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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산책 19

바른손 |2009.04.15 10:08
조회 87 |추천 0

소설쓰기

 

그대와 함께 있을 땐

하루가 평안하다.

그대에게 무릎베개하고

그대가 들려주는 얘기

내 얼굴 이야기

이마에서 볼을 타고

앙가슴까지 내려오는

꿈속 접목의 손길

점이며, 흉터며, 생긴 모양이며

속삭이는 요람의 소리

소설은 길기만 하다.

 

 

최기종 시집 <<나무 위의 여자>> 중에서

 

 

군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때는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을 때다. 심신의 피로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늑하기만 하다. 어쩌다 아내는 내 머리칼이나 얼굴을 만지기도 하는데 그 감촉 또한 부드럽기만 하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이 무거운 머리를 지탱해야 하니 여간 힘들지 않았을 거다.

나도 가끔 아내에게 무릎을 내 준다. 아내는 '아, 좋다' 하면서 휴식에 빠지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역지사지'라고 아내에게 졌던 신세가 있으니 참을 수 밖에 없다. 속내는 몹시 불편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견뎌야 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낸 것이 있다. 베푸는 것은 투자라는 것, 내가 물심 양면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그만큼 아내가 안락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손해라는 것이 없다고 본다. 결혼하면서부터 나눔의 재화를 반씩 갖게 되는데 내 재화가 줄면 아내의 재화가 늘어나고 아내의 재화가 줄면 내 재화가 늘어나는 사이가 부부인 것이다.

사실 아내도 나처럼 무릎베개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 약한 다리에 내 무거운 머리를 지탱해야 하니 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싫어 하는 내색도 없이 내 머리를 무한정 받아 들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내 얼굴을 읽어 내려간다. 이마에서 앙가슴까지 점이며, 흉터며, 생긴 모양을 탐색해 나가는 것이다.

"이마가 좁은 편이야. 머리숱이 많아서 그럴거야. 이마가 좁으면 내실이 있어서 좋아. 아니, 주름살이 생겼군. 원래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을까? 그래도 주름살이 한 개라 다행이군. 어! 이건 손톱자국인데 누구하고 싸웠나? 그렇지? 싸워서 이겼어 졌어? 와! 눈썹이 많기도 해라. 송충이 눈썹인가? 아니지. 장군 숯검장이야?!&"

아마도 아내는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얘기꾼이 되어서 나의 얼굴 이야기를 한정없이 들려 주었다. 물론 그 소설의 애독자는 나 하나 뿐이었다. 나는 그 얘기꾼의 유일한 청자가 되어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는 꿈 속 접목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마에서 볼을 타고 앙가슴까지 내려오는 그 소설은 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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