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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군대시절...

true |2009.05.29 09:37
조회 1,301 |추천 4

 

 

 

            일왕을 천황이라 칭하며 굽실대는 누구와 비교해보라

 

 

 

이명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수 있다.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에게 머리 조아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국정홍보처가 왜 필요한가....

 

이렇게 착한 대통령 인데...

 

 

이명박 후임 오세훈... 이명박이 치적쌓기에 열을 올리며 해놓고... 이어 속출한 부작용 이명박 얘기는 입도 뻥끗 못하고 '설거지' 하던 후임... 방가보며 실실.... 오세훈 조심하자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 전두환 


 

 

저 회고록...

 

조선일보가 친일에 협조하고 군사정부와 결탁했다는 평가등에 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노 무현은 어린시절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후보시절 공개한 소풍갔던 장면이 거의 유일한 유년기 사진이죠. 이 사진은 부산상고 졸업후 곧바로 시골에 와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 찍은 청년 노무현입니다. 탱탱한 피부가 지금과는 다르죠.

산밑에 공부방을 짓고 청운을 꿈꾸던 시절이지만, 책값이 없어 울산의 막노동판에도 뛰어들던 우울한 시절입니다.




명 절때 집뒤 봉화산 자락에 있는 선대 묘소를 찾아

아들 건호씨의 총을 갖고 겨눠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건호씨는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로

 {부나 권력을 중시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가르침을 맘속에 새기고 있더군요.

 



1965 년 여름 부산상고 3학년 때 `8인방'이라고 불린 단짝 친구들과 해운대 백사장에 엎드렸네요. 돈이 없어 대학 진학보다 취업반을 선택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방황과 갈등이 많았다고 기억하는 시절입니다. 담배를 처음 입에 물어본 것도 고1때 학교옆 코스모스밭이었다고 하네요.

친 구들은 노무현을 의리로 기억합니다.

 어렵게 집에서 올라온 향토장학금을 사진 속에 있는

한 어려웠던 친구의 동생 입학금으로 주고 교실바닥에서 자면서 살기도 했습니다.

뒤 쪽으로 40년전의 해운대 전경을 본 것으로도 본전은 뽑는 사진이죠.

 

 

까마귀가 와도 먹을게 없어 울고 간다던 봉화마을 빈농의 아들,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게 없었던 노무현

책값이 없어 울산에서 막노동판에 뛰어들며 힘들게 고생....

사법고시...판사 출신... 90%를 넘는 공판승률에

돈잘벌고 잘나가는 조세 전문 변호사...

부산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던 시절...

앞으론 기름진 토양 위를 밟으며 호위호식 편하게 살아갈수 있었는데

돈은 고사하고 제 몸 제 가족 부지하기 힘든

정부의 억압과 감시를 받는 험난한 인권변호사의 길에 뛰어들어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약자들 편에 서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자신의 정직한 노동의 대가에 정당한 대우를 받을수 있는..

나라를 좀먹는 지역주의와 기회주의가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올곧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기위해...

치열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기위해...

그렇게...국민 곁으로 다가갔다.

 

 

 

1987 년 6월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던 때죠.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이 노변입니다.

 

노변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합니다. 권여사는 먼훗날 {최루탄 터지는 곳마다 아들 딸 손을 잡고 얼굴한번 보려고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투사가 돼 버린 것}이라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중>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노변호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등으로 피해를 입으며...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던 때입니다.

 

경찰서장이 그 독종에 혀를 내두른 노무현입니다.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전경들과 혼자 대적해 길바닥에서 버텼기 때문이죠.

  

"최루탄이 터져도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경찰들과 혼자 대치하던 독종 노무현"

노무현의 힘은 이런 우직함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우직함 바보같은 미련함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부산의 ‘부림’사건 이었다. 이는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자, 조작사건이었다. 노무현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행방불명된 학생들의 어머니의 모습, 고문으로 인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았고 외면하지 못했다. 이후 시국사건, 노동 관련 사건 등 인권 변론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기자 부대 복무햇다면 더 물어볼 필요없습니다. 힘든 군생활의 보증수표 같은곳입니다. 대단하군요 . 아버지가 정치인이고 유명인사인데 그런 부대가서 근무했다니 강원도 사창리에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이기자 예비사단 일년중 10개월이 훈련입니다. 맨날 행군이다 야전생활이다보니 내무반생활 두달도 못합니다. 엄청 힘들고 힘든곳입니다.그 부대는 행정병으로 근무했다해도 고생 인정해줘야합니다. 정말 정말 후진부대라서 보급품도 제때 안나와 삼년을 줄창걸어다니는데도 달랑 군화는 두개 밖에 안나오는 ... 아주 힘들고 억센 예비사단 훈련사단입니다. 저도 이기자 출신인데 고생 만이해봐서 좀 압니다.

 

 

 

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군대시절...

 

노무현 공식 홈피에서 퍼온 글인데.... 느낌은 정말 <답다>라는 것이군요. 노무현.... 좋아하는 이유라면...정말 그냥 보통 서민같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마음좀 알아줄 수 있을만한 드문 정치인이니까... 그런 사람도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또 달라질까요... 아무도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그래도 최소한 아들 군대 빼돌리거나, 특혜입학으로 자식 대학들여보내거나(딸이 재수했다죠, 아마..),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성하지 않고, 이리저리 자리 옮기는 철새짓은 하지 않았으니..... 정말 보통사람도 지키기 어려운 올바름의 길을 걷지 않았나 싶습니다(이왕이면 내 가족은 군대면제 받았으면, 편한 부대에 배치 받았으면 하는건 소박하고 당연한 바램일텐데...)그래서 노무현을 바보라고 하는건가 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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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제가 노무현님을 알게된 사연.....

글쓴이                                                     정병석

글쓴 시각                                           2002-03-11 13:54:52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 평택에 살고 있는 32살에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제가 노무현이란 이름을 알게 되면서 그에 팬이 된 계기를 몇글자 적을까 합니다. 처음 이름 석자를 제 머릿속에 기역시킨것은 청문회를 보면서 였고 그 이미지를 확고히 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92년 말인가 쯤에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모부대에 근무를 하던 당시 저는 그때 소대 고참이었죠 먼저 저희 부대는 1년중 6개월이 야외 훈련인 무척이나 힘든부대였죠 그 만큼 서로를 아껴주는 부대였습니다. 늘 그렇듯 군대란곳이 한 무리가 제대하면 한무리가 입대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이죠

 

어느날 한 신참이 자대 배치를 받고 왔습니다. 그 땐 참 얼굴이 ... 생략 표현 안함 이름이 뭐야 물으니까 노건호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때 부터 군대에서 질문하는 순서대로 어디학교 다녔어 부터...여러가지 질문을 했죠 그러던중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냐고 묻자 '노'자 '무'자 '현'자라고 답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그 노무현이냐구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데요 처음에 저는 믿지 않았죠 왜냐 그당시에 사회흐름이 돈없고 빽없는 사람이 군대간다고 하는 시절아닙니까? 근데 그의 하나뿐인 아들을 그것도 고생이 불보듯 뻔한 부대에 보냈으니 믿겠습니까? 제가 그랬죠 '야 뻥치지마' 그랬죠 그랬더니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거였습니다. '정병장님 맞죠 제 말이. 히히' 그래서 저는 그 후 제대 할때까지 그 건호라는 친구로 부터 노무현이란 분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죠

 

'군대 뭐하러 왔냐? 아버지가 빽으로 안빼 주대'고 물으니까 웃으며 그러대요 '야 남자는 군대 갔다와야되 그것도 힘든대로 가라고' 제 기억이 맞는 다면 자대 배치후 첫면회때도 노무현님은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 주소가 여의도 길래 제가 또 한질문 했죠 '야 너네 데게 부잔가 보다 아버지 돈 많이 버니?' 그랬더니 묘한 웃음을 살며시 짓더니 '우리요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모아둔 돈으로 살아요' '그럼 아버지는?' '그냥 즐겁게 사신다'고 만 말하대요 돈에는 큰 욕심이 없이 무료 법률상담등등으로  볼때.

 

또 한가지 참 그 건호라는 친구는 활달하고 게그맨만큼이나 웃겨서 저희 내무반엔 항상 웃음이 돌았죠. 제가 반농담삼아 '네 아버지도 웃기냐?' 했더니 반색하며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 더 해요'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제가 93년 7월 1일 제대할 때 까지 '형! 형!' 하며 따르며 제대할땐 자기 가족사진을 주며 뒷면에 주소까 지 빼곡히 써서 줬는 데... 세월에 묻혀서 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스렇네요 이글을 노건호 친구가 혹시 보면 여기로 메일 보내 주세요,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coppae@hanmail.net'

 

{{ 끝으로 제가 아는 노무현 후보는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내 가족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주며 진실로 서민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것이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나이 입니다 패배를 두려워 하지 않고 말입니다. 승리할 때 까지}} 후보님 항상 보이지 않게 지켜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힘내시고 꼭 소원성취하세요

그럼 안녕히....  

 

 

 

 

p.s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광복후에 친일 청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면이 크겠죠...

누구는 일본에 동조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며 동족을 착취할때....독립운동 하시고 목숨까지 바치고... 나라와 가족들 위해 죽어간.... 전쟁에서 이름없이 죽으며 희생한 분들...독재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 역사가 어땠을지... 지금은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지만 이런 자유를 누릴수 있을까요? 불과 20여년전만 보더라도... 지금도 누려오던 자유가 위태로워 보이는데...

 

그런말...더 슬프네요... 어려운 사람들... 부조리한 사회현상... 차마 외면못해서 그리 험난한 길 뛰어들지 않았다면... 조선일보 말대로 정말 호와 요트도 몰면서... 권양숙 여사께선 돈걱정 없이... 가장이 사회개혁 이루겠다고 낡은정치 타파한다고 계속 도전해가며 가정이 어려워질일 없이... 가족들 모두가 호위호식... 아주 풍요롭게 사셨을텐데. 하지만...우린 그런 정치인...그런 대통령을 볼수 없었겠죠. 우리 나라가 언제 저런분 같은 정치인을...대통령을 가져볼수 있을까요...

 

추천수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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