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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문자가 올것만 같습니다.

찡찡이 |2009.07.30 14:58
조회 677 |추천 0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처음본건 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때 저는 초등부 배구선수 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학교 배구선수였지요.

 


정확한 대회 명칭은 생각나지 않지만, 전국 초등부 배구대회였습니다.

 


저희학교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친선전은 잘하고 실전에 약한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부산에서 친선경기 경기 실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우리 학교는 부산 대회전에서는 징크스대로 전국구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어떤 학교가 기권으로 자리가 나자 배구협회에서 우리학교를 뽑아 부산에서 두 학교가 전국대회전에 출전하게 됬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생각지도 못한 전국구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국구 본전에서 완전 패하고 별다른 경기나 스케줄이 없음에도 우리학교는 다음날 하는 결승전까지 하고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도 교장이 1박2일 생활예산지원을 허락해서라고 하는데, 우연이라면 우연이지요.

 


그녀를 보게 된 것도 여자부 결승전에서 였습니다.

 


만인에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미모였습니다. 초등학생이긴 하지만, 남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예쁘다고 시선을 쏟았습니다. 아쉽게 그녀가 속한 팀이 2위를 하긴 했지만 경기 결과는 아무 관심 없었고 그저 그녀만 더 보고 싶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산에 돌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배구를 계속하면 그녀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중학교에 지원하게 되고, 중학교에 가서도 배구를 계속했습니다. 남다른(?) 목표가 있어서 인지, 저의 실력은 동급생들을 훌쩍 넘을 만큼 성장했고, 선배들도 부러워할 만한 실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꿈은 국가대표 배구선수가 꿈이 되었고, 각종 배구대회를 출전해서 상들을 휩쓸고, 서포터들의 눈에 찍히려 안간힘을 쓰곤 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초등학교 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배구를 하게 되었던 순수함은 온데간데없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대한 관심도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때 당시 저에게 대학에 입학하는데 영향력 있는 경기는 총 3개 였습니다.

 


2개를 무사히 마치고 친구가 타고 온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오는 길이 였습니다.

 


그런데.. 중앙선 너머에 있던 5톤 트럭이 졸음운전을 했는지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우리 오토바이로 들이 닥쳤습니다.

 


친구가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 친구는 다치지 않았지만, 트럭을 반쯤 피한상태에서 트럭이 주는 충격을 고스란히 제가 받고 말았습니다.

 


깨어보니 중환자실 이였고 1달이 지나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왼손잡이 선수 였는데, 재활 훈련을 해도 왼팔을 쓰는데 조금 불편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게 끝이 났습니다. 공부도 한적없이, 별다른 계획없이 그저 한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왼팔을 다쳐 운동을 그만두게 되다니.

 


아침에 눈떠서부터 잠들때까지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신골절을 입은 상태라 6개월간 더 입원해 있어야 했고, 나는 퇴원하기전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나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꿈같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여의치 않은 가정에서 3남매중 장남인 나는 방황할 겨를도 없이 현실을 받아 들여야만 했습니다.

 


하루종일 그 생각에 시달려도 답이 없었습니다. 책을 사서 공부도 해보았는데 저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느끼는데 도움이 될뿐이였습니다.

 


1달이 지나고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어 바람도 쇄고 같은 방을 쓰던 환자 7명과 얘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의사 말처럼 왼팔은 운동하는 데는 지장이 있어도 생활 하는데는 크게 지장 없다는 것을 알았고, 죽고싶다는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격도 예전처럼 돌아오게 되고 하루빨리 내가 할 것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 외엔 힘든 것도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병원사람들과 친해졌고, 그중에는 동갑내기 여자도 이었는데, 동갑이라서 그런지 말도 통하고 많이 친해 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병원을 오게 됬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대학교행사로 등산을 갔다가 산에서 굴러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교통사고 얘기를 해주었죠.

 


그녀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 하고 대학을 가서 저와 동갑인데 대학생이였습니다. 조금 뚱뚱하긴 했지만 성격 좋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괜찮은 여자 였습니다.

 


6개월동안 같이 생활을 해서인지 정말 많이 친해 질 수 있었고, 나아가서 우리는 서로 호감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아깝다고 난리도 아니였지만, 그녀의 천사같은 마음씨와 가끔은 터프하기까지한 성격이 너무 좋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은 서울에 있었는데 저는 부산사람이라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 일 하면서 수능 공부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녀가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수능공부를 도와주겠다는 것이 많이 위로 되었고 저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커플은 주말마다 만났고 대학생인 그녀가 보통 부산에 와서 놀고 가는 식이였습니다.

 


사귄지 세달이 되어 가던 무렵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집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때 받은 은메달이 있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뭐냐고 했더니 우연히 배구대회 나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2위를 한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모든 상황이 몽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데자뷰인가? 꿈꾸는건가? 영화인가? 에이 설마..

 


수업중에 참지 못하고 나가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혹시 전국대회냐고.. 맞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에이.... 그녀가 아니겠지 그냥 같은 팀이 였겠지. 그녀의 지금 모습과 그 초등학생의 모습은 많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스캔해서 보내자 내가 의심하던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됬고

 


내가 꿈에 그리던, 배구를 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그녀라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녀가 이전보다 더 사랑 스러웠습니다.

 


어떻게 100일이 다 되가도록 몰랐는지.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그녀는 배구부 선수에 소속 된적이 없고

 


초등학교 4학년때 3달간 방과후 수업으로 배웠는데, 출전하기로 했던 선수가 못가게 돼서 급작스렇게 대신 출전한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배구에 별다른 관심도 생각도 없었고 제가 배구선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인이 어린시절 배구대회 나가서 2위를 했던것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이 였습니다.

 


이 모든게 그녀와 내가 만나기 위해 하늘이 내린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린 그 뒤로도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었고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만큼 사랑했습니다.

 


계획대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알바자리를 구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수능 준비를 했습니다.

 


그녀가 무료과외를 해주었는데 나의 성적은 날로 상승했고,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는 1학년 대학생활을 잘 하고 있었고 군대 입대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만난 우리 사이인데 군대라고 우리사일 갈라 놓겠냐고 했죠.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입대할 예정이였습니다. 예정대로 입대를 했고, 100일 휴가를 나올 생각만 하고 지냈습니다.

 


100일 휴가때 여자친구가 부모님의로부터 외박을 허락받아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군생활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00일 휴가를 나왔고 계획대로 1박2일 여행을 갔습니다. 비가 오긴 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저 좋았습니다. 그녀와 있는 시간이 군대에서 보냈던 100일은 몇년전 얘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달콤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보러 부산행 기차를 탔고 그녀는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할 시간이 됬는데 전화도 안받고 연락안됬습니다. 피곤해서 잠들었나 싶어 여의치 않았고, 저도 오랜만에 부모님과 두 동생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이 되도 연락이 안됬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했고 아직 안들어 왔다는 것이 였습니다. 부모님도 연락이 아직 안됬고 걱정하는 중이라는 것이 였습니다.

 


군대 복귀 마지막날 저는 서울에 경찰서로 불려 갔고 제가 여자친구를 어떻게 했다는 가정하에 심문 받아야 했습니다. 심문이 끝나고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의심 받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어디 갔을까. 제발 연락조 괜찮아. 어떤 잘못도 난 이해할 수 있어 널 위해서 죽을수도 있어.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내일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 나는 군인이라는 사실.. 그녀는 연락이 안되고 나는 군대 가서 헌병대의 심문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사실..

 


그녀를 만나 사귀게 된 것도 꿈같지만, 이모든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헌병대에서 저를 데리러 왔고 헌병대차로 군대에 복귀를 했습니다. 끝없는 심문을 받았고, 1박2일동안 무었을 했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입에 신물이 나도록 말해야 했고, 행복한 추억이 악몽으로 변해갔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6개월뒤 한 야산에서 시커멓게 썩은 주검이 발견됬습니다. 165정도의 20대 여성이라는 것을 간신히 분별할만큼 부패해 있었고 실종된 그녀의 부모와 DNA대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휴가가 있어 경찰서에 가서 소지품을 확인 했는데, 우리 커플링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견당시 손가락 쪽에 있었다고...

 


나는 아니라고 유명브랜드라 사람들이 많이 낀다고, 우리가 모르는 이유로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고...

 


DNA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 빌어먹을 군대에 다시 복귀해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아니길 만을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DNA감식 결과 딸이 맞다고.....

 

 

 

 


세월이 흘러 저는 제대를 했고, 대학에 갔지만 그녀가 없는 서울 생활을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그렇게 한 놈이 누군지도 모른체, 방치하는 경찰이 원망스럽고, 제가 경찰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초등학교때 그녀를 보기위해 배구를 했듯이, 저는 경찰공무원 준비를 했고.

 


합격해서 현재 배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무원이라 주위에 결혼중매도 많이 들어오지만..

 

 

 

 

 

 


저는 아직도 "우리 찡찡이 뭐해^^?"라고 문자가 올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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