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연예인인줄 알았다면
잘 나가는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면
난 그 애의 말을 좀 더 쉽게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저씨 소설은 재미없어여」
그래...
그 애에겐 오직 흥행이 될 만한 것만이 재미있는 것일 테니까
예술성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 당연했다
깊은 감동과 자아성찰 등을 재미로 느끼기 보다는
팔릴만한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그런 글만이 재미있을 거였다
그러나 그 때엔 그 애가 정말 연예인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난 너무나 자책이 되었다
보통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소설이라는 슬픔 때문에...
「너 어디까지 따라 올거냐?」
만화가게를 나와서도 그 애는 날 쫄레쫄레 따라왔다
심지어는 남자 화장실 문 앞에까지도 따라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갈 데가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그냥 무시하세여」
뻔뻔스럽게 말하는 저 태도라니
얼굴만 귀여우면 뭐하냐
싸가지를 바가지에 말아 드셨는지 정말 정 안 가는 타입이다
「이제부턴 정말 무시할 거니까 니 맘대로 해라」
그리고는 난 빠른 걸음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역시 빠른 걸음으로 쫓는 숨소리가 느껴졌다
이 애를 어떻게 하면 떨어트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퍼뜩 목욕탕에 들어가면 되겠다 는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이놈의 머리는...
이러니까 멋진 소설을 쓸 수 있는 거 아니게써
뒤쫓는 소리를 무시하고 잽싸게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탕 안에 들어와서 뒤를 쳐다보니
그 애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물론 못 들어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어쩌면 그 애라면 남탕까지도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쫄았었다
천천히 목욕을 했다
일 년만에 목욕해서 그런지 몰라도
굵직굵직 실한 놈들이 살을 헤집고 마구 밀려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잽싸게 밀고 물 뿌리고 했지만
미처 바닥에 떨어진 흔적들은 처리할 수 없어서
바닥엔 수백마리의 지렁이들이 흐르는 물줄기에 반응하며 꿈틀거렸다
남사스럽긴 해도 이런 쾌감에 목욕탕 오는 게 아니겠는가
약 두 시간 동안 기분좋게 씻고 난 다음에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목욕탕 문을 나섰다
「아저씨!」
허어어억!!
「너!... 너 뭐냐!...」
그 애가 목욕탕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너 뭐야... 기다린 거야...?」
「기다린 거야? 가 뭐에욧!」
그 애는 내 얼굴을 자기 손으로 쓱 문질렀다
「우와! 도대체 얼마나 쎄게 밀었으면! 피부가 투명해졌어여!」
피부가 투명해졌다니...
문장 구사력이 소설가인 나보다도 더 뛰어나지 않은가...
생긴것도 귀엽고
말빨도 예술이고
저놈의 살인 보조개까지...
어디 세상 무서울 게 하나 있겠나 말이다
그래
세상 겁 없이 사는 꼬마한테는 더 이상 부드럽게 대할 필요 없다
세상엔 그런 귀여움이 통하지 않는 남자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너 지금 장난 쳐! 아님 스토커야! 왜 남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녀!」
내가 너무 터프해서였을까...
그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 눈망울이 흔들리며 날 쳐다 보았다
「갈 데가 없어서 그래요...」
아...
꼬마의 여린 눈망울에 금새 맘 약해지는 나의 마음이라니...
난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집에 가면 되잖니. 집에 가렴」
그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집이 머니? 아니면 집에 갈 차비가 없니?」
「그런 거 아니에여...」
「근데 왜 집에 안 가니」
「집엔...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여...」
「반갑지 않다니... 혹시 너 카드깡 같은 거 하고 도망다니는 거니...?」
「그런 게 아니라... 집에 가면 매니저 언니오빠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여」
「매니저 언니 오빠들?」
「네...」
「매니저 언니도 아니고 오빠도 아니고 언니오빠들?」
「매니저가 대여섯 명 정도 되거든여」
「......」
「제가 좀 잘 나가서...」
「......」 (당시엔 이 말이 사실인 줄 몰라 벙 쪄서 말도 안 나왔음)
그래...
내가 쳐죽일 놈이다...
저런 가증스럽고 짝퉁 프린세스틱한 애하고는...
애당초부터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그 애한테 한껏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꾸해 주었다
「오~~ 그래~~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난 일곱명의 매니저와 열 명의
보디가드가 지키는 우리집에 가야 되겠는데?」
그 애가 놀랍다는 듯 고개를 확 들고는 날 쳐다본다
「아저씨... 지금 그걸 유머랍시고 한 거죠?」
쿵!!!..........
유.머.랍.시.고.........
「쯧쯧... 그런 쌍팔년도식 유머를 쓰니 소설이 재미 있을 턱이 없죠」
쿠쿵!!!.............
쌍.팔.년............
재.미.있.을. 턱........턱.........턱................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이익!!!!!!!」
난 몸을 돌려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저 악몽덩어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마 난 미쳐서 돌아버리고 말 것이리라!!!
그러나...
「아저씨~~~」
어느 덧 뛰어 온 그 아이는
내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핫둘 핫둘 구호까지 붙이는 게 아닌가...
「요즘 연예인들에겐 몸매가꾸기를 위한 런닝이 필수인 거 아시죠?」
산 속에서 칩거 생활을 하며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나는
결국 그 젊은 것에게 완전히 따라 잡히고야 말았고...
급기야 구호 소리에 맞춰 구박 받으면서 런닝을 해야 했으니...
오 하나님!!!
도대체 저런 괴물덩이를 제게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나이까!!!!
「비빔밥하고 쫄면하고 돈까스 시켜여」
지 맘대로 변두리 분식집으로 날 데리고 온 그 애는
지 맘대로 메뉴를 고른 다음에
나보고 주문을 하라고 한다
「니가 이걸 다 먹을 거냐?」
「돈까스는 아저씨가 먹는 걸로 해요」
「뭔 말이야? 나 돈까스 안 먹어」
「아저씨 메뉴로 시키는 척 하라구요. 먹기는 내가 먹어요」
「그럼 난 뭐 먹어?」
「먹지 마요」
「뭐야! 왜 나는 먹지 말아야 하는데!」
「아저씨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뭘?」
「두 명이 들어와서 음식 네 개 시키면 정상이에요 비정상이에요?」
「비정상이지」
「쪽팔려요 안 쪽팔려요?」
「쪽팔리지」
「그러니까 세 개 시켜서 먹는 거에요」
「......」
「이해가 가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 애를 보면서
왜 내가 이게 이해가 되는지 내 자신에게 반문하던 중
겨우겨우 반론을 생각해 내었다
「혼자서 메뉴 세 개 먹으면 안 쪽팔린 건가?」
「쪽팔린 거죠」
「그래! 쪽팔리잖아!」
「그래요. 그러니까 얼른 시켜요」
「오케이. 아줌마! 여기 돈까스랑 쫄면이랑 비빔밥 주세요!」
시켜놓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크게 당하고 있는 거구나...
밥 다 먹고 나서
이제는 정말 이 애와 헤어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있다가는 나까지 싸이코가 될 거 같았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밤이 깊어져서 정말 잠을 자러 가야 했다
「이제 우리 이만 여기서 헤어지자」
그 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예의상 약간의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멘트에 들어갔다
「오늘 너를 만나서... 음... 반가웠다... 고 치자... 그럼 잘 가라」
「아저씨는 어디로 가려구요?」
「나도 이젠 집으로 가야지」
「일곱 명의 매니저와 열 명의 보디가드가 기다리는 집으로?」
「너 예리하구나」
「아저씨 왜 어린 양에게 사기치죠?」
「뭐? 사기?」
「아저씨 지방 살죠?」
「어?...」
으아악......
이 아이 봐라...
얼굴도 귀여운 것이 말빨도 예술인 것이 상당한 추리력까지 가졌다니...
내가 지방 사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아까 차에서 수첩 보니까 주소 써 있더라구요」
추리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좋은 것이었군...
「어찌 되었건 이제 밤이 늦었으니 난 잠을 자러 가야된다」
「잠 자러 어디 갈 건데요?」
「글쎄...」
난 그 애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그 애를 보니 정말로 갈 데가 없는 거 같은 눈치였다
만약에 내가 찜질방 같은 데 간다고 하면 자기도 쫓아온다고 할지 모른다
「찜질방은 불편해서 안 갈 거고...」
「나도 찜질방은 절대 반대에요」
「뭐?」
「거기 가면 소문 다 나고 나 금방 잡혀 들어가여」
쿠쿵!!!........
잡.혀.들.어.가.여.........
[내일자 조간신문]
<제목> 장래 유명 소설가와 고딩 여학생이 찜질방에서 같이 잠자다!!
- 경찰, 원조교제로 오인하고 소설가를 구속하는데...
- 아니라고 절규하며 끌려가는 소설가
- 사회 저명인사의 연이은 원조교제는 뿌리 뽑아야...
이럴 수는 없다
내 인생이 이제야 활짝 꽃을 피우려고 하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고딩 여자애한테 발목을 잡힌단 말인가...
「그, 그래... 찜질방엔 못 가겠구나...」
「당연하죠. 그리고 원래 사람은 잠은 편한 곳에서 자야 되는 거에여」
「편한 곳이 어딘데?」
「우리 모텔가요」
「뭐!!! 모텔!!!」
「모텔이 더 안전하고 편하다니까여」
쿠쿵!!!..........
안.전.하.다.니.까.요............
편.하.다.니.까.여...............
[내일자 조간신문]
<제목> 장래 유명 소설가, 새파란 고딩이랑 모텔에서 원조교제!!
- 모텔이 더 안전해요 라는 고딩말에 속아서 간 거라고 절규하는 소설가...
- 원조교제에다가 책임 떠넘기기 하는 이런놈은 사형을 시켜야...
「안 돼! 절대 안 돼!」
난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왜 안 되는데요?」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넌 아직 고딩이라구!」
「그런 것들이 왜 문제가 되는데여?」
「미성년자와의 러브러브는 법적으로 위법이란 말이라구!」
「러브러브?」
「그래! 설사 너와 내가 그걸 괜찮다고 해도 카운터 점원이 신고할 거라구!!」
「카운터에 누가 있다구요?」
「점원!! 그가 우리의 러브러브를 시기하여서 신고할 것이 뻔하다구!」
「점원이 왜 있어야 하는데여?」
「점원이 왜 있냐니!! 점원이니까 있지!! 돈 받아야 하니까 있지!!」
「점원이 없는 곳으로 가면 되죠」
「그런 곳이 어딨어!!」
「아저씨 모르는구나~~ 요즘 무인모텔이라는 게 생겼거든여」
「뭐!! 무인모텔??!!」
「거긴 점원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요」
「뭐!! 정말이야!!??」
「그래여. 들키는 건 아저씨보다 내 쪽이 더 곤란하다구여~~」
이리하여...
난 그 애와 무인모텔로 가게 되었는데...
<다음편에 계속...>
독자 : 헉! 왜 여기서 끝나는 거냐구! 왜 러브러브를 안 보여주는 거냐구!
소설가 : 지금 새벽 세 시 반이거든. 글을 더 쓸 힘이 없거든
독자 : 안 돼! 빨리 다음편을 보여 줘! 빨리!
소설가 : 그럼 추천과 코멘트로 내게 힘을 불어 넣어 봐
독자 : 자!! 서둘러라!! 우린 러브러브를 보고 싶다!! 러브러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