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렉터,
이 인물에 관해 얘기를 하고 싶어도, 그에 대한 수사를 늘어 놓다가는 저까지 그로테스크한 인간으로 취급받을까봐 염려스러워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왕에 전쟁 영화 이야기를 필두로 얘기 보따리를 늘어 놓은 김에, 저 개인적인 체험과 어우러지면서 아주 색다르게 다가 온 그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먼저, 한니발 시리즈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그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동일성의 사랑 혹은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 간략히 애기하겠습니다.
살아 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며, 또 사랑하다 보면 유난히 자기와 닮은 꼴의 사람을 아주아주 드물게 만나게 됩니다. 한 핏줄도 아니고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 온 것도 아닌데, 너무나 닮은 성향과 사고 유형, 취미, 놀랍도록 일치하는 습관 등등 마치 또 하나의 자기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지요. 동성 간이건 이성 간이건, 그러한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면 마치 자성에 끌리듯 가까와 지고 사랑하게 됩니다.
동성 간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이성 간에는 서로 처음 만났슴에도, 오래도록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인인듯 사랑에 빠져 드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드물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만남은 결코 아니지요.
서로의 나이 차가 많이 날 경우,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같은 유대의식이 형성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하는 측에서는 딸같고 아들같은 존재를 향해, 정말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붇는 경우가 많고, 동성 간의 관계에서는 간혹 질투심도 유발되지만, 이성 간에서는 질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으니, 아버지나 어머니에 해당하는 사람이 독신일 경우 그 내리 사랑은 아마 친부모를 능가할 겁니다. 딸 사랑, 아들 사랑에 이성으로서의 사랑까지 더해져 있으니, 딸 혹은 아들같은 자기 분신, 또 하나의 자기 자신 그 자체가 행복이요, 그 사랑하는 존재의 행복을 위해 못할 것이 없지요. 많은 나이차, 늙어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비해, 젊어서 또 다시 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요. 말 그대로 존재 그 자체가 행복인 것이죠.
한편으로 이러한 자기 동일성의 만남 혹은 사랑의 경우, 서로가 직접 만나기 이전에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감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름이나 존재가 거론되는 것 뿐임에도 상대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이죠.
또 하나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대부분의 경우 정서 혹은 감정의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서로, 어느 한쪽의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괴로움을 다른 한 쪽이 느끼는 것이죠. 전이의 정도가 심한 경우엔 서로의 생각까지도 상대방에게 지각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이가 발생하는 자기동일성의 만남에서, 서로가 화합하여 잘지내면 이보다 더 좋은 사이가 없지만, 서로 척이 져서 등돌리고 지내게 되면 정말 지옥같은 일이겠죠. 자기동일성의 만남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 어떤 형태로건 결합하여 잘지내게 된다는 것이 그 만남의 필연적인 귀결은 아니거든요.
한니발 시리즈 1, 2, 3
레드 드래곤, 양들의 침묵, 한니발 이 세편은 위 자기 동일성의 사랑에 이야기의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 한니발 시리즈의 제작 순서는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이지만 이야기의 진행 순서는 레드 드래곤이 1편, 양들의 침묵이 2편, 한니발이 3편입니다. -
"악마에게 사랑은..."이라는 제목의 표현대로 보신분들 잘 아시다시피, 한니발은 살인마요 식인마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면 절대로 그런 짓 못하죠. 사랑할 줄 모르니 그따우 황당 엽기행각을 즐기고 살지요. 그런데, 한니발 시리즈를 보면 1편 "레드 드래곤"에서는 윌에게 사랑과 질투를, 2, 3편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에서는 클라리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인 윌과 클라리스를 사랑하는 것 뿐이지요. 동성인 윌 그레이엄에게는 경쟁의식(질투)도 함께 가지지만, 이성인 클라리스 스탈링에게는 오직 사랑 뿐이죠.
다른 한 편으로,
명망높은 정신과 의사요, 범죄심리학자이자, 해박한 철학자이기도 한 한니발은,
스스로를 신의 위치에까지 올려 놓고서, 자신이 보기에 불필요한 인물과 자신에게 무례한 인물들을 카니발리즘(식인의식)으로 응징하는, 완전히 자아도취에 빠진 광기 어린 천재이고, 그런 자아도취에 빠진 천재성은 자신을 빼닮은 천재성만을 사랑할 뿐이죠. 지독한 나르시스트의 자기 사랑이 자기와 동일한 천재성을 가진 윌과 클라리스에게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의 자기자신인 윌과 클라리스를 사랑하는 것 뿐이죠.
1. 레드 드래곤
부터 한번 천천히 둘러 봅시다
레드 드래곤에서 한니발은 윌에게 말합니다.
"자네가 나를 잡은 것은 자네와 내가 너무나 닮은꼴이기 때문이지."
"자네와 내게 상상력이 없다면, 여타의 멍청이들과 다를 바가 뭐 있겠나."라고.
자기동일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말인 동시에, 자아도취증 천재의 오만방자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죠. 사고의 유형과 방법이 닮아 있고 그 풍성한 상상력이 닮아 있고, 그것이 보통의 멍청이들로부터 너와 나를 차별짓는 것이다.라는 말이죠. 지독한 자부심과 오만함, 일컬어 자아도취라고 하죠.
한편으로 한니발은 자신을 체포한 윌에게 미묘한 질투를 느끼기에 그를 사랑하면서도 핀잔 주기 일쑤죠. 여기에 응수하는 윌도 만만챦습니다.
"저는 박사님께서 이빨 요괴와의 두뇌 싸움을 즐기실 줄로 알았는데, 제가 틀렸군요."
"지금 그 말은 자네가 나를 잡았으니 자네가 나보다 더 뛰어 나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건 박사님께서 불리하셨기 때문이죠."
"불리했다니...?"
"박사님은 미쳤거든요."
여기에서 한니발(안소니 홉킨스)의 표정 볼만하더군요. '이노무 시키가...'하고 한방 먹은 표정.
윌의 한니발에 대한 호전적인 태도 - 한니발의 표현으로는 무례한 - 는, 한니발에 대한 배신감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버지처럼, 스승처럼 존경하던 박사가, 식인마로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니(사실상, 윌은 한니발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마찬가지죠.), 이에서 입은 배신감과 상실감의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다른 영화를 예로 든다면 "시티홀"에서 시장인 알 파치노의 부패상을 알아 차린 비서 존 쿠색이 느끼는 배신감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되겠고,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로맨티스트인줄 알고 사랑한 남자가 난봉쟁이 제비임을 알게 된 아리따운 처녀의, 혹은 환상 속의 천사를 보는 듯 사랑한 여자가 고급 매춘부임을 알게 된 순진한 총각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이에 해당할 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니발과 윌의 만남은 흥미진진합니다.
서로가 자기동일성이 가져다 주는 신뢰와 사랑이 교감하면서도,
배신감의 상처와 성취욕구로 인해 한니발을 갈구는 윌,
배신감의 상처를 이겨 내며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윌을 대견해 하면서도, 자기를 잡아넣은 젊은 천재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로 인해 그를 박박 긁는 한니발의 모습...
한니발의 윌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은 영화 도입부분에서 묘사됩니다. 칼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윌을 향해 "너의 심장을 먹겠다."고 속삭이지요. 카니발리즘에서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존경은 심장을 먹는 것이죠. 사랑하는 연인의 심장을 먹는 얘기는 유럽의 사랑 이야기에도 드물지 않게 나오는 것이고, 카니발리즘을 가진 원시 부족에서 전사들은 최고의 상대를 제압하고 나서 그 심장을 먹음으로서 그 용기가 전이된다고 믿었고, 이는 최고의 상대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기도 했지요.
영화를 자세히 보시면 아실 것이고, 양들의 침묵에서도 반복되는 한니발의 모습이지만, 한니발은 결코 윌에게 답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윌이 자신을 그대로 빼어 닮았기에, 자신을 체포하는 데에서도 드러났듯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자기의 사고 유형의 궤적을 윌이 그대로 따라 갈 것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고, 윌이 자신을 신뢰해 주는 것 또한 잘알기에 끊임 없이 해답을 향해 그를 일깨워 줍니다. 대단한 스승의 모습이죠. 답을 주지 않고 줄기 차게 질책과 격려를 통해 윌을 일깨움으로서 윌 스스로 답을 찾도록 만들죠. 윌 또한 한니발을 철저히 신뢰하며 한니발이 조언한 그대로 실행하여 해답을 구하게 됩니다.
물론, 잡아 먹지는 않지만, 영화 끝날 무렵의 편지에도 언급되듯이 이빨 요괴 프란시스 달라하이드에게 살인범죄의 테크닉을 코치하여, 윌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아 넣음으로서 자신을 체포한 은혜에 대한 앙갚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양반이 한니발이기도 하지요. 한니발이 결코 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한니발같은 지독한 자아도취증의 천재가, 살인범죄에 관한 한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자신을 체포한 윌이, 그런 이빨요괴같은 하수에게 죽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죠.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기에 결코 하수에게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동성으로서 같은 천재에 대한 질투심과 자신을 체포한 데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 혼쭐을 내는 것이죠.
한니발과 윌의 사랑과 신뢰,
한니발이 자기동일성에 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죠. 소설에서도 윌이 한니발을 잡게되는 과정에 대해서 윌은 그저 "느낌"일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 간에 오가는 사랑과 신뢰 및 교감을 자기동일성이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자기동일성 그 자체는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죠. 오로지 두 사람간의 느낌이거든요. 느낌을 통해 사랑과 신뢰가 오가는데, 느낌 그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거죠, 그저 느낌일 뿐이니 말입니다. 느낌 그 자체를 신뢰하며, 한니발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윌이, 크로포드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영화를 처음 보면, 윌이 한니발의 조언을 받아서 이빨 요괴라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다시 보면 한니발과 윌의 관계가 주요 모티브이고, 연쇄살인범 이빨 요괴는 둘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소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을 알수 있게 되는데, 이는 양들의 침묵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지요.
2. 양들의 침묵
한니발과 윌과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된 크로포드는, 여자들의 표피를 벗겨서 살해하는 버팔로 빌을 잡기 위해서 한니발의 도움을 얻고자, 가장 적합한 인물로 훈련생인 클라리스 스탈링을 지목하고서 그녀를 투입합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천재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애착과, 젊은 자기 분신의 천재성을 일깨우는 스승으로서의 한니발을 한껏 이용하려는 계산인 것이죠. 물론 그 계산은 그대로 적중합니다.
1편 마지막 장면에서 What is her name?하고 묻는 한니발의 입가에 번지는 알듯말듯한 미소... 자기동일성에 대한 미묘한 감지라고 할 수 있겠죠.
한니발, 아주 정중하게 클라리스를 맞이합니다. 정중하다는 말이 모자랄런지도...
다시 만나게 된 또 하나의 젊은 자기 모습,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이자, 아름답고 매력적인 젊은 여인...
한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스런 딸의 이미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처럼 매혹적인 존재는 없을 겁니다. 세상에 그보다도 매혹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요?
무엇을 준다해도, 무엇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
존재한다는 그것 자체가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존재로서 클라리스는 한니발 앞에 나타난 것이죠.
그녀 또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마음 깊숙한 곳에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안고 살기에 한니발과의 만남에서 무언가 표현 못할 아버지상을 느끼게 됩니다.
한니발은 말합니다.
아직 크로포드의 계산에 의해, 내용도 잘알지 못하는 버팔로 빌을 클라리스가 잡게 해 주어서 승진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아가야, 내게 진실하기만 해 준다면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하는 것이죠.
한니발은, 그 약속의 첫번째 실천으로서
클라리스에게 무례한 언동을 한 옆방의 미그스를 말로 꼬드겨서 자살하게 합니다.
- 완전히 사이비 교주의 모습, 바로 그거죠. 사이비 교주들이 더러 사기꾼들도 있습니다만, 제대로 해먹는 사이비 교주들의 경우, 특정 신도를 가리키며 죽으라고 하면 그 신도 죽습니다. 자살합니다. 그 정도 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사이비 교주도 해먹는 것이죠. 자신을 신인일치의 반열에 올려 놓은 망가진 천재 한니발의 자아도취라면 그런 식으로 범부 한 사람 죽이는 일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죠. -
전화를 통해 크로포트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듣는 클라리스의 표정을 잘보시면, 겉으로 놀라면서도 "어머! 나를 위해서...!" 하며 속으로 기뻐하는 클라리스(조디 포스터)의 표정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한니발에게서 느끼는 무언가 모를 느낌이 구체적인 신뢰로서 교감을 이루어 가는 것이죠.
윌에게 그러했듯이, 한니발은 클라리스에게도 결코 답을 일러주지 않습니다. 일깨우고 또 일깨우며 스스로 답을 구해 가도록 책려하지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들먹여 가면서.
멤피스의 특설 유치장을 찾아 간 클라리스를 한니발은 결코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에고 이쁜것...! 성취욕에 끄달려서 나를 상대로 사기까지 칠 줄 알다니...!"하며 다시 한번 클라리스를 일깨웁니다. 대단한 콩깎지죠. 끔찍이도 사랑하는 겁니다.
'이 한니발을 그대로 빼어 닮은 너인만큼 반드시 네 스스로 답을 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결코 놓지 않고서 일깨워 주기만 하지요. - 여기에서 카메라의 각도를 한니발이 클라리스를 올려 보는 것처럼 잡은 것도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죠. -
클라리스 역시, 윌이 그러한 과정을 겪었듯이, 한니발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차례차례 풀어갑니다.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을 사살하고 캐서린을 구출함으로서 사건은 끝이 나지요.
경찰대학 졸업식장에 걸려 온 한니발의 전화,
클라리스의 목소리는 반가와 하면서도, 행여 누가 들을까 나즈막해지지요. 양들이 침묵하면서 이젠 클라리스의 마음에 한니발이 아버지로서 자리 잡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케 하는 대목이지요. 이는 3편 "한니발"에서 설명됩니다.
3. 한니발
1, 2편에서 인물과 성격 묘사가 대부분 이루어 졌기에, 3편은 1, 2편같은 사이코 스릴러라기보다도 액션 스릴러화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총 세 편 중에서 부연 설명에 해당하는 파트이다보니 대사의 긴장감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줄리안 무어의 연기도 좋기는 하지만, 2편 "양들의 침묵"에서의 조디 포스터의 표정이 3편에서 계속 이어졌다면 영화가 더욱 흥미로왔을텐데... 하는 것도 많이 아쉬운 점입니다.
앞에서 짧게 얘기했지만, 1편의 이빨 요괴, 2편의 버팔로 빌, 3편의 메이슨 버저 등의 엽기적 인물들은 한니발의 카니발리즘과 어우러져서, 영화를 처음 볼 때엔 그들이 주요 모티브인듯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 그들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한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가는 엽기적 인물들의 충격적인 행동을 통해 주요 모티브를 교묘하게 위장한 것이죠.
영화 말미에 한니발의 대사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경력 10년차의 베테랑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탈링의 일상은 척박합니다. 일에 치여 살면서 남편과 자식마저 떠나고, 그저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열중하여 살아가며 일에 이골이 난 모습은, 마약갱단을 소탕하기 위해 출동하는 차량 안에서 동료 남자 수사관들도 긴장하는 순간에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는 것으로 묘사되지요. 열심히 일하며, 배운대로 행하였음에도 상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아야 하는 스탈링의 삶은 고달프기만 합니다.
메이슨 버저가 개입하면서, 스탈링에게 날아 온 한니발의 편지 한 통.
편지 내용보다도 거기에 바른 핸드 크림.
품격 높은 취향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멋쟁이 한니발의 사랑 표현이지요.
유럽의 극히 일부 도시중 한곳에서, 특별 주문 제조된 독특한 향기의 핸드 크림...
FBI수사관인 클라리스가 그 출처를 찾지 못할리 없는 일이고, 한니발은 곤경에 처한 클라리스에게 "클라리스, 너의 시선을 느끼고 싶단다..."라며 자신을 알리는 것이죠.
영화 보신분들은 알겁니다. 한니발이 "클라리스"하고 부를 때마다의 그 다정다감한 목소리...
메이슨 버저의 계략과 법무부 대변인 폴 크렌들러의 농간으로 위기에 봉착한 클라리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날아 온 한니발,
10년만의 만남,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
손가락 하나 그녀에게 갖다 대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클라리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한니발...
회전 목마에서 클라리스의 머리결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니발의 모습은 "어쩌면 저렇게까지 사랑스러울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일더군요.
둘의 협조로 메이슨 버저 일당을 처리하고 난 다음은 폴 크렌들러 차례죠.
2편 양들의 침묵에서 미그스를 처리했던 것과 유사하지요.
사랑하는 여친을 괴롭히는 놈팽이가 있으면, 열받은 남자들 습관처럼 말하죠. "그너무 시키 머리통을 부숴 버린다."고.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한니발을 흉내내지는 못할 겁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폴 크렌들러의 머리통을 박살내더군요. - 특별 주문 제조한 핸드크림의 향기를 편지지에 실어 보내어 자기표현을 하는 것 하며, 사랑하는 이를 괴롭히는 놈팽이를 확실하게 응징하는 것하며...
한니발, 정말 멋진 남자에요! 이거 말 되는 건가...? ㅡ.ㅡa
한니발은 클라리스에게 말합니다.
"나에게서 자유만을 취하라."
"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날아 왔다. 이젠 나를 자유롭게 해다오."
외견상 클라리스가 한니발을 체포하려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고달픔과 외로움에 지친 클라리스는 감옥에 가두어서라도, 아버지같은 한니발을 곁에 두고 싶어 합니다.
둘이 옥신각신 하는 중에 한니발이 클라리스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죠.
"That's My Girl. ...." 내 여자, 내 딸이라는 의미를 모두 가진 말이 되겠죠.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소유하고 싶기도 하고 - 잡아 먹으려는 듯한 표정 -,
고스란히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줄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고 싶기도 합니다. 클라리스의 건재를 통해 한니발의 삶은 한번 더 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부연할 것은, 한니발이 클라리스를 오로지 여인으로서만 사랑했다면, 그 결과는 한니발이 그녀의 심장이나 자궁 혹은 가슴 등을 먹는 카니발리즘으로서 자신의 소유욕을 해결하겠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니발의 사랑은 젊은 처녀 앞길 망치고도 로맨스 그레이라고 뿌듯해하는 속물들의 외도와도 명백히 차원이 다릅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다가 오면서, 마지막 작별 키스.
그 순간, 클라리스는 눈물을 흘리며 한니발에게 수갑을 채웁니다. 감옥에 가두어서라도 그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그녀이지요. 클라리스를 사랑하는 한니발은 그 순간에조차도 그녀를 미워하지 못합니다. 자기 손목을 자르고서 도망치지요.
자신의 손목을 자르고서 도망치는 한니발의 모습은 경찰로부터 도망친다기보다도, 클라리스라는 속박, 사랑이라는 속박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이 옳을 겁니다.
법과 도덕을 조롱하고 카니발리즘을 즐기며, 마음 껏 악마의 자유를 구가하던 식인마 한니발의 자유도, 사랑 앞에서는 너무도 나약해 질 수밖에 없었고, 그는 클라리스라는 사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라 내버릴 수 밖에 없었죠.
클라리스의 팔을 자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 클라리스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한니발 그 자신보다도 소중하기에, 그토록 소중한 존재를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서, 그 사랑스러운 존재가 얽어매는 사랑의 속박을 벗기 위해 자신의 팔을 내던져야 했던 것이죠.
거칠 것 없던 악마의 자유인 한니발이, 사랑에 빠져 나약해졌다가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랑의 속박으로부터, 팔 하나를 자르고서 풀려 났지만,
이제 그의 모습은, 초라한 외팔이 늙은이가 되었을 뿐이죠.
비록 악마이지만, 자유인으로서 사랑 앞에 치룬 댓가는 너무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 한니발의 이야기에 오버랩되는 제 개인적인 체험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설이나 영화에 묘사된 한니발보다도 나약한 인간이고, 그보다도 더욱 사랑 앞에 나약한 남자이지요.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기에, 오히려 한니발보다도 더욱더 자유를 동경하며 열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나약한 인간이 한니발처럼 사랑에 구속된다면, 제가 잘라 내버려야 할 것은 팔 하나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