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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만들기 2

세실 |2004.05.10 23:32
조회 515 |추천 0

"선생님, 큰일 났어요."

 

그것은 어느 오후,

체육 전담시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 반 정아가 사색이 되어서 연구실로 달려온 것이다.

 

"왜 그러니? 정아야."

 

"찬영이가.. 찬영이가.. 뜀틀에서 굴렀는데.. 피가 많이 났어요."

 

파르르 떨리는 정아의 눈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본 순간,

나는 가벼운 안전사고는 아님을 절감했다.

 

 

 

찬영이는 유난히 말이 없는 아이였다.

보통 아이들보단 조금 큰 덩치에 느릿느릿한 말씨..

좀처럼 입은 열지 않았지만,

한 번씩 내뱉는 말은 제법 예리해서 아이들과는 좀처럼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

그 애의 말을 신기해하고 늘 말을 거는 내게 수줍은 듯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찬영이..

"체육시간에 책을 읽으면 안 되겠죠?"라고 진지하게 질문하던 찬영이..

그 찬영이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찬..영아."

교사생활 이래(그래봤자 3년밖에 안 된 신참이지만..)그렇게 많이 다친 아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겨우 소독을 끝낸 듯한 오른쪽 무릎은 제법 많이 찢어져서 살이 꽤나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지혈이 되지 않았는지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핏물..

나는 망연해져서 찬영이 옆에 주저앉아 버렸다.

 

"선.. 생님.."

 

"어떻해.. 많이 아프진 않니?"

 

"아프긴 아픈데.. 뜀틀.. 안 뛰어서 좋아요."

 

배시시 웃는 찬영이..

싫다할 때 빼 줄 껄..

오늘은 웬지 더 나가기 싫어하던 녀석..

내가 살빼려면 나가야 된다고 밀어붙혔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녀석이 자꾸 웃는다.

어쩌라구.. 이 꼬마천사야..

 

그 때였다.

양호실 문이 '쾅'소리를 내며 열린 건,

 

"우리 찬영이 어디 있습니까?"

 

잔뜩 상기된 남자의 목소리..

 

"저..."

 

내가 미처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남자는 나를 스쳐 찬영이에게로 달려갔다.

 

"야, 서찬영..너 어떻게 된 거야?"

 

"난 괜찮아. 제발 흥분 좀 하지마."

 

"임마, 이게 조금이야?"

 

찬영이의 상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낯익은 그 눈빛..

버스안에서 만났던 그였다.

 

"저..."

 

그는 그제야 나를 돌아다보았다.

 

"댁이..선생님.. 이십니까?"

 

경멸어린 눈빛은 비슷했으나  그 강도는 훨씬 짙었다.

그는 기억을 더듬듯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입가에 흐르는 조소..

 

"혹시.. 애 가르면치서도 조는 겁니까?"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

내가 아니라고, 전담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변명이 차마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찬영이는 내 반 아이고, 지금 많이 아파하고 있으니까..

내 책임도 분명히 있는 거니까..

 

"그런 일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좀 더 살피지 못한 건 인정합니다. 죄송해요."

 

"지금, 죄송하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당신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애를.."

 

"조용히 안 해?"

 

격양된 그의 목소리를 잠재운 건

여전히 아이답지 않은 찬영이의 목소리였다.

 

"도데체 왜 그래? 내가 잘못해서 구른 걸 가지고..

아빠가 뭐라고 우리 선생님한테 난리야?"

 

"야, 서찬영.."

 

"당장 입 안 다물면 쫓아 내버릴 줄 알어.

우리 선생님 운단 말야."

 

놀랍게도 그는 잠잠해졌다.

물론 내게 사과를 한다거나, 말을 걸거나하진 않았지만,

그는 참담한 눈으로 찬영이 옆에 주저앉아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당황스러운 빛이 역력한 눈동자와 땀에 젖은 얼굴..

적어도, 아이를 무척이나 많이 사랑하는 아빠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와 나의 두번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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