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부모도 자식의 한이 되더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그녀가 내 한이 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분명 나는 그녀의 한이었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순하디 순한 분이셨다.
그 순함이 정도를 지나쳐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그녀를 봤다면
조금 모자란다 하였을 것이다.
그녀는 젊어서는 자식들 잡기를 쥐잡듯하여
제 성질을 못 이기더니, 오십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희한하게도
갑작스레 흰머리가 늘고 주름이 지는 상늙은이가 되더니만,
싫고 좋고도 없는 마냥 무골인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변화를 두고 자식들은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론은 극악한 삶의 고통이 그녀를 지치게 하지 않았겠느냐 그리 맺었다.
오십에 그렇게 기운이 쇠하기 시작한 그녀는,
이후 누가 막말을 해도 성을 안 내고, 누가 옆에서 까무러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오십 중반에 덜컥 암에 걸렸다.
그리곤 별로 내색도 않더니만 1 년 반의 짧은 투병 기간에도 자식들이 헉헉대자,
삼 일 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날 좋은 날 가볍게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도 임종 때의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는 편하게 웃지도, 고통스럽게 보채지도 않고
아주 건조하게 돌아가셨다.
-중간생략-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두고두고 못 잊는다.
내 얼마나 그녀 알기를 소홀히 했던가.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지금 이 후기를 제외한 이 소설은 픽션이다.
내 아버진 의사도 아니요, 난 연수처럼 고분고분한 딸도 아니었다.
그러나 난 이 글을 쓰며 참 많이 울었다.
소설 속의 김인희,
그녀는 내 어머니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내가 그녀의 못난 한이었듯,
그녀 역시 이제 와 내겐 다 못한 사랑의 한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바란다.
내세에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다시 그녀의 막내딸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걸, 목숨처럼 사랑했다는 걸
그녀는 알았을까.
초상을 치르면서는 잠만 잤어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로 인해 울음 운다는 걸 그녀는 알까.
제발 몰라라. 제발 몰라라.
1997년 3월
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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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 집 근처 초등학교 교문에 5월은 가정의 달이란 문구가 있더이다..
5월은 참 기념일이 많더이다..
5월1일 근로자의 날 부터 5월 21일 부부의 날까지...
우연히 접하게 된 노희경님의 글을 옮겨 적어봅니다..
아직은 실감치 못하여도 문득 불러보는 "엄마" 라는 단어는 코끝을 찡하게 하더이다
잘해야하는데...
갖은 투정과 못된 성질.. 모두 엄마 몫이 되니..
참.. 불효막심한 딸이네요...
오랜만에 들러서 이런 무거운 글이나 써대구...
모두들 안녕들 하시죠?
아침... 출근을 하고, 싸이미니홈피를 본 순간...
헐... 반가운님의 결혼소식...
부럽구 좋더이다..
비가 그친 오늘의 파랗고 청명한 하늘만큼이나 행복하고, 사랑스런 님이 되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