뿐인 부하들을

위에서는 시키라고 주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밑에서는 반항하고, 공격하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웃음을 잃고 대치상태의 1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전체 50명 내무반 인원중에 2/3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일반하사 내무반장이 팀 스피리트 훈련중에 병들을 통제한다고

M16 소총으로 저의 왼쪽 팔꿈치를 내리 찍었습니다.

이 때는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팔이 아파서 붕대를 감고 잘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맞은 팔이 지금도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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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0 0 0 내무반장은 병들과 합세를 해서 저를 공격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서 위축이 됐고,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7년 08월 경 특공 훈련 중 1층 높이에서

잘못 떨어져 등(척추)과 목을 다쳐 더욱 힘들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도복 띠로 팔과 어깨를 압박하여

매 걸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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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 막사와 대대장 막사가 저의 내무반 옆에 있어서 그들도

내가 공격당하고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 선임하사에게 저의 고통을 보고 하니까 괴로워도

참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안 되자, 중대장이

총 4명인데 그 중 2명에게 내가 밖에서 술을 대접하면서

힘들고, 괴롭고 아예 공포스럽기 까지 하며, 부대원 들이

반항을 하고, 통제가 안 되며 저를 오히려 공격한다고, 구타를

당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들은 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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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병들이 저 앞으로

PX에서 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음식을 차입해서 먹었습니다.

2~3만원이면 될 것이 7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PX관리병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모르겠다며 협조가 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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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 배치 4개월째 부터 6개월가량 같은 일이 계속 되다가, 중대장들과

얘기를 한 후 PX차입은 줄었으나, 저의 따돌림과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병 2명이 있었는데, 그 2명이 나를 위로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참으라면서 함께 교회가자고 했습니다. 수요일에 교회가기때문에

그 날이 참으로 그리워지고, 그 날은 심정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유일한 낙이 수요일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공포로 가득 찬 생활에서

저는 악몽에 시달리고, 한 번도 편안한 잠자리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수의 사병들이 비위를 맞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현실이 너무나도 암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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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대통령 선거 때 부대 전체가 경호부대로 배정 됐고,

88올림픽이 열릴 무렵, 문제가 된 저를 부대에서도 전출시키고

작정을 한 것인지, 예고도 없이 논산 훈련소로 전출이 됐습니다.

전출 신고식 때 중대장이 박 하사는 터미네이터보다도 강하다고 했습니다.

저의 구타당하고, 공포와 두려움의 나날들과 맹목적일 정도의 따돌림

내용을 알고 있다는 투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심신이 이미 골병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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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자대로 이동 후 첫 훈련이 있었습니다. 훈련소 23연대에서

여름 야외 각개 전투 훈련 때에 피곤해서 잠깐 졸았다고

0 0 0 중사가 지시봉으로 때렸습니다. 지시봉이 두 동강이가

나니까 양팔로 양 어깨를 잡고 무릅으로 20~30번 정도

가슴을 치다가 내가 넘어지니까 한 번 죽어바라면서 두 손으로

목을 졸랐습니다.

그렇게 계속하다가 내가 기절 상태가 되니까

손을 놓고서 나를 방치 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보니까

많은 훈련병이 이 사실을 주위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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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러워서 내가 울고 있으니 조교들과 훈련병들이

아프겠다고 하니까 0 중사가 나는 상처는 나지 않고

증거가 남지 않도록 가슴 속으로 골병만 나게 때렸다고

하며 때리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구타를 당할 때 중대장이 보고도 아무런 지시 없이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참으로 하소연 할 곳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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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국군 통합 병원에서 3개월 입원했을 때는 축구하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입원해 있었으나 등과 목과 팔을 함께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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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했으나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등의 척추와 목과 팔의 고통을 계속 호소하자

간호장교가 밖에 나가서 CT촬영을 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여일 입원해 있다보니 조금 괜찮아 지는

것 같아 퇴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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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병원 정형 외과에서 무릎 치료를 받았으며, 신경 외과에서

등과 목을 치료 받았습니다.

신경외과 군의관에게 눈곱이 끼고,

머리가 어지럽고, 불안하다고 하니까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했으며,

등이 찢어지게 아프다고 하니까 X-레이 촬영을 세번이나 해도

특별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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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5개월을 앞두고 훈련병 사격 훈련이 있었는데,

훈련이 끝난 후 정리를 끝내고 내무반에서 TV를 본다고

중대장이 지시봉으로 뒤통수를 심하게 때렸습니다.

훈련병이 보는 앞에서 교관이면서 중사인 저를

구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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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봉이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뒷날 출근을 안하니까 서기병이

데리러 와서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을 하니까 교육계에서

불렀습니다. 가서 중대장과 저는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에

제가 중대장이 먼저 잘못했다고 쓰니까 교육계가 저를 보고

네가 잘못 했으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하면서

중대장에게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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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조금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제대하는데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중대장에게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중대장이 저를 툭툭 치면서 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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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것으로 끝이났으나 그 후 기간병들과 동료들의

중대장의 눈치를 보면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외롭고, 서글퍼지고, 몸의 아픔도 더 심해졌습니다.

출근하기가 힘들정도로 팔꿈치와 무릅, 목과 척추가

아팠습니다. 저는 하숙방이나 자취방에서 항상

심한 불안감에 불을 켜 놓아야 했고, 밤새 잠을 못 자고

공포심으로 떨었고, 사람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사물집중이 잘 안되고, 물질이 자주 흐려 보이고

먼 곳을 보면 갑자기 쓰러지려고 하면서 사물이

겹쳐보이거나 아른거리기도 했습니다.

눈곱이 심하게 자주 끼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쑥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신경정신과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조금만 참고 있다가 제대하면 괜찮아 지겠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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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무렵에 제가 너무 쇠약해졌다면서 같이 근무하는 군인들이

약을 지어 먹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하니까 군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대인 관계에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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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때마다, 집에 가서도 군 생활이 너무 힘들고 구타가

심하다고 하니까 경찰보다 군대의 힘이 세니까,

구제의 길은 참고, 너무 아프면 의무대에서 치료받고,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군대 생활이 더욱 힘들어지고,

해결도 안될뿐더러 고문관으로 몰린다고, 참으라고만 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서글펐지만,

그래도 죽기 살기로 참고 또 참으며 제대의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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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대 후 저는 공포와 불안이 저를 계속 쫒아다니면서

환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고,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발소리만 들어도 군화소리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기로 작정하고 저의 고향 뒷 산에 올라가

나무를 끌어다가 불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고 온 동네에 불이 나버렸습니다.

방송이 되고 난리가 났지만 고향 어르신들의 선처로 풀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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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또 가스통을 틀어놓고 뒷집 아줌마를 잡아다가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가 저의 친구 어머니인데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지혜로 별 탈 없이 끝이 났으나 그 날 이후로

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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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고, 부산 대남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았고(지금도 정기적으로 대남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습니다) 한강 이남에 잘한다는 신경정신과와

한의원은 다 다녀보았으나 차도가 없어 약을 먹어야 사는

불쌍한 처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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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가 39살입니다. 그 동안에 치료한다고 없는 돈 있는 돈

많이 까먹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신 지체 장애 2급을 받아 사회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지의 생을 날마다 죽이고 있습니다.

저의 남은 생을 구제하여 주십시오.

그나마 군대에서 맞이한 신앙이 지금의 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를 불러서 물어보시면 저의 능력이 닿는 데로

위와 같이 진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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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온몸이 아프고 불안으로 떨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시는 어머니, 앞 못보시는 아버지께

편안한 마음 한 번이라도 드리고 싶고

군대의 원 원관계가 풀리면 심신도 놓임을

받을 것 같아 호소 하는것입니다.

부디 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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