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편력 (#25)

J.B.G |2004.06.19 09:45
조회 227 |추천 0

 

대학교의 벤치에서 세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희가 잠시 옛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 그녀 앞에 초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응?”

 

세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초희에게 말했다.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군...”

“그런데… 먼저 연락을 하다니… 웬일이시죠?”

“이런... 말투를 보니 좀 변한 것 같긴 하군...”

 

초희는 세상의 모든 일에 체념한 듯한 말투로 힘 없이 대꾸했다.

 

“세상에 혼자 남아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 변하게 마련이죠...”

“그럴지도...”

“그것보다… 무슨 일로...?”

“그냥... 만나보고 싶어서...”

 

세희의 말에 초희는 어딘지 모르게 실망한 얼굴이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잊은 듯 침묵했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초희가 먼저 어렵게 말을 걸었다.

 

“… 그분은… 잘… 지내죠?”

“그냥... 그럭저럭…”

“그렇… 겠죠?”

 

초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하지 않지만,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절 이미 잊었을지도 모르죠...”

 

세희는 초희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역시 말 끝을 흐렸다.

 

“그렇기야 하겠어...”

“저… 많이 울었어요. 처음 만날 때는... 아버지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런데… 이젠 다 끝났어요. 다…”

“뭐야? 마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왜 그래...?”

“엄마를 닮았나 봐요. 엄마는 평생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사셨거든요. 마치 의미 없는 목숨을 연명하는 사람처럼...”

“설마... 초희씨도...?”

“그래요... 이젠... 정말...”

“초희씨...”

 

세희는 초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죄책감을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었다.

 

‘젠장…’

 

세희의 심정을 모르는 초희는 계속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말했다.

 

“이럴 땐 정말 엄마 생각이 간절해요. 내가 외톨이라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엄만... 아버지를 보낸 것을 평생 후회했어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했다고... 평생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그랬다면서 항상 후회 했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평생 후회하셨고… 또... 그렇지만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으셨죠. 평생 자신을 학대하며 사신 거예요. 그래야만 아버지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야만… 그래서 아버지가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라고 그런 모습으로라도 아버지 가슴 속에 남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런 모습으로라도…”

 

두 사람 모두 가슴이 아파왔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 나에게도 그런 말을 했었어. 사랑이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고...”

“좀… 의외군요. 왜 변호사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요? 서로... 그러니까… 그렇게 편한 관계는 아니었을 텐데…”

“글쎄... 하지만, 우린 적어도 적은 아니었어. 동업자였지... 둘만의 계약에 동의한 동업자...”

“… 어떤… 계약이었죠?”

“글쎄... 잊혀질 만도 한데... 그 계약을 아직도 생생해... 늘 나를 죄책감으로 괴롭히지...”

“도대체... 무슨 계약인데요?”

“몰라! 아무도... 아직은… 하지만, 초희씨… 어쩌면 곧 알게 될 수도...”

“…”

“아니… 아냐! 평생 모를 수도 있어...”

“...”

 

시내의 한 바에서 세희는 혼자 술을 마시면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돼! 빌어먹을 교활한 계집. 나에게 양보하는 것처럼 하고는... 결국 평생 날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다니…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결국...”

 

밤이 깊어 갈수록 세희는 점점 더 취해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세희는 소리를 지르며 재환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당장 나와! 나라고! 내가 왔어! 이 자식아! 이… 나쁜 자식아!”

 

세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다… 다…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다…”

 

다음날 아침. 세희는 심한 두통을 느끼면서 재환의 침대에서 깨어났다.

 

“제길...”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집과 다른 환경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재환의 방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때, 방 문이 열리면서 재환이 들어왔다.

 

“이제 정신이 드니?”

 

그녀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으…으응... 머리가 좀 아파...”

“세희 야...”

 

갑자기 재환이 세희를 꼭 안으며 말했다.

 

“왜 그래...? 갑자기...”

“정말 미안하다... 정말... 나... 난... 정말...”

“글쎄, 왜 그러냐 니까...?”

“한 여자만 바라보느라... 미처 널 보지 못했어... 난...”

 

신영의 애기가 나오자 갑자기 세희는 온 몸에서 모든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이럴 필요 없어... 재환씨를 일방적을 좋아한 건 나야... 재환씨 책임은 없어...”

“세희 야...”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제 그만해... 난... 괜찮아...”

 

그 말을 하며 세희는 의도적으로 재환과 떨어져 앉았다.

 

“그… 그런데... 나 어제 실수 안 했어...?”

“실수는... 무슨... 넌 나한테 어떤 실수라도 할 자격이 있어...”

 

재환의 말에 세희는 다시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과연 그럴까...?”

“그렇고 말고...”

“사실... 나 할말이 있어 왔어...”

 

그러나 재환은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았다.

 

“됐어... 괜찮아... 이제 모든 것이 다 괜찮아 질 거야... 모든 것이...”

“재환씨...”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