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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을 통해 본 스승의 발자취 <영춘권>vs<절권도>

퀨퀨 |2009.04.06 17:28
조회 1,790 |추천 0

 

서른 두해 강렬한 삶을 살다간 이소룡

 

그에게도 사랑하는 가족, 존경하는 스승,

그리고 자기자신과도 같았던 무술이 있었다.

 

<절권도>가 탄생하기까지는 그가 존경했던 한 사람,

엽문의 <영춘권>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스승을 뛰어넘은 무술의 고수 이소룡!

 

그를 통해 스승 엽문의 발자취를 살펴보도록 하자!

 

 

 

◆ 이소룡과 무술

 

 

 

이소룡(1940~1973)

 

이소룡은 어릴 적부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싸움에서 진 그는 어머니를 졸라 열세 살 나이에 처음 쿵후를 배우게 되었고,

엽문 사부에게 영춘권을 배우며 그는 수련에 더욱 매진하였다.


 

이소룡과 그의 부모님(좌)과 이소룡과 부인, 아들, 딸과 함께한 모습(우)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모습은 담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기만 하다.

열아홉 살에 미국행을 감행,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 문화의 날’에 쿵후 시범을 보인 걸

계기로 그의 수하에 제자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소룡에게 가장 큰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무술은 자기 자신의 확장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쿵후를

‘무한한 자기표현의 원동력’으로 삼았고 쿵후를 통해 ‘모든 두려움,

의심 그리고 물밀듯이 밀려드는 인생의 불안감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소룡의 무술 양식은 ‘절권도’라 한다.

쿵후에 입문하며 익힌 영춘권에 뿌리를 두고 다른 무술 양식들을

받아들여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양식으로 발전시켜 간 그는 자신의

무술 양식에 ‘주먹을 저지하는 방법’이라는 뜻을 지닌 '절권도'

라는 이름을 붙인다.

 

 

절권도 수련 모습

 

이소룡의 도장 벽면에 써있다는 글귀에는 그의 무술 철학이 잘 담겨있

다.  “무술이 담고 있는 진리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이 진리가 무엇인지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 봐라. 유용한 것은 받아들이되, 쓸모없는 것은

내버려라. 그리고 이 진리를 경험과 접목시켜라.

창조적인 인간은 어떤 무술 양식이나 체계보다도 더 소중하다.” 

 

 

◆ 이소룡과 <절권도>

 

 

이소룡(李小龍)이 창시한 무술로 실제와 효과를 중시하는 무술로

절권도는 글자 그대로 절(截)은 ‘다스리다’,

‘끊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권(拳)은 ‘주먹’, ‘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의 주먹과 힘을 다스려 멈출 줄 아는 무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절권도는 기존의 무예들이 일정한 형식의 동작과 기교를 강조한 데

반해 완전 실전용으로 구성된 무예법이기때문에 용어 자체에도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창시자인 이소룡은 밝히고 있다.

절권도는 예측이 힘든 실전에서 빛을 발하는 무형식의 무술로,

기존의 관습과 체계, 형식 등을 타파할 것을 주장했던 이소룡 철학의

완벽한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절권도의 정신은 충실하고, 성실함에 있다. 자신이 무엇을 익히던,

그것을 충실히 익히고 익힌 것을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영화 <사망유희> 속 한 장면

 

 

◆ <절권도>를 사랑한 스타들

 

국내에도 절권도를 갈고 닦아 팬미팅, 영화 속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스타들이 있다.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애아빠가 되어버린 우리의 장혁(하트).

그는 ‘한류 로맨틱 페스티벌 2007’에 참가해 ‘이소룡 절권도 한국 총본관’의 무술팀과 함께

완벽한 복근을 드러내며 절권도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영화 댄스 오브 더 드래곤(2007)을 위해 7년 동안 절권도를 배웠다고

하니,, 사진 속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렬한 눈빛과 절제된 동작이

부르스 리를 버금가는 듯 하다.


또 또 한명의 얼짱 배우 데니스 오. 오오오~

 

 

 

그는 장서희의 팬미팅에 참석해 그 동안 갈고 닦아온 절권도를

선보였다고 하는데,,, 본인의 팬미팅도 아닌 동료의 팬미팅에서 이런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다는데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참 바람직한 몸매가 아닐 수 없다.

 

그밖에도 1년여 동안 수련한 절권도를 ‘흡혈형사 나도열’에서

선보였다는 김수로도 절권도의 열열한 팬이라고 한다.

 

 

◆ 그렇다면 절권도의 바탕이 되었던 <영춘권>은 도대체 어떤 무술?

 

실전무술 영춘권은 ‘엄영춘’에 의해 창시되어 ‘양찬’의 손으로 뿌리내려지고,

‘엽문’이 널리 번영시킨 무술이다.

 

 

 

이소룡의 영춘권 목인장 시범 모습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후난마을의 절로 피신을

간 소림의 오매선사. 그는 마을 불량배에게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던

두부장사의 딸 엄영춘에게 단 기간 내에 배울 수 있는 무술을 전수한다.

엄영춘은 이를 직선적이고 간결한 자신만의 무술로 승화시켜 ‘영춘권’을

탄생시킨다. 그 후, 자신의 남편인 양주박에게 전수된 ‘영춘권’은

그의 제자 황화보와 양이제에 의해 광동성 불산에서 태동하게 된다.

영춘권은 황화보와 양이제의 제자였던 양찬과 양찬의 제자 4명 중

하나인 진화순에 이르러 확립된다. 그리고 진화순의 수제자인

‘엽문’에 의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무술로 재탄생,

비로소 대중화가 되었다.

 

 

◆ <영춘권>을 소재로 한 영화

 

 

 

영춘권(1994)

 

영춘권은 견자단, 양자경 주연의 영화로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의 액션물이다.

영춘권이 태어나게 된 줄거리를 엮은 이야기로 액션배우 견자단이 주연을 맡아

액션의 강도가 높아 잔잔한 재미를 주는 영화이다.

 

 

◆ 이소룡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고수 엽문

 

 

 

엽문(1893~1972)

 

우리가 이소룡의 사부로 잘 알고 있는 엽문은 바로 불산의 명문세가의 일원이었다.

그는 7세가 되던 해에 무술을 시작하여 중일전쟁을 겪은 후, 홍콩에서 차별화된

교육 방식으로 영춘권 붐을 일으켰으며, 당시 13세였던 이소룡을 제자로 들여

훗날 이소룡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권도의 기본기와 그 사상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다.  

 

 

엽문 사부와 젊은 시절 이소룡의 모습

 

닮은 듯 묘한 두 사람의 모습, 젊은 날의 이소룡은 훈남이 따로 없다.

엽문이 제 1대 제자들 중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배우이자 무술가로 잘 알려진 이소룡도 그 중 한 명이다.

영춘권은 서양무술계의 추앙을 받는 중국무술의 하나로,

이는 이소룡이 영화배우로 이름을 떨친 후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 이소룡이 존경했던 스승,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엽문>

 

 

엽문(2009)

 

우선 영화 포스터에 ‘이소룡이 존경했던 단 한사람’이란 카피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자 맨 주먹으로 일본에

맞선 중국 무술계의 전설적인 영웅 '엽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멋진 액션을 선보여왔던 엽위신 감독과 배우 견자단,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미 영화 <영춘권>에서 주연을 맡아 멋진 액션 실력을 보여줬던

견자단은 이번엔 <엽문>에서 ‘엽문’역을 맡아 찐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한다.

견자단은 이번 영화를 위해 영춘권 연마를 오랫동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춘권을 수련 중인 엽문과 이소룡의 모습 (좌)과 견자단의 모습(우)

 

 

 

영화는 무술의 본고장인 불산을 배경으로 영춘권의 고수이면서도 도장을 열지 않고

제자를 받지 않았던 엽문이 일제 침략 후 일본군들에게 고통받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바꿔 조금씩 무술을 전파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영화 속 일본군 장교와의 대련모습(좌)과 군중들의 모습(우)

 

일본군의 만행에 맞서 싸우는 엽문의 모습에서 일제식민지하에 많은 고통을 받았던

우리민족에게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영화 ‘엽문’은 국내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액션과 드라마를

잘 연결하여 이소룡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대가였던 엽문의 일대기

를 잘 표현해낸 작품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이소룡의 <절권도>와 엽문의 <영춘권>

 

 

 

그들은 그 누구보다 강렬한 삶을 살다가 그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무술을 사랑했던 한 명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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