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오타(1) = http://pann.nate.com/b4393859
퇴근시간.
미영이 부리나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간단히 책상을 정리하고,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는 순간,
“미영씨. 잠깐.”
양과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되도록이면 퉁퉁 부운 자신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살짝만 고개를 돌려 양과장을 쳐다보았다.
“..네?”
“잠깐 나 좀 보고 가.”
자리에 앉은 채 두툼한 서류 뭉치를 책상에 두 번 탁탁 두드리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 양과장.
미영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
“미영씨 요즘 왜 그래?”
“아.. 죄송해요. 제가 오늘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 뿐이 아니잖아. 요 근래 계속 업무 상태도 안 좋고, 무기력하고, 대체 왜 그러냐고.”
“저기 ... 그건... ”
“소문 들어보니까,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뭐 어쨌다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이야?”
“아니.. 뭐 그것도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그게..”
“유미영씨!”
“네, 네?”
“당신 어린애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도 구분 못 해? 내가 당신 때문에 사장님한테 욕을 들어 먹어야
겠냐고!”
“아.. 저.. 죄송합니다.”
“아까는 왜 또 질질 짠 거야? 가뜩이나 요즘 분위기 안 좋은데, 자꾸 이런식으로 나올거야?”
“아..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미영씨, 자꾸 내 눈 밖에 나는데, 조심해. 미영씨 한 사람 짐 챙기게 하는 거, 식은 죽 먹기니까.”
“...... 예, 알겠습니다.”
......
집에 돌아오는 미영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예전 같으면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양과장 욕이라도 실컷 했으련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러기는커녕 남자친구 욕을 누군가에게 해야 할 판이었으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오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원망의 화살은 이내 자신에게 꽂히고 만다.
복잡한 마음은 표정으로 나타났고,
그런 미영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힐끗 쳐다보곤 했다.
미영에게는 그것조차도 스트레스였다.
......
미영의 상태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만원 버스 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 표정이 미영과 비슷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시선에 시달리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 틈새에 꽉 끼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였다.
거기에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자신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미영은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참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
-이번 역은 푸른지오 아파트 앞입니다. 다음 역은 당산역 삼선 아파트 앞입니다.
어느새 어둠이 자욱한 저녁 7시.
아파트 앞에서 분리수거에 한창인 경비아저씨와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고,
미영은 자신의 아파트 동으로 걸음을 옮긴다.
중간 중간 아는 이웃들이 미영에게 인사를 해 오면,
미영은 그 때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엘리베이터앞에 도달한 미영이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버튼을 누른다.
-땡, 끼이익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자신의 집이 있는 13층 쪽으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인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미영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일단 목욕이 너무 하고 싶었다.
-땡, 끼이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와~ 1309호 언니다!! 언니 이제 집에 와?”
미영의 반 토막 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꼬마아이가,
미영을 보자마자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어. 지민이구나. 어디 놀러가니?”
미영 또한 이 아이가 1307호에 사는 9살짜리 꼬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미영을 1309호 언니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가끔씩 혼자 사는 미영의 집에 놀러와 컴퓨터 게임을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응, 지민이 잠깐 4층에서 유리랑 놀기로 했어. 아 맞다. 근데 언니 있잖아~”
“응? 언니한테 할 말 있니?”
“응응. 오늘 언니네 집 문 앞에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었어.”
지민의 말에 미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티커? 전단지 말이니? 너희 집엔 없는데 우리 집만 잔뜩 붙여놨니?”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응. 내가 잘 보진 않았는데, 아무튼 되게 많았어!”
“그래 지민아. 내가 보고 혼내줘야겠구나.”
미영이 지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지민이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미영을 한 번 바라보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후다닥 들어간다.
“언니, 그럼 나 갈께. 빠이 빠이~.”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미영은 지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쪽으로 몸을 움직이던 미영이 불현듯 두통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지민이 덕분인가? 나중에 초콜렛이라도 사줘야지. 후후’
미영의 집은 좌측 복도 끝에서 두 번째로, 복도 중앙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위치였다.
미영은 잠시 복도 중앙에서 자신의 집 쪽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걸음을 다시 떼기 시작한다.
언뜻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개수의 종이 쪼가리가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진짜 오늘은 별 게 다 사람을 괴롭히네. 어떤 가게인진 모르겠지만 죽었다 너넨.’
가게 전단지 정도로 판단한 미영이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다가가면 갈수록 붙어 있는 종이가 일반 전단지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손바닥 크기의 포스트잇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낀 미영이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
현관 앞에 도달한 미영이 잠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에서 나는 떨림이 미영의 흥분상태를 반증하고 있었다.
바로 문이 문제였다.
아니, 문 앞에 붙어있는 종이들이 문제였다.
[죽어]
분홍색 포스트잇 종이에는 단지 이 두 글자만이 투박한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죽어][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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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종이들이, 문손잡이 윗부분부터 미영의 머리가 닿을만한 곳까지 불규칙적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심지어는 초인종 버튼에 까지도.
개수는 적어도 200장 이상은 되어 보였다.
"......"
미영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내 극도의 흥분상태가 찾아온다.
“김형석, 이 강아지!”
미영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거친 말을 내뱉는다.
-찌익 찌익
그리고는 거칠게 포스트잇 종이들을 때내기 시작했다.
개수는 많았지만 포스트잇의 손쉽게 뜯어지는 특성상 얼마 가지 않아 종이를 다 뜯어낼 수 있었다.
미영은 잠시 쭈그려 앉아 뜯어낸 종이들을 한 데 뭉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양이 많았는지 뭉친 덩어리의 크기가 거의 농구공만큼 컸다.
“나쁜 새끼.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이게 무슨 망신이야.”
종이 덩이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다급하게 현관 손잡이에 열쇠를 꼽는다.
-철컥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좌우를 살핀다.
그리고 복도에 자신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았다.
-철컥
“......”
문을 잠근 후, 미영은 잠시 문에 기댄 채 멍 하니 서 있었다.
도무지 형석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깝지도 않은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오타가 정말 사무치게 상처가 되기라도 한 걸까?
미영은 이제 형석의 행동에 무서움마저 느껴졌다.
“나한테...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거야!!”
소리를 지르며 종이 덩어리를 방 안으로 던지는 미영.
그리고는 거칠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 거실로 들어간다.
두통은 거의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씩씩 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미영이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춘 후 의자를 빼, 앉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아까처럼 1번 버튼을 꾹 누른다.
-고객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됩니..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던져 버리는 미영.
몹시 상기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그러면서 미영이 다가간 곳은 컴퓨터 앞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목욕도 지금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컴퓨터를 켜야 한다는 생각 뿐.
미영이 거칠게 전원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넘어가기도 전에 엔터 버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배경화면이 전송 되자, 미영은 자신의 메일로 접속을 시도했다.
[받은 메일함 : (8459)
유미영님, 메일 정리가 필요합니다.]
미영이 입술을 꽈악 깨물기 시작했다.
-딸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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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었다.
그렇지만 미영의 화가 머리끝까지 도달하는 데는 충분했다.
“김형석!!!!! 너 이 강아지야!!!”
모니터에 대고 욕설을 내 뱉는 미영.
미영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애꿎은 키보드만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미영의 눈에 익숙한 아이콘이 들어온다.
그리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마우스로 그 아이콘을 더블 클릭한다.
[네이트 온 :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다름 아닌 메신저 프로그램이었다.
미영은 혹시라도 모르는 기대감으로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현재 대화 상대 목록
지윤희(한슘만 뙁이 꿔지롸 쉬죠우)
김영민([영민] 그래도 계속 가라)
박세진(객체지향선형대수)
김미례(‘커피’ 休)
이인애(킹빨라, 쩜뻥끼, 리보쌈, 우롹~)
이혜정(논문,, 논문..)
송성호(서울역에서 영화 촬영하는 강혜정 봤다!!)
김형석(고달픈 내 인생ㅡㅡ;)
양미정([미정] 파이팅!)
이기범(모든 것은 ‘있음’과 동시에 ‘없음’이다)
이류학(피카츄 전기세 내는 소리하고 있네)]
접속 되어 있는 친구 목록을 확인 하던 미영의 눈에 무언가가 확 꽂혔다.
......
[ 김형석 (고달픈 내 인생ㅡㅡ;)]
......
있었다.
미영의 남자친구 ‘형석’이 메신저에 접속해 있었다.
잠시 멈칫하던 미영이 남자친구의 대화명을 클릭한다.
-딸칵, 딸칵
[ 김형석(고달픈 내 인생ㅡㅡ;) 님과의 대화.]
대화창이 열리고, 미영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대화 중의 금전 거래, 개인정보 교환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김형석!!! 이 나쁜새끼야!! 너 그것밖에 안 돼? ]
타자를 친 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 남자친구의 답신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대답이 없는 남자친구,
미영은 초조함에 다시 자판을 두들긴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입 있으면, 아니 손 있으면 말 좀 해봐! 뭐야 너!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대답 하라고!! 내가 그렇게 우스워? ]
하지만 여전히 대답 없는 남자친구.
얼마간 시간을 더 보내던 미영이,
그만 포기하고 쪽지를 보내려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짚는 순간,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대화창 하단에서 남자친구가 메시지를 넣는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대화명도 바꾼 채로였다.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미영으로선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게 더욱 더 미영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나한테 왜 이러니 정말. 내가 메일 보낸 게 그렇게 거슬렸니?
그런 거면 내가 사과할게. 이제 그만하자. 이런 유치한 장난도 그만하고 싶고,
너랑도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우리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 이제 그만해줘 제발.]
최소한 자신의 메시지는 보고 있다는 확신으로 긴 글을 입력한다.
이정도로 했으면 이제 인격적으로 나와야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기만 하다.
[김형석(죽어) 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왜 자꾸 죽어, 죽어 이딴 말만 하는 거야!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이 강아지야!!]
미영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보니, 남자친구는 이 상황을 일부러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짓궂게 대할 리가 없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그나마 옛정을 생각해서 참는 거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라.]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
미영의 협박에도 남자친구는 여전했다.
더 이상, 미영의 눈에 남자친구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연인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이상자에 불과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 미친놈. 어디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말을 끝으로 미영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아까 던졌던 핸드폰을 집어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뚜우우... 뚜우우... 딸칵, 예 112입니다.
전화를 건 곳은 112였다.
미영 나름대로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 방법이었다.
수화기 너머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정신병자가 계속 저를 협박해요. 도와주세요!”
-지금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닌데요, 주로 인터넷을 통해 당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면 제가 사이버수사대 팀으로 연결을 해 드릴게요.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예...”
딸칵 소리와 함께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멘트와 음악이 나온다.
기다리는 동안 미영은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어느새 남자친구가 도배한, 그 지긋지긋한 ‘죽어’라는 말만 눈에 들어온다.
미영의 표정에서 남자친구를 향한 연민은 이제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을만큼 싸늘했다.
-예 사이버수사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신고 좀 하려고요.”
-예, 무슨 종류인가요?
“예?”
-아, 뭐 해킹이나, 사기, 협박, 개인정보 등등 이런 종류요.
“아아. 음, 협박이에요. 이메일과 미니홈피 쪽지 등으로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해서 보내옵니다.”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예, ‘죽어’ 라는 말, 단 두 글자만 계속 보내고 있어요.”
-언제부터 그랬죠?
“어제 밤 부터였어요. 저 정말 이것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정말 죽겠어요.”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 받으신 이메일과 쪽지를 캡처해서 이쪽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그렇게 할게요. 어디로 보내면 되나요?”
-바로 문자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받으면 10분 내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미영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이번엔 약간 실소까지 머금은 상태였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신고했다. 분명히 내가 경고했었지?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가 초래한 거야.]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
변함없는 대답.
그 때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syberXX@112.com
지금 넣어주세요. ]
이메일 주소였다.
미영은 일단 대화창을 최소화 시키고 아까 들었던 캡쳐 작업을 시작했다.
메일 개수, 똑같은 제목과 똑같은 내용, 그리고 미니홈피의 쪽지 등,
최대한 자신이 당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캡쳐한 사진만 수 십장에 달했다.
익숙한 솜씨로 파일을 압축하고 ‘메일쓰기’를 클릭한다.
[발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후우....”
신고를 마무리한 미영이 작은 한숨을 쉰다.
마음이 편해진 건지,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진 건지 모를 그런 한숨이었다.
최소화 한 대화창에서는 계속해서 주황색 불 빛이 깜빡 거리고 있었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10분 내로 전화가 온댔지. 그래. 그 때까지 맘껏 지껄여봐라.”
미영이 대화창을 다시 원 상태로 돌렸다.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그저 죽으란 말 뿐.
살면서 이렇게 죽으란 말을 많이 들은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흔히 친구들끼리 장난하는
‘너 죽어~’라는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가뜩이나 혼자 사는 미영에게 조금씩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분이면 된다.
늦어도 10분 이내에는 무언가 방도가 생길 것이다.
마냥 기다리기 뭐 했던지 미영이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한다.
익숙한 컬러링이 들려온다.
“어? 여보세요? 나래야, 나야.”
-어? 유미영? 지지배가 전화 되게 오랜만에 하네.
중학교 때부터 만난 친구 ‘나래’였다.
그리고 미영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어.. 사실 너한텐 좀 미안한 일도 있고, 최근에 힘들기도 했고 좀 그랬잖아.”
-뭐.. 그랬지. 그런데 너 알고는 있는 거야?
“응? 뭘 말이야?”
-뭐냐니. 형석이 말이야 형석이.
“미안한테 그 새끼 이름은 꺼내지 말아줘. 하루 종일 얼마나 시달렸는지... 이제 치가 떨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달리다니?
“내가 메일을 보냈는데, 글자 하나 틀렸다고 그걸 꼬투리 잡아서 날 얼마나 괴롭히는지. 지금도 네이트에
서 계속 그러고 있다. 이런 앤지 몰랐어. 끔직해 정말.”
-지금 네이트에 형석이가 있어?
“어. 내가 대화 저장해서 보내줄까? 너도 이런 애랑 빨리 모르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야.”
-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응? 뭘 자꾸 모르냐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흐른다.
몇 초 동안 나래로부터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나래야?”
-응... 잘 들어.
“어? 무슨 일이야 뜸 들이지 말고 말 해.”
-형석이 죽었어.
순간 미영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하, 하하하. 이 년이 갑자기 왜 장난을 치고 그래. 형석이 지금 네이트에서 나랑 대화중이라니까.”
-장난을 치는 건 너 아니야? 형석이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아니?
나래의 음성에 장난 끼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일 정도였다.
“야.. 너 왜 그래. 정말 나랑 대화중이라니까. 의심나면 접속해 봐.”
-됐어. 다른 사람인가보지. 너랑 헤어지고 형석이 자살했어. 한강에서 뛰어 내렸다고.
미영의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어, 언제? 대, 대체 언제?”
-너랑 헤어진 바로 다음날.
“아아아아악! 거짓말 하지마!!!!!”
미영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
벽에 부딪힌 핸드폰이 둔탁한 소리를 내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미영은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형석이가 죽었다니.
대체 그럼 누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떨리는 온 몸을 부여잡고 미영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너... 누구야!! 너 형석이 아니지!?]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누구냐고!! 너 어디야 대체. 어디서 이런 장난을 하고 있는 거야!!]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미영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휘젓는다.
바로 그 때,
-드르르르. 드르르르.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칫 하던 미영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냅다 몸을 던진다.
“여, 여보세요? 사이버 수사대에요?”
미영이 의지할 곳은 이제 이곳 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영이 전화를 받는다.
-예, 맞습니다. 보내신 파일 확인 했고요. 아이피 추적도 완료 했습니다.
“예예. 어떻게 됐나요?”
-죄송한데요. 지금 그 쪽 주소가 영등포구 당산동 푸른지오 아파트 208동 1309호가 맞나요?
“예예. 맞아요 맞아요.”
-정말 맞아요?
“예, 맞다니까요!”
-이런 큰일이네. 어서 집을 나오세요!
갑자기 상대편이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예? 무슨... 말?”
-아이피 추적한 결과, 주소가 당신 집으로 나왔어요! 어서 나와요!
“.... 예!?”
-그 자식이 지금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미영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죽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사람은 남자친구를 사칭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영이 다급하게 집안 곳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심장은 한없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러던 중,
미영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춘다.
그 곳은 베란다였다.
경악에 찬 미영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닫힌 베란다 창문으로, 낯선 검은색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똑,똑,똑
.......
-유미영씨! 어서 밖으로 나가요!
......