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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벨제붑 |2009.07.12 21:59
조회 925 |추천 1

10년 후...

 

 

2018년 5월 6일

 

 

오전 7시 20분, 따스한 아침 햇살에 단잠에서 깨어 났다.

 

주방에선 일년 사용료가 3000만원인 가정부 로봇이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저놈도 제 밥벌이는 하는 놈이다.

 

 

샤워를 한뒤 TV를 크게 틀어 와이프와 아들녀석을 깨웠다.

 

아침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던 중 10년전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사가 나의 신경을 긁어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의 명이 더 긴거 같다.

 

 

80을 바라보는 비리덩어리 노인네...정말 죽지도 않는다...

 

 

그 당시 말도 안되는 정책들로 국민들을 힘들게 했던

 

 이명박 정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독재주의 정책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대운하를 시작으로 쓰레기중의 쓰레기인

 

미국 쇠고기 수입, 공기업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인터넷 종량제등등,

 

 일본 일왕을 천왕이라 칭하지 않나

 

독도를 일본에 넘긴다고 하질않나

 

미국에 가선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운전사 노릇을 하질 않나,

 

대통령 당선된지 3개월만에 반만년 역사의

 

대한민국을 마치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서 국밥 말아 먹듯이 너무 시원시원하게

 

 말아드시려고 했던 역사상 첫 탄핵 대통령의

 

주인공인 이명박씨...(내 생각엔 과거

 

많은 예언가들이 예언했던 3번째 적그리스도가

 

 아마도 그 였지 않나 싶다)

 

 

한민족 말살프로젝트를 펼쳤던 그런 인간 말종이

 

1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식사 후 배란다에서 담배 한개비를 물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10년전 딱 이 맘때 였었던 것 같다.

 

 

그날은 시청앞 광장에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모두 한 뜻으로 촛불을 높이 들며 이멱박 탄핵을 외쳤던

 

국민의 목소리가 아직 내 귓가에 생생하게 느껴진다.

 

 

청와대의 손아귀에서 뒤늦게 정신차린

 

방송 3사에서 헬기로 찍은

 

동영상을 보며 그래도 우리나란 민주주의

 

국가구나 라는걸 다시금 느꼈으며

 

마치 2002년 월드컵에서

 

이운재의 선방으로 무적 스페인 전함을

 

무너뜨려 4강 신화를 이룬 그날의 감동을

 

이명박 정부의 부도덕함을 국민의 선방으로 막아낸

 

그날 다시금 느꼈었던 날이었다.

 

 

 

아빠!! 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뒤돌아 보니

 

아들녀석이 뾰루퉁하게 쳐다 보고 있었고

 

어느새 재털이엔 담배꽁초가 5개나 놓여 있었다.

 

 

아침부터 쓰레기 같은 인간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듯 했다.

 

오늘은 3일 후에 열릴 몬테카를로 카지노

 

세계 포커챔피언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 하기

 

위해 모나코로 떠나는 날이다.

 

 

3년전 나는 이미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 있다.

 

 

TV옆 책장 한켠에서 내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트로피가

 

아침햇살을 받아 번쩍이고 있었다.

 

 

서둘러 준비한 뒤 아들녀석과 와이프를 내 애마 세드나에 태웠다.

 

 

내차에 세드나란 이름을 붙이게 된 계기가 있다.

 

 

세드나란 20세기 말에 발견된 태양계 10번째 행성인데

 

이 녀석으로 인해 오르트 구름권에 속해 있는

 

 명왕성이 학계에서 퇴출을 당했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난 이 사건을 인터넷으로

 

우연히 접한 뒤

 

천문학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이 태양계 안의 행성이 '

 

수금지화목토천해명' 9가지 뿐인걸로

 

수십년동안 알려져 왔는데 이 세드나의

 

발견은 우리 인류에겐 적어도 나에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말 보이저 1호가 150억 키로미터

 

떨어진 태양계 외곽을 지나 신호가 단절된지

 

 20년 가까이 흘렀다.

 

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땐 그저 한낱 먼지

 

보다도 작은 존재이며

 

우리가 모르는 존재가 은하계 밖에서

 

현미경으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였다.

 

 

그리고 두달전 2018년 3월 나사에서 화성으로

 

우주인 4명을 태운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렸다.

 

 

지구로 부터 5억 키로미터 떨어진 화성으로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달착륙 이후 최대의 이슈거리 이자

 

외계 생명체를 찾는 목표로 이 드넓은

 

우주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라는

 

말도 안되는 가설을 완전히 뒤엎어

 

버릴 인류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21세기 초 무인 우주선 바이킹 1호와 2호가 찍어온

 

5만여장의 화성 사진들을 종합해 화성의 지도를 만들었었다.

 

그로 인해 화성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거나 혹은

 

살았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과가 나왔었다.

 

 

바로 물이 흐른 흔적들이 즉 계곡들이 수백군데가 발견 된 것이다.

 

그런 희망적인 염원을 품고 그들은 우주선에 올랐다.

 

 

공항을 향하는 내내 인류의 미래를 진보시킬

 

그들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공항에 도착한 뒤 새련된 비행기 디자인들이

 

그래도 내가 미래에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인지 시켜주었다.

 

 

모나코를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온갖 잡생각이 들다가 어느덧 18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천년이 밝아 오던 2000년 난 하나뿐인 친구이자

 

20년지기 성진이형과 함께 방세와 차비만

 

들고 젊은 혈기 하나로 무작정 그렇게

 

상경을 하였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었던것 같다.

 

상경한 뒤 첫 두달정도는 추위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정말 안해 본것이 없을 정도로 서울 시내 바닥을 훑고 다녔었다.

 

롯데 칠성사이다 공장에서 하루종일

 

꾸벅꾸벅 졸면서 기계처럼 빈병갈려 내는일,

 

 물탱크 청소, 불법대출 찌라시 돌리기

 

(정말 서울 시내바닥 구석구석 걸어서

 

다 돌아다녔고 더이상 걸을수 없을때 까지

 

걸어 집에 기어서 들어간 적도 있었다)

 

주유소 알바, 횟집 서빙(전국에서 두번째로 매상이

 

 높은 집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만히 서있을 틈이 없었다)등등...

 

그 고생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수가 없다...

 

 

한번은 너무 배가고파 새벽에 가정집 우유를 훔칠려고

 

 했었는데 실패 했었다.

 

 

서울은 우유배달부가 우유를 가방에 싸서 대문안으로 넣어 준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고생은 안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굶고 있던 내가 불쌍해 보였던지 공짜로 빵을

 

주시던 제기동의 모 슈퍼가게 아저씨, 요구르트 1개와

 

빅파이1개로 하루를 때웠던 그 때...

 

모든걸 포기 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버지하고의

 

약속 때문에 오기로 버텼었다.

 

만일 그때 내가 포기하고 다시 울산으로

 

내려 갔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하고는

 

아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그렇게 버티며 흘러 들어 간 곳이 바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곳 부천 청해 수산이었다.

 

그 곳에서 난 정말 죽어라 일했다. 매일저녁

 

코피흘려가며 일식요리를 배웠다.

 

항상 새벽에 먼저 식당에 내려와서 준비하고 저녁 늦게

 

숙소에 들어가고 정말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난 형들에게 휩쓸려 포커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까진 내가 그 계기로 인하여 나의 미래가

 

이렇게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매일 밤 형들과 밤새 포커를 치며 실전포커 경험을 쌓고 있었다.

 

 승률은 90% 이상으로 거의 매일 땃으며

 

 아침에 은행 문이 열리면 바로바로 저금했었다.

 

 하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고 했던가...

 

그 당시 돈에 관해선 아직 개념이 없었던 난

 

그 많은 돈을 하루하루 물쓰듯이

 

 다 쓰고 다녔었다.

 

또 다음날 따면 된다는 철없던 생각이었다.

 

지금 아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시점이었다.

 

후회가 많이 되는 그때였지만 다르게 생각해선 정말

 

배운게 너무 많았던 그때였던것 같다.

 

 

낮엔 요리를 밤엔 도박을...

 

 

평범한 내 나이 또래 애들은 경험하기

 

힘든일을 겪은 것 같다.

 

문득 창밖을 보니 중국 대륙이 보인다.

 

지구 온난화의 이상기후로

 

인해 누런 모래 바람이 점점더 심해지는 것 같다.

 

저 많은 모래들이 한반도에

 

들이 닥친다는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중국놈들 나무좀 심을 것이지...

 

옆좌석에선 와이프가 색색거리며 곤히 잠들어 있다.

 

와이프랑은 5년전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포커 챔피언쉽

 

대회 예선전에서 처음 만났다.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유학생이었다.

 

훗날 들은 얘기지만 와이프는 나의 뻥카치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뻥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물론 잘알겠지만 말이다.

 

우린 블랙잭 게임을 같이 즐기며 급속도로 가까워 졌고

 

내가 부천대 시절 졸업 작품으로 만든

 

베이직 스트레티지와 카드 카운팅을 쉽게

 

따라하는 기계를 주며 잃지 않는 방법등을 가르켜

 

 주었는데 금세 잘 따라 하여 나와 듀엣으로

 

미주 전역에 있는 수백곳의 카지노 블랙잭

 

테이블을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이듬해 결혼을 하여 옆에서 장난치고 있는

 

아들 녀석을 낳았다.

 

이름은 내가 세상에서 재일 존경하는 남자인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김상수라고 지었다.

 

할아버지처럼 존경받는 남자가 되라는 의미였다.

 

잠깐 잠이 든 뒤 와이프의 목소리에 깨어났다.

 

저 멀리 프랑스 국경이 보인다.

 

30분 뒤 모나코 공항에 내려서 먼저 와있던

 

하나뿐인 친구 성진이형을 만났다.

 

 

형이 예약해 놓은 호텔방에 짐을 내려 놓고

 

이틀 뒤로 앞당겨진 토너먼트에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모나코 시내의 야경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형 가족들과 저녁 식사도 하고

 

20년전 같이 고생하던

 

제기동시절을 추억하면 행복한 밤을 보냈다...

 

 

 

비록 이 모든것이 아직 이루지 못한 나의 목표이지만

 

내 삶에 있어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꺼같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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