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균과의 첫 데이트
멍하니 눈이 딱 떠졌다. 난 더듬거리면서 침대 어디 구석에 놓여있을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7시 10분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 같다. 직장생활 5년에 항상 같은 시간이되면 떠지는 눈.....
덕분에 아파도 항상 그 시간만 되면 잠이 깨어 고달프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멀뚱멀뚱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그 알바생을 보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줄 알았지?!!
절대!!!! 아니다. 당근 가야지! 암...난 이것 저것 따질 입장이 아닌 노처녀란 말이다.
난 벌떡 일어나 항상 입던 정장이 아닌 청치마에 몇일전에 산 노란색 티를 꺼내었다. 유치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노란티를 보고 있는 나에게 요즘 젊은 애들 유행이라고 말하는 판매원의 말에 울컥하여 내 스타일과는 상관없이 들고 와버린 티였지만 오늘 보니 뭐 그럭저럭 괜찮은 듯 했다.
노란색 티에 진한 청치마를 입고 단화까지 단정히 신으니 뭐 나도 그럭저럭 나이가 어려보이긴 했다.
조금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그 징글맞은 최대리 컴퓨터를 키고, 내 컴퓨터를 키고 어제 마무리 못 지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
9시 되기 딱1분전에 도착한 최대리는
“예진씨?! 어디 아파?!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그리고 그 옷...그게 뭐야?! 나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거야?! 푸하.. 그 캐릭터 진짜 웃기게 생겼다. ”
라며 날 비꼬았고, 난 속으로 참아야 하느니라를 외치며 나름대로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그때 msn의 창이 파랗게 반짝대었다. 열어보니 은영이였다.
[연하남과의 하루!는 뭐냐?! 대화명 말야...]
[어제 우리집 밑에 있는 편의점 알지?! 거기 알바생이 나한테 데이트 신청했어! 훗!]
[뭐냐?! 전번에 보니깐 너보다 한참어리게 생겼던데...그냥 봐도 5살 이상은 차이나 보이던데... 설마 나갈려구?!]
[난 지금 따질 계제가 아니라구....]
[너 그러다가 그 애송이랑 엮어볼 생각이야?! 너가 외롭긴 많이 외로운가 보구나.... 아무거나 먹으면 체한다구!!]
하긴.... 그 하균이라는 알바생.....나보다 나이가 훨! 적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적어도 5살 이상은 차이나 보인다는 은영이 말이 맞긴 하지만...그래도 간만에 받아보는 남자의 시선을 모르는척 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 이제 곧 가을이 올텐데... 옆구리 썰렁하게 다니는 것 보다는 연하라도 하나 끌고 다니는게 낳지 않을까 싶은게 내 심정이였다.
은영이의 말에 조금은 고민이 되는 나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이상한 캐릭터 그려진 노란색 티도 영 찝찌름 했고, 또 나간다해서 그 하균이란 사람이 나의 나이를 알게 된다면 느끼게 될 그런 감정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포함한다고 해도 그사람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밤사이 눈떵이 만큼 커져있었고, 일단은 나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6시 땡 하자마자 CGV로 향했다. 조심스레 건물뒤에 숨어 그 하균이란 사람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뭐야?! 안온거잖아?!....”
라고 중얼거리는 내 뒤편에서...
“여기 왔는데요?!”
라고 말하며 하균이 나왔다. 난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을 식히느라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부쳐댔고, 그런 나의 행동에 하균이라는 그 남자는 요즘 아이들이 잘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선풍기를 틀어 내 얼굴 바로 밑에 들이 대였다.
쪽팔려서라도 못가지고 다닐 그런 선풍기를.... 목에 턱하니 매고 나타난 하균....
초장부터 세대차이 엄청 느끼고 있는 나였다.
하균은 나보다 두세 발자국 앞서서 걸으며 중얼거렸다.
“안나올줄 알았어요.. 쪽지 드리고 나니깐 언제 볼껀지 적지도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아침7시부터 지금까지 기다렸다니깐요! ”
난 최대한 하균과 떨어져 걸을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하균은 내가 젤 싫어하는 힙합바지에 선그라스 그리고 벙거지 모자까지... 남들이 우리 둘의 모습을 본다면 분명 누나와 동생이라고 말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떨어져 걸을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하균은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내 손을 쑥 잡고선 영화관 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오늘 하는 영화 매 회 마다 2장씩 표 끊어놨거든요?! 지금 시작시간이 얼마 안남았어요!”
라며 난 하균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도 몰랐다. 내 옆에 있던 여고생 두명이 소곤거리면서 하균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통에 어떤 정신으로 영화를 봤는지도 몰랐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하균은 자연스레 내 손을 잡고 근처에 있던 커피전문점으로 끌고 갔다. 지금까지 남자를 사귀어 오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빨리 손을 잡은 적은 없었다. 하균은 익숙하게 날 이끌고 있었고, 편안한 감정이 들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시키고 나서야 난 하균을 좀더 자세히 볼수 있었다.
사실 편의점알바생으로 5개월 가량을 봤다손 치더라도 누가 알바생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겠는가....
하균은 잘 생기진 않았지만 귀염성있는 얼굴이였고, 의상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날 위해서 하루종일 기다려주고 그런 것을 보면 매너도 괜찮은 것 같아 점수를 주자면 70점 정도?! 였다.
커피가 나오고 나서도 하균은 영화이야기며 날씨이야기만 했지 시시콜콜하면서도 중요한 호구조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언제쯤 물어볼까?! 마음졸이고 있던 나는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나이 알아요?!”
“나이가 중요한가요?!”
“하지만..보통 처음 만나면 나이라든지, 가족사라든지 그런걸 물어보잖아요....”
“난 그런건 차근차근 알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
하균은 앞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하긴... 차근히 알아갈수도 있지....
“참! 핸드폰좀 줘봐요!”
난 하균의 말에 내 구닥다리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언젠가 은영이가 요즘세상에 카메라도 달리지 않은 흑백핸드폰을 누가 쓰냐며 핀잔을 줬었지만, 난 한번 내 곁에 온 것은 쉬이 버리지 않는 성격이라 아직까지 내 곁을 지키고 있는 폰이였다.
하균은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나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별거 아니예요’라며 으쓱해보이는 하균에게 난 피식 웃어주었다.
하균은 예의바르게 나의 집앞까지 날 데려다 주었고, 그렇게 하균과의 첫 만남은 끝이났다.
그가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 하균은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다. 하물며 자기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건 분명나에게 마음이 없단 소리다.
“이렇게 나의 외도는 끝인가?!”
라며 씁쓸하게 옥탑방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한층더 무거웠다. 그때 띵동 거리며 문자가 들어왔다. 난 추욱 쳐진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핸드폰을 꺼내어 들었고, 문자를 확인했다.
[혜진씨! 집에 조심히 들어가요!]
수신자-혜진씨의 남자
그 문자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핸드폰을 보자고 하더니..이거였나보다. 난 아까보다는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내 보금자리로 향했다.
글쎄 하균의 첫 느낌이 어땠냐구?!
그냥 뭐 처음엔 그랬어...옷도 짜증이 났고, 뭐 별루였어...
우리 나이에 힙합입는 애송이랑은 안어울리잖아. 물론 내가 그 어색한 노란 캐릭터티를입고 가긴 했지만 말야...
그냥 그땐 좀 그랬어...
근데 말야... 하균의 그 따스한 손이 차가운 내손을 덥썩 잡았을때는....
좀 두근거리더라.
난 내가 생각해도 욕구 불만인가봐...
하긴... 그때 그 싸이코 같은 마지막 남자를 빼고는 거의 3년만에 남자손을 잡아본거니깐....
그 싸이코 기억아나??! 그 대머리 총각! 나한테 결혼하자고 매달리는 통에 내가 힘들었잖아.
어쨌든... 그냥 처음엔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