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김좌진 장군을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 나라는 1998년 외환부족사태(外換不足事態) 이후 오랫동안 경기불황시대(景氣不況時代)가 이어지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신빈곤층(新貧困層)이 증가하는 추세에 놓였다가, 다시 최근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금융시장(國際金融市場)의 붕괴위기(崩壞危機)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거리로 내몰리는 현상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그 영향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중되면서 중장년층은 해직당하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는 무직자 증가세(無職者增加勢)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렇게 국내 경제의 멀티딥(multi-dip) 현상으로 인해 실업문제가 심각해지자 청년들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학문 연구의 성지(聖地)가 되어야 할 대학은 오로지 취업을 위한 경쟁의 현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아무리 수준 높은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정작 기업들은 채용률을 줄이는데 급급한데도 말이다. 이렇게 되어 인문학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경영학이라든가 외국어, 부동산경제, 금융경제, 공업기술, 유통상업 등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 분야만이 우대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가 인문학, 특히 ‘인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역사 탐구를 등한시하는 동안 일본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현장에 사용할 수 있도록 검정통과를 시켰고, 중국은 한국의 고대사를 제멋대로 분탕질하려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왜곡(歷史歪曲)작업을 실시하여 이미 그 어용학(御用學)적인 연구를 끝낸 상태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가 세계 각국의 교육 기관과 행정 기관의 홈페이지 및 정보 보고서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의 역사 관련 기록이 왜곡된 채 제작되고 서술된 내용을 여러 차례 발견했는데 그것을 대략 살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허구(虛構)와 날조(捏造)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국의 영토 전체 혹은 한반도 북부 지역을 중국의 국토로 표기하는 지도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한족(漢族)이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를 건설했고 서기 7세기까지 한반도 북부는 중국,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영토였다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기술(記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한국의 역사 대부분이 중국의 속국이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그 지배권이 일본에 인계되었는데, 일본은 인도적이며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선정(善政)으로 한반도를 통치했다는 어불성설(語不成說)적인 기술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분노까지 일으키게 한다. 만약 한국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읽어보면 그야말로 사실로 믿고 한국의 이미지를 상당히 오류적으로 볼 수 있는 소지가 깊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영국·미국·스페인·독일·호주 등 서양 국가들의 신문, 세계 지도, 역사 교과서, 외교부 홈페이지 등에서 이처럼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이 버젓이 기술되어 있는 것은 일본과 중국에서 악의적으로 한국의 역사·문화를 축소하고 폄하한 서적이나 논문이 마치 사실을 다룬 것처럼 각색되고 포장되어 세계에 홍보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36년간 침략 통치를 했던 한국에게 고대 문물을 전수받았던 역사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사실(史實)을 은폐하려고 갖은 공작을 꾸몄던 나라였기에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인문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사학의 교육을 중시하거나 강화하지 않았다. 역사학은 역사를 연구하거나 교육하는 사람들만의 몫이지 일반 국민들에게는 다른 세계의 학문일 뿐이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였다. 과연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엉터리로 날조되어 해외에 알려지고 있는 이 현실에서 지금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비즈니스를 나간 사람들이 버젓이 떳떳하게 ‘나는 한국인이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고 일본에게 보호받았던 타율적 종속성(他律的從屬性)의 역사를 가진 ‘노예 민족’의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국내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우리 나라의 역사 인물에 대해서 고작 세종(世宗) 대왕이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밖에는 알고 있지 아니한데, 어떻게 외국에서 잘못 기술된 우리 나라의 역사를 올바르게 수정해서 기록하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고유 문화를 제대로 정확하게 알려 줄 수 있겠는가? 역사를 그저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 거리로 삼아 상식적인 부분으로 전달하는 것쯤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역사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과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경제보다 더 중요하고 외국어 공부보다 더 필수적이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고위급 관료들이 독도에 대해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국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을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망언(妄言)을 해대는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 문부성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제국주의 시대를 미화한 엉터리 역사 교과서를 검정통과시켰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중국의 망명세력에 의해 건국되었다, 한국의 역사가 한사군(漢四郡)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야마토 정권이 가야 지역을 정복하고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해 4백년 동안 지배했다, 일본이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독립시키고 러시아의 침입을 막아 주었다, 조선 백성들도 일본과의 합방(合邦)을 원했고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에 합방을 요청해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일본의 지배로 인해 한반도에 근대적 사회제도와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그야말로 국수주의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이 가득하며 허구적인 내용으로 도배된 허황된 위서(僞書)일 뿐이다. 이런 엉터리 교과서로 역사 교육을 받는 일본의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고 멸시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정치인이나 교육자 대부분은 ‘일본은 신(神)의 나라다. 일본이야말로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일본이 다른 나라에 대해 하는 일은 과거나 현재나 모두 옳다.’는 과대망상증(誇大妄想症)에 빠져 함부로 이웃 나라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를 구한다. 불행하게도 일본의 국민들은 이런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 지도자를 더욱 선호하는 듯하다. 국수주의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일본인들 가운데는 한국을 일본의 신국(臣國)이라고 생각하거나 한국을 주권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은혜의 나라로 생각해야 도리인데,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반일(反日) 감정을 조장하는 정책을 펼쳐서 일본을 나쁜 나라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일본인을 볼 때 필자는 소수의 교활한 광인(狂人)들이 다수의 멍청한 바보들을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일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 야구 대표팀이 우승할 때에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의 WBC 2연패(連覇)에 희생양이 되자 국수주의적인 일본인들은 “역시 한국인들은 어떤 분야에서건 인종적으로 일본인보다 매우 열등하다”는 착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이런 일본인들의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에 경종(警鐘)을 울릴 수 있는 획기적인 모델이 바로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미국을 대적한 전쟁 이외에는 외국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망상하는 일본인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김좌진 장군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였던 1920·30년대에 만주(滿州)에서 독립운동 군사단체(獨立運動軍事團體)를 지휘하여 항일투쟁(抗日鬪爭)을 벌였으며 일본 제국주의 군사력과 맞선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끈 영장(英將)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물리치고 조국을 되찾고자 해외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은 외교(外交)·교육계몽(敎育啓蒙)·문화보존(文化保存)·의열투쟁(義烈鬪爭)·무장투쟁(武裝鬪爭)·지하공작(地下工作) 등 여러 노선의 반일독립운동(反日獨立運動)을 펼쳤는데, 김좌진 장군은 일생을 무장투쟁으로 일관하였다.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전투에서 모든 상황이 열악하고 구식무기밖에 갖추지 못한 독립군 장병 1천 5백여명에게 불굴의 투지를 일깨워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 2개 사단 병력을 상대로 놀라운 대승을 거둔 유능한 군인이며 탁월한 전략가였다. 또 교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적 재량을 늘려주기 위해 많은 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敎育啓蒙運動)에도 힘썼던 교육자이며 선각자이기도 했다.
비록 청산리전투의 승리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독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당시 말 그대로 욱일승천(旭日昇天)하던 일제(日帝)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폭압정치(暴壓政治)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쾌거였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이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비인도적인 식민지 지배였다. 일본의 어느 정치인이 “유럽 선진국들이 아시아의 약소국에 대해 식민통치를 한 것과 비교했을 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매우 인간적이었고 공평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지만, 일제는 당시 식민지 주민인 한국인들을 일본인의 예속천민층(隸屬賤民層)으로 만들려고 갖은 획책을 했으므로 만약 일제의 식민통치가 한 10년만 더 지속되었다면 한국 민족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消滅)되고 말았을 것이다.
청산리전투의 승리는 일본인들이 타율적 종속성의 역사를 지닌 ‘노예 민족’이라고 비하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외세의 침입에 맞서 일치단결(一致團結)하여 끝까지 대항하고 종국에는 국난(國難)을 극복했던 항쟁의지를 보여준 위대한 전과(戰果)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깊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의 패전국(敗戰國)이 된 지 6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제국주의 시대 침략행위에 대해서 진정성이 있는 사죄와 반성을 거부하고 도리어 정당화·합리화를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것은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일본으로 돌아가며 남긴 말 그대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재침(再侵)을 꿈꾸고 있지 않으면 절대 할 수가 없는 일이다. 21세기에도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일본과 경제·문화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경제환란(經濟患亂)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과연 일본이란 나라를 가장 안전한 선린우호(善隣友好)의 대상으로 생각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시된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 나라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도 있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위험한 국가 일본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도 우리는 김좌진 장군을 통해서 그 방법과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또 점점 우리의 기억에서 흐릿해져 가는 반일독립운동사(反日獨立運動史)를 다시 되짚어 가며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민족주의 정신을 통해 현대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을 강화하면서 민족적 자립의식을 고취하고, 주변 현실과 국제정세를 낱낱이 분석하여 민족의 앞날을 개척하며 탁월한 예견력과 뛰어난 지도력으로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세계 속의 당당한 부국강병정책을 추진하는 리더십을 배워야 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