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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제일 성령충만한 자리 찾는 법

할레반 |2009.07.27 04:25
조회 164 |추천 1

불교와 같이 가르침에 기초한 종교에 비해,

기독교처럼 하나님, 성령이라든가 절대자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종교에서는

거룩하다, 성스럽다 하는 느낌은 신앙을 유지시키고 재충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읍니다.

 

크게 잘 지어 놓은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집회에 참가하면 마치 하나님이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룩하다' 또는, 기독교적 언어사용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많은 사람들에게 어찌보면

교리보다도 신앙유지에 더 큰 역할을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다', '성스럽다'는 말은 4,5천년전 고대 이집트, 바빌론에서 이미 사용된

표현이었읍니다. 실제 한 7일 한주의 제도를 창조한 바빌론에서는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을

성스러운 날이라하여 음식도 요리하지 않고, 새 옷도 입지 입지 않고, 왕은 집무를 하지

아니 하였다고 합니다.  영어로 휴일이란 뜻의 holiday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하나님 신앙을 가졌던 고조선시대에 이미 성스러운 장소의 개념이 있어

소도라는 곳에 죄인이 들어가면 더 이상 추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합니다.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부여, 고구려, 백제가 모두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었지요.

 

거룩하다는 느낌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는 하나님 또는 성령이 실제로 가까이 와 있는 것일까요?

상가건물에 세든 천장이 낮은 조그만 교회에서는

거룩한 느낌이 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 초라한 곳에는 성령이 오기를 꺼리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룩하다는 느낌, 성령의 느낌은 상당부분 연출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교회는 수천년동안 이 거룩함의 연출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일요일마다 되풀이 되는 예배라는 이름의 '거룩한 집단최면'

 

높은 천장, 성가대의 합창소리, 천사들을 연상시키게 고안된 그들의 의상,

연단의 조명장치,스테인드 글라스, 음향시설,

목사의 가라사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 신도들의 아멘 합창소리,

파이프 올갠, 또는 피아노가  받쳐주는 찬송,성가 등등

의 것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거룩한 집회에 있다는 느낌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군중의 규모가 클 수록 거룩한 느낌은 더욱 커집니다.

마치 록컨서트 인파규모가 클 수록 열광의 분위기가 제곱으로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큰 교회가 유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같은 교회내라도 앉은 장소에 따라 거룩하다는 느낌의 강도도 달라집니다.

 

2층에 앉아 예배를 보면 거룩하다는 느낌이 반감하게 되는 이유는,

우선 천장이 낮다는 것, 시선이 우러러보는 방향이 아니라 내려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하늘쪽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머리위의 공간이 없는 데다가 시선마저 아래로 향해야 하는 위치에서는

거룩한 느낌이 상당히 좌절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놓고보면 우리가 받는 '거룩하다'는 느낌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읍니다.

 

오히려 이 거룩함의 연출은 가짜하나님을 진짜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투자일 뿐인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 거룩한 느낌의 댓가로 헌금, 십일조를 선뜻 내놓으니,

종교사업자의 입장에서 은행빚을 내서라도 더 높은 천장에, 화려한 조명장치와

음향시설을 갖춘 교회를 짓는 것이 당연한 투자가 되게 되었읍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을 연출하는 자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신에 대한 찬양과 헌물의 댓가로

살아서는 '구원'과 '새생명'을,

죽어서는 '천국'을 주겠노라는

은밀한 조건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하나님' 앞에

어김없이 차려지는 그  '거룩함'의 연출......,

 

그 거룩함의 연출자들이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뿌리고 있는

탐욕과 증오의 씨앗들, 교만의 악취, 멸망의 저주질들...

 

그런 자들이 제시하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일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된 거룩함에 현혹되어 탐욕의 자들 곁에 함께 서 있는 것이

자신과 이 사회와 이 나라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던가요?

 

가장 거룩한 것은 우리 각자의 여기 존재함 그 자체가 아니겠읍니까.

자신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보다 더 신비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청동기시대 중동지방에서 만들어진 가짜 하나님이  약속하는 '새생명'과 천국의 자리가

참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본생명'과 그 뿌리를 배신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그럴듯해 보이십니까? 

 

"우리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다",  

그러니  '알량한 인간의 지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

또는 '심판이 두렵지 않느냐'  등등,

종교업자들이 거룩함의 연출과 함께 내놓는

성스러운 최면과 협박에 속고 겁먹어,

그만 자신을 이 땅에 내려주신 본생명의 하나님을 잊으셨나요? 

 

거기에 속아 지금도 일요일만 되면 재물을 들고

거룩함으로 치장한 가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집을 나서십니까? 

 

진짜든 가짜든, 믿어 행복해 지면 그만이라구요?

 

이명박정권의 출현이래 미국쇠고기,뉴라이트 역사조작,건국절사태로 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미디어법 사태에 이르기 까지 국민들간의 분열의 골은 깊어가고

나라는 갈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읍니다.

 

이 땅을 가짜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는 광란의 자들 옆에 서서

그들에게 힘을 보태 주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이 땅에 이 나라에 보내주신 참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지성과 양심이라는 마음의 눈을 주셨읍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징표로 우리 모두 자신의 신앙과 이 세상과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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