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우리 시집에는 불만 없습니다. 친정에서도 마찬가지고. 우리 둘이 결혼해서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으니 어른 대접 해주시는거죠. 특별히 시집이 기울거나 친정이 기울어서 돈 문
제 때문에 싸울 일도 없으니 원본 글쓴이처럼 시집에 이가 바득바득 갈릴 일은 없죠.
허나 우리 친정 엄마가 아주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기 때문에 글쓴이 분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10년인데도 아직도 정정하신
할머니와 기세등등한 고모들, 우리 엄마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죠.
저 어릴 때 아빠는 개도 안물어간다는 효자 노릇한다고, 주르르 딸린 처자식들은 팽겨쳐
두고 날만 되면 바리바리 싸들고 할머니한테 효도하러 갔었더랬죠. 아빠 장례식 끝나고
안 사실이지만, 그동안 엄마는 아빠 월급 통장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답니다. 늘 생활비
라면서 얼마씩 송급해주고 나머진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고 20여년은 사셨다지요.
아빠 돈 잘 버셨습니다. 한때는 기사도 두고 살았으니까요. 저희요? 용돈 3만원씩 받으면
서 떡볶이 먹는 것도 한달에 한번 있는 행사였지요. 엄마요? 딸만 줄줄이 낳은 죄로 대학
에서 강사로 복직하시려던 꿈을 접고 아들 낳기 위해 집에 들어앉아서 결국 아들 낳았죠.
할머니가 얼마나 교묘하게 아빠를 이용했는지 지금 와서 깨달았네요. 절대 할머니는 엄
마한테 나쁜 말 안했지요. 아빠한테도 늘, '니들만 잘 살면 나는 됐다' 하면서 아빠의 애틋
한 효심을 자극하셨죠. 그러고선 매달 얼마나 용돈을 받으셨는진 아무도 모릅니다.
뭐 하여간 그간 정말 고모들의 이간질과 할머니의 눈물섞인 푸념덕에 아빠는 점점 우리
형제들의 공동의 적이 되어가더군요. 당연 엄마한테도 돌아섰구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 앓아누우셨죠. 나이 50 도 안되어 자식들 줄줄이 딸린 과부가 되
었으니..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웠을지..
그런 엄마한테 고모들이 위로한다고 찾아와서 무슨 얘기를 늘어놓고 갔는줄 압니까?
아빠 명의로 된 시골 땅을 팔아서 할머니를 드리랍디다. 그거 아빠 돈 아닙니다. 절대.
엄마도 아빠만큼 사회 생활할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 놈의 아들 타령에 스스로 희생해
가며 집에 들어앉으신거죠. 게다가 아빠가 주시는 얼마 안되는 돈 모아서 외삼촌 사업에
투자하셔서 불린 돈이 재산의 절반입니다. (그거 할 때도 아빠한테 엄마 많이 맞으셨죠.
여자가 돈 갖고 쓰잘데기 없는 짓 한다고. 알고보니 그때 할머니집 화장실 고친다고
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더랬죠. 느그 처는 돈 좀 꿍쳐놨나보다고, 사업하는데 투자할 돈도
있다고.. )
아빠 돌아가신 뒤에 계속해서 들어오는 고모들의 참견과 할머니의 욕설( 아빠 돌아가시
지 전에는 절대 안그러셨죠. 언제나 항상 새색시같이 얌전하신 양반집 마나님이셨죠)
엄마가 너무 지쳐서 결국, 그 땅 팔아서 할머니 드렸습니다. 정말 저는 그때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심정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더군요. 저 유학 간다고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갔더니, 무슨
돈으로 유학을 가냐 꼬치꼬치 깨묻더군요. 그러구 나서 친척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엄마
뒷마다를 엄청 깠답니다. 자기 아들이 목숨 받쳐서 벌어놓은 돈, 손주도 아닌 딸래미
외국가는데 낭비 한다고 말이죠.
우리 엄마, 이젠 할머니 신경 안씁니다. 뭐라고 지랄을 해대도 절대 신경 끄고 사십니다.
거둘 자식이 아직도 셋인데, 어떻게 살라구요.
할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한다구요? 노력했지요. 처음부터 불효자하고 싶은 자식도 있답
니까? 아무리 해도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그래도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합니까? 어른이 어른다워야 공경을 하지요. 아니, 어른답지 않아도 괜찮으
니 사람만 다웠으면 공경했겠습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인간들을, 뭘 어떻게 공경하
라는 겁니까? 정말 눈꼽만큼만 엄마를 배려했더라면 할머니를, 저 그리고 제 세 동생들이
이렇게까지 저버리지 않았을껍니다.
위에 글쓴이 욕하기 전에 그 분이 어떤 시집살이를 겪어왔는지나 먼저 생각해보고 욕을
하고 돌을 던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